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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너무 많이 싸우지 않는 삶을 위하여

정다빈 121.♡.116.95
2021.09.23 15:50 2,69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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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위시 무삽(Darwish Musab) 씨는 이집트 출신 난민이다. 아내 사라 무삽 씨와 함께 2016년 한국에 왔고 2018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집트에서 무삽은 시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인권 미디어 활동가였다. 열여섯 살 때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고, 여러 인권 단체에서 근무하며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여러 편 만들었다. 아내 역시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활동하며 여성 인권 관련 영상을 제작하는 활동가였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집트는 낯선 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깊은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클레오파트라, 수에즈 운하, 수차례의 중동전쟁, 군사 독재자 무바라크와 아랍의 봄 정도가 평범한 한국 사람들이 이집트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의 파편일 것이다. 무삽은 한국 정부에 의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왜 이집트 출신인 무삽이 난민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이후 무삽은 이집트 정부를 비판하는 미디어 활동에 참여했다. 그의 목표는 이집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사진, 영상을 통해 특히 인권 문제에 관해 기록했다. 군부대신 무슬림형제단*이 들어오고, 무슬림형제단의 정치적 실패로 다시 군부가 권력을 잡는 시간 동안 무삽은 지속적으로 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무슬림형제단 Muslim Brotherhood in Egypt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1928년 설립된 단체로 회원 수만 200만 명 이상에 달하는 큰 정치 조직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 샤리아에 기반 한 신정국가의 설립과 외세로부터 이슬람권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 무슬림 형제단은 세속국가를 지향하는 일부 무슬림국가에서 박해를 받고 있고 군부 쿠데타로 무슬림 형제단의 정권을 전복한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의 현대사는 세속국가를 지향하는 부패한 군부와 신정국가를 지향하는 무슬림 극단주의 그룹인 무슬림 형제단 사이의 길항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들(무슬림형제단) 역시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군부가 하던 불의가 새로운 정부에 의해 반복되었고, 달라진 점은 그로 인한 이익이 그들에게 갈 뿐이었습니다.”


사실 무삽은 어린 시절부터 군부 정권의 압박에 시달렸다. 그의 아버지도 군부에 맞선 활동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무삽이 2살 때, 무바라크 정권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 이후 무삽의 가족은 정권의 감시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학교에서, 집에서, 길에서 그는 늘 감시와 압박 아래 살아왔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민주주의나 인권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10대 후반이었던 2008, 무삽은 이미 이집트 내 반정부 인권 운동에 관여하고 있었고, 2010년에는 주도적으로 반정부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했다.

 

결국 무삽에 대한 정권의 협박과 박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까지 이어졌다. 이집트 정부는 무삽이 속한 인권 단체(The Egyptian Center for Economic and Social Rights (ECESR))가 정권의 뜻에 반하는 활동을 펼치고, 관련 사진과 영상을 제작해 배포한다는 이유로 취재 현장을 급습해 카메라를 빼앗거나 파손했고,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협박했다. 2013년 무렵 박해는 눈에 띄게 심해졌고, 무삽은 몇 차례 체포되는 상황도 겪었다. 그는 더 이상 고국에서 인권 운동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태어나 자란 고향을 떠났다.

 

2016년 한국에 도착했지만 머물 곳이 없어 게스트하우스와 난민 지원단체가 제공하는 임시숙소를 전전했다. 부부의 첫 딸 라일라는 어느 쉼터에서 태어났다. 난민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난민신청 프로세스를 돕는 NGO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무삽은 라일라가 태어난 곳이 곧 쉼터라는 것의 의미를 자주 생각한다. 무삽과 아내 사라는 난민 인정 심사 절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난민 인정은 아주 쉽게 거절되었다. 부부는 법무부의 난민 심사 인터뷰 조작 사건의 피해자였다.

 

인터뷰를 20분밖에 안 했어요. 이집트로 돌아갔을 때 내가 겪게 될 어려움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답변하려 할 때마다 심사관이 멈추게 했습니다.”

