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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모든 형제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 (4)

조현철SJ 121.♡.116.95
2021.06.04 10:25 3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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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진정한 인간학의 바탕은 관계이며, 관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밖으로 타자를 향하는 관계의 인간학은 닫힌 세상이 아닌 열린 세상을 전망하고(87-127), “온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낳습니다(128-153). “우리 각자의 존재는 다른 이들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66). 사랑의 유대로 연결된 세계는 우리 공동의 (오이코스)’입니다(<찬미받으소서> 1).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의 집에서 환대와 연대, 다양성, 형제애, 무상성은 빠져서는 안 될 특징적 요소입니다. 환대와 연대는 탈아의 존재인 사람의 생활양식이며 형제애의 실천적 표현입니다(90, 115-116). 낯선 사람을 환대하고 아는 사람과 우애를 강화하는 것, 곤경에 빠진 사람과 연대하는 것은 분리와 단절의 닫힌 세계를 벗어나 열린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낯선 존재로 서로 부딪히고 경계하며 살아가는 닫힌 세계에서 환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환대는 대개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7). 환대를 우리 사회에 등장한 이방인의 문제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환대는 사실상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은 환대를 통해 우리가 그 사회 안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환대 없이는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도 없고, 사회도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으려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습니다”(140). 우리가 거저 받은 환대를 우리도 거저 되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환대에서 연대가 시작됩니다. 환대로 열린 세상과 열린 마음이 가능해집니다.

 

열린 세상은 피상적 일치를 쫓는 획일화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다양성을 추구합니다(100). 사랑은 상대가 자신을 결정할 자유를 존중하며, 상대에게 이로운 것도 강요하지 않고 권유합니다. 계층에 따라 똑같은 인간이 획일적으로 생산되는 멋진 신세계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열린 세계는 모든 다름과 전통을 없애 버리려는 세계화 모형을 거부합니다(100). 열린 세계는 보편적 세계 전망 속에서 각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고 보전하는 지역화를 중시합니다. 세계화와 지역화는 둘 사이의 긴장을 유지할 때 건강해집니다. 지역화는 단일한 지배적인 문화의 확산을 막아주고(144), 세계화는 폐쇄적인 정신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세계적 전망을 제공하여 지역적 나르시시즘을 막아줍니다(146). 이렇게 세상을 향한 열린 전망과 열린 마음이 생겨납니다.

 

현실 정치는 필요한 변화를 가로막기 일쑤지만,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더 좋은 정치는 열린 전망과 열린 마음이 지향하는 변화를 낳습니다(154). “더 좋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이웃 사랑의 보편적 실천 방식입니다. 정치적 애덕과 사회적 애덕의 구체적 실현입니다(180). 열린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다름새로움이며 우리를 더 온전하고 풍성하게 합니다(215). “만남의 문화는 두려워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더욱 키워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화와 사회적 우애가 필요합니다. 종교는 공동선온전한 인간 발전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는 존재의 정치적 차원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276). 이렇게 할 때, 종교는 형제애사회의 정의를 증진합니다(271). ‘다시 연결하다(re-ligare)’라는 종교 본연의 몫을 수행하여, 닫힌 세계를 여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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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 변화가 시작되는 곳

닫힌 세계를 열린 세계로, 단절을 연대로 바꾸는 것은 근원적인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변화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 곧 변경에서 옵니다. 역사적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중심은 언제나 변화를 거부해왔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중심이 변화를 원할 리 없습니다. “여러분도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고 싶다면 주변부로 가야 합니다. 하느님도 피조물을 재건하려 하실 때 주변부로 가셨습니다”(<렛 어스 드림> 38).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당시의 중심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육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육화는 예언자도 메시아도 나올 수 없다고 무시되던 변경,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어린 여성인 처녀 마리아는 지역으로 치자면 변경 중의 변경입니다. 우리가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한 주변부로 가서 사람의 길을 선택하고 행동할 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결단하고 행동할 때, 분리와 단절의 벽에 균열이 생깁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부는 어딘가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35~8일에 이라크 방문을 감행했습니다. 1년 동안의 코로나 봉쇄 이후 첫 번째 외부 방문이 이라크라는 것이 사뭇 의미심장합니다. 이라크는 언제부턴가 미국 주도의 세계에서 격리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라크 방문은 닫힌 세계를 열려는 교종 자신의 상징적이고도 실제적인 노력으로 보아야 합니다. 교종은 귀국 길에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꿈꾸길 멈추지 마십시오. 지금은 재건의 시간입니다.” 재건은 닫힌 세계를 열린 세계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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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담대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담대하게 행동하라며 우리를 격려합니다. “상처 입을까 두려워하거나 무기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품어 안읍시다. 하느님께서 인간 마음에 심으신 모든 선이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78). 세상을 품어 안으려면 먼저 자신의 지역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장 구체적이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영향이 온 나라세상 끝까지퍼지겠지요(78). 혼자거나 함께하는 사람이 적다고 걱정하거나 망설이지 마십시오.

 

德不孤 必有隣”(<論語>, ‘里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입니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의 정신으로 행동하면, 반드시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을 보살펴 줄 여관 주인을 찾았습니다”(78).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며 한편으론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당부합니다(루카 10,2-4).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하는 제자들에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에게는 제자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십자가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 단절의 세상을 연대의 세상으로 바꾸려는 발걸음을 가로막는 어떤 어려움도 우리의 희망을 빼앗지 못합니다. 이 희망은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근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인류에게 좋은 씨를 뿌려 주십니다”(54). 코로나19 상황에서 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지닌 희망의 가시적 근거입니다. 우리 공동의 집을 위하여 노래하며 걸어갑시다!”라고 했던 프란치스코 교종의 초대는 계속됩니다(<찬미받으소서> 244). “희망은 담대합니다. ... 희망은 시야를 제한하는 개인의 안위, 사소한 안전이나 보상을 넘어 바라보는 법을 압니다. 희망을 품고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55).

 

 

조현철 신부 (예수회)

 

조현철 신부님의 회칙 '모든 형제들' 해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 연재가 총 4회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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