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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모든 형제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 (3)

조현철SJ 58.♡.237.175
2021.05.20 15:01 3,5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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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사람, 예수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직접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는 것, 그렇게 하여 주님의 은혜로운 해희년을 선포하고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선언했습니다(루카 4,18-19). 죽기까지 그렇게 남을 위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본 회퍼). 밖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삶을 이끈 것은 사마리아 사람의 가엾은 마음이었습니다.

 

나병 환자 치유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마르 1,40-45). 예수님은 자신을 깨끗하게해달라며 도움을 청하는 나병 환자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듭니다(41). 예나 지금이나 나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는 물론 가족에서도 격리되어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이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의 격리로 큰 고통을 겪으며 지냈을 나병 환자의 처지에 섰습니다. 그 사람의 고통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격리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이 사람이 겪어야 했던 구체적인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고유한 사연을 지닌 이 사람의 격리에서 오는 고통을 느낍니다. 불편하고 힘들지만,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들고, 애끊는 마음이 예수님을 움직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41). 그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는 접촉이 격리를 무너뜨렸고, 그는 다시 세상과 연결됩니다. 그는 깨끗하게되었습니다(42).

 

하지만 예수님은 나병 환자와 접촉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금기를 깼습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에게 치유 소식을 퍼뜨리지 말라고 했던 까닭입니다(43-44). 하지만 기쁨을 참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은 동네방네 소문을 냅니다(45). 이것 또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격리와 단절을 극복했습니다. 그 사람을 격리했던 닫힌 세상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행동의 대가를 치릅니다. 예수님은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습니다(45). 예수님은 격리됩니다. 사랑을 위해 선택한 격리, 자발적 격리입니다.

 

 

탈아, 사람의 길

우리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죽음을 비롯한 위기의 때가 그런 순간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때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렛 어스 드림> 18).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시달리는 오늘의 현실은 분명히 위기입니다. 이런 때 우리에겐 두 가지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선택과 사제와 레위인의 선택입니다. “고통을 떠맡는 사람과 멀찍이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가면과 겉치레와 변장이 벗겨집니다. 위기는 진실의 시간입니다(70).

 

프란치스코 교종은 묻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동일시하십니까?”(64) 우리가 이룬 기술적 진보와 물질적 풍요는 놀라울 정도지만, 사회의 약자에 대한 무관심은 훨씬 더 놀랍습니다. 우리는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을 동반하고 돌보며 지원하는 데에는 여전히 까막눈입니다”(64). 이것은 병든 사회의 징후입니다(65).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추구하는 번영은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인, 아동,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희생으로 이룬 번영입니다. 그런 번영은 하느님에게 역겨울 뿐입니다. “무엇 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나에게 가져오지 마라. 분향 향기도 나에게는 역겹다”(이사 1,11-13).

 

위기의 때는 또한 근원적 성찰의 때입니다.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이 불러온 고통, 불확실성, 두려움, 자기 한계의 인식은 우리의 생활 양식, 우리의 관계, 우리의 사회 조직,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호소를 되울려 퍼지게 만듭니다”(33). 우리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총체적으로 반성하라는 요청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에게 선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많은 고통과 상처 앞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입니다”(67).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페리코레시스(περιχώρησις)’의 하느님입니다. 페리코레시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서로를 주고받아 온전히 하나가 되는 역동적 상호내재를 뜻합니다(요한 14,20; 17,23). 사랑은 자기를 벗어나 타자를 향해 밖으로 움직입니다. 삼위일체는 영원에서부터 서로를 향한 밖으로의 움직임, 곧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입니다(1요한 4,16).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 안에서 존재의 성장을 찾는 일종의 탈아’(ekstasis)의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88).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어원상 인간의 실존(existence)’ 또한 자기밖에 서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벗어나 타자를 향해 밖으로 나갈 때 충만해지는 역설적 존재입니다.

 

다른 모든 선택은 강도들의 편이나 길가에 쓰러진 사람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한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67). 이것은 사람의 길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창조된 사람은 자기 몰입으로는 결코 자신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사람이 되어갑니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조현철 신부님의 회칙 '모든 형제들' 해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는 2주에 한 번, 4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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