 

나중에 무삽 부부의 면접조서를 확인했을 때 다위시와 사라의 조서 내용은 복사, 붙여넣기를 반복한 듯 표현 하나하나까지 모두 동일했다. 그들은 면접조서가 조작되었음을 알았다. 조작된 면접조서에는 그들이 진술한 정치적 위협에 관한 대답 대신 일하러 왔다”, “돈 벌러 왔다하지 않은 말이 적혀 있었다. 졸속으로 진행된 난민면접은 절차 지연을 이유로 법무부가 시행한 신속심사의 결과였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추후 법무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무삽 부부는 이후 재심사를 통해 어렵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20분 만에 끝난 첫 심사와 달리 9시간이 넘게 걸린 심사 과정을 통해서였다. 사건이 논란이 되니 그때서야 실력있는 통역사가 붙었다. 난민 심사 과정에 어떤 통역이 붙는지는 무척 중요하다. 실제로 천주교 신앙을 가진 파키스탄 난민신청자의 심사 과정을 담당한 무슬림 통역자의 잘못된 통역으로 난민 신청이 거부된 사례가 있었다. 무삽은 명백한 박해 위험에도 불구하고 난민 인정 절차가 결코 쉽지 않았건만 그는 자신은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저희를 동반해주었던 NGO에서 법무법인 동천에 저희 케이스를 추천해주었어요. 많은 난민들이 변호사를 찾기 정말 어려운데, 저희는 헌신적인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죠.”

 

2013년 제정된 난민법 제31조는 난민으로 인정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고 명시한다. 난민법에 따르면 무삽은 한국인들과 동등한 보호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무삽은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난민이 가진 비자는 해당 지원금의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다. 주민센터는 지급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내와 어린 딸과 정착해야 하는 그에게 주거 지원이 절실하지만 공공임대주택도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다.

 

난민 신분이기에 본국에 여권 재신청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여권이 만료된 그는 난민인정증명서만으로는 통장 개설조차 쉽지 않다. 그에게는 돌아갈 나라가 없지만, 그를 난민으로 받아들인 한국은 아직 그를 사회의 일원으로 보지 않는다. 그의 딸 라일라 역시 한국인의 자녀가 아니기에 무국적 상태다. 한국에서 태어난 라일라는 아주 한국어를 잘하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라일라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할테지만, 한국 정부는 라일라에게 국적을 주지 않았다.

 

무삽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인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는 난민법의 명시 내용과 달리 난민에 대한 지원은 아주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아예 한국에서 난민이 갖는 지위와 권리에 대해 모르고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가능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하고, 같은 사람도 어느 날은 도와주겠다고 하고 또 다른 날은 안 된다고 합니다. 나의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할 수 없는 상황인거죠.”

 

시스템이 아닌 그날그날 사람들의 호의에 기대는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도 존재한다고 느낀다. “한국 사람들이 대체로 친근하게 대하지만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분명히 느껴요. 수단에서 온 친구네 가족은 어두운 피부색에, 무슬림이기 때문에 히잡을 쓰고 다닌다는 이유로 항상 차별 받아요. 지하철, , 공공장소 모든 곳에서요.”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가족들과 살아가려는 그의 꿈은 너무 많이 싸우지 않고 나의 권리를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나의 나라에서 나는 인권을 위해 싸우다 쫓겨났습니다. 사실 많이 지쳤고, 여기서는 너무 많이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이제 쉬고 싶은데도 여기서도 싸움꾼처럼 살고 있어요. 신은 나를 그렇게 쓰려고 다시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나봐요.”

 

너무 많이 싸우고 싶지 않다는 무삽은 현재 3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난민 인정 심사 절차에서 겪은 인터뷰 조작 관련 사건과 난민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에 관한 소송이다. 너무 지쳐서 쉬고 싶다지만 여전히 그는 인권 미디어 활동가로서 계속 활동하며 고달픈 서울 살이를 버텨내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이집트 난민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이주민방송 MWTV에서 이주 난민 인권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10월부터는 국제교육개발 비영리기관 기쁨나눔재단에서 인턴십을 시작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는 앞으로 자주 신수동을 누비며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다.

 

    

인터뷰 정리: 정다빈 멜라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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