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image

  

[사회교리] 사회 교리의 공론장은 어디인가?

조현범 58.♡.237.175
2021.08.04 20:23 3,134 0

본문

  

제목을 입력하세요.png

 

다종교 사회의 정교분리, ()/() 이분법

 

천주교 신자가 사회적인 문제를 바라볼 때 교회 당국이 표방하는 사회 교리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마땅한가? 마땅하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론에 이르러야 하며, 또 이 결론을 신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하는가? 왜 이런 것이 문제가 될까? 한국 사회가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개인 신앙의 문제에 관하여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라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세계관, 혹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교 단체에서 가르치는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실 그렇게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개인이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문제에 교도권이라고 함부로 개입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개인 신앙의 영역은 논외로 하자. 그리고 개인 신앙을 넘어서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의 영역에서 공적인 사안에 대해서 발언한다고 가정해보자.

 

오늘날 한국을 비롯하여 현실 사회 대부분은 다양한 종교를 믿는 신자들, 그리고 특정 종교를 콕 집어서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 무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나 신앙을 믿고 실천하는 행위를 사적(私的)인 영역으로 여긴다. 그래서 종교가 공적(公的)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물론 종교와 비종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두부 자르듯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교육 그리고 사회복지와 같은 영역은 국가가 정교분리를 강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공적 영역이다. 그래도 대체로 특정한 종교적 신념에 입각한 발언이나 행위는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종교가 공적 발언의 주체가 되려면

 

한국 천주교는 대사회적 발언을 많이 해오고 있다. 대개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공공(公共)의 문제에 대해서 시민 사회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회 교리라는 이름 아래에 생명 윤리 등 특정한 사회적 현안을 신앙의 진리에 바탕을 두고 평가하거나 그 대책을 제시하려고 한다면, 과연 천주교의 주장은 공적인 발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공적인 영역에서 행하는 발언이 어떤 규약을 따라야 하는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천주교의 사회 교리는 종교적 공공성의 장 내에서 지켜야 하는 발언의 규칙을 무시한 일방적인 목소리로 평가받을 수 있다. 특히 성경이나 교황 문헌, 공의회 문헌, 교구장 교령 등 자기 종교의 내적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현실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발언을 공적인 영역에서 행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정 종교가 내세우는 자기주장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외부인들에게는 어떠한 호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혼란스러운 것은 비단 천주교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의 종교계에는 공적인 영역에서 발언하고자 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 그리고 그러한 발언에 참여하는 자세 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내 믿음에 동의하지 않으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종종 본다.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사회 교리에 입각한 사회 참여가 활성화되려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이른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에서 살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신자들과 교회가 소통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제 천주교회에는 정치, 경제, 교육, 과학 등 여러 방면에서 상당한 전문성을 지닌 평신도 신자들이 많이 늘어 났다. 그런 만큼 옛날처럼 교구장 주교나 본당 주임 사제가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생각을 말한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고자 한다면 자기 고백에 해당하는 신앙의 언어를 그대로 사회적 현실에 투사하는 것은 금물이다. 신앙의 언어를 바탕으로 삼되 공론의 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제3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면 최소한 신앙의 언어를 공론장의 언어 규칙에 맞게 번역하려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사회 교리로 소통할 수 있을까?

 

천주교의 사회 교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 보면 일종의 지방어, 즉 사투리다. 이 언어의 문법을 고수하면서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심지어 신자끼리라고 해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신자와 건전한 상식에 의해서 판단하는 신자가 사회 교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 교리를 더 체계적이면서 상세하게 만들어서 신자들에게 사회 교리를 더 많이 교육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소통의 문제이다.

 

사회 교리가 좀 더 소통적인 언어가 되려면 일반 사회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의 만남을 시도해야 한다. 신앙의 샘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신앙 바깥의 언어와 서로 삼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련된 표준어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떨 때는 자신의 신앙적 기준이 흔들릴 위험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회 교리를 일반 사회인과 소통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일은 시도할 가치가 있다.

 

 

공론장에 들어간 사회 교리

 

가령 낙태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인권연대 웹진에는 정다빈 연구원이 쓴 '낙태죄는 정말 생명을 살릴까?'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서 정다빈 연구원이 주장한 바를 내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교회 공동체 내부의 공론장에 관한 것이고, 교회 안의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발짝 교회 내부 공론장의 울타리를 벗어나 종교들이 모이는 공론장, 그리고 시민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공론장으로 가 보면 어떨까?

 

낙태 문제에 관한 논의가 교회 내 공론장에서 드러날 때는 그 가치 기준이 명확하다. 즉 체계적으로 정리된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뭐라고 되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런 다음에는 사회 교리에서는 낙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았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제2270항에는 이렇게 나온다. “인간의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2271항에는 낙태를 직접 언급한다. “교회는 1세기부터 모든 인위적 낙태를 도덕적인 악으로 단정하였다.” 결국 제2274항에 가면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배아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하므로, 가능한 대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간추린 사회 교리(개정판)' 2부 제5장의 233항에는 이렇게 나온다. “낙태는 끔찍한 범죄이며 매우 심각한 도덕적 무질서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피임법에 의존하는 것도 거부하여야 한다. 이러한 거부는 인간과 인간의 성에 대한 올바르고 완전한 이해에 근거한 것이며 민족들의 참된 발전을 수호하기 위한 도덕적 요구이다.”

 

요컨대 천주교의 교리적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의 생명은 잉태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낙태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한국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가 모여서 이루는 종교적 공론장에 들어가게 되면 인간 생명에 대한 정의가 각 종교의 교리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한다고 해도 교파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엇갈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장도 존재할 것이다. 이 공론장에서는 종교만이 아니라 생화학, 의학, 철학, 법학 등 다양한 전문적 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담론이 생명 개념에 대한 정의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수정란 단계부터 이미 인간으로 여겨야 한다는 천주교의 주장은 인간 생명을 다루는 다양한 주장들과 경합하면서 자기 설득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런데 공론장에서 벌어지는 담론 경합의 최종 도달 지점은 어디일까?

 

 

사회 교리를 표준어로 만들기

 

교회 내 공론장에서는 뚜렷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존재하고 공론장의 구성원들은 대다수가 이에 동의한다. 그래서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이를 논의 구조에 반영하면 의견 일치에 도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여러 종교가 모이는 종교적 공론장이나 온갖 담론들이 경합하는 사회적 공론장에서는 아무리 소통적인 언어 규칙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이견을 확인하면서 상대방 주장에서 합리적인 부분이나 설득력 있는 부분을 인정하고 또 자기주장 역시 바뀔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인 도달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론장의 언어 규칙에 따라 최소한의 합의에라도 도달한다면, 이는 생명 윤리에 관한 공론장에서 낙태 문제를 계속 논의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공론장이 활성화되면 낙태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다. 그리고 낙태 관련 다양한 쟁점들이 묻히지 않고 사회적 조명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 교리 교육자들이 할 일은 교회 내 공론장과는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종교적 공론장과 사회적 공론장에 적합한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종교 사회임을 염두에 두면서 비신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논리와 언어로 신앙의 진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 교리는 표준어로 대접받을 수 있다.

 

 

조현범 토마스 (한국학중앙연구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