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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신자들은 사회교리 교육의 대상인가?

조현범 121.♡.116.95
2021.05.13 15:20 3,5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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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를 다시 생각하기(2):

신자들은 사회교리 교육의 대상인가?


이제 사회교리와 관련한 문제들을 하나씩 다루어보자. 첫 번째로 던질 의문은 이런 것이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천주교는 1970년대나 1980년대에 비해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도가 약해졌다. 이것은 한국 천주교 전체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러면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 사회교리를 더 많이 보급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여기면 온당할까?

 

사회교리의 보급과 실천

현재 한국 천주교에서는 사회교리의 보급과 실천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우선 교구마다 사회교리 학교를 개설하여 사회교리에 대한 강좌들을 운영하며, 교구 산하의 단체들이나 연구소에서도 사회교리 강좌들을 개설하고 있다. 이 강의들은 대개 인권, 가정, 생명, 노동, 경제 민주화, 정치, 환경, 생태,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사회 문제나 쟁점이 되는 사안들을 설명하고, 성경, 교황 문헌, 공의회 문헌 등에 근거해서 천주교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교리에 관한 강좌들이 활발하게 열리기 시작한 것은 2010312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춘계 정기총회를 끝내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4대강 개발 사업에 대해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사제 양성 과정에서도 사회교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여, 전국의 대신학교에서 사회교리또는 사회윤리과목을 필수로 개설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는 교구에서 운영하는 사회교리 학교와 각종 본당 및 교회 기관에서 실시하는 사회교리 관련 강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사랑의 문명을 향하여』나 세상 속의 그리스도』와 같은 교재들을 제작하여 보급하였다. 이 교재들을 한 번 들여다보자. 먼저 언론에 보도된 각종 사회 문제 관련 기사를 발췌하여 토론 거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복음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식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성경과 교황 문헌에 나오는 관련 구절들을 소개한다. 이어서 생활인으로서 신자들이 쉽게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천 요령들을 제안한다. 마지막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천주교의 성인과 성녀 그리고 모범이 될 만한 신자들의 행적들을 실어 이를 읽고 묵상하도록 배려한다. 평신도 교육용으로 제작하는 교재의 전형적인 내용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사회교리를 현실 세계에서 실천하기 위하여 교회 안팎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들도 많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의 전국위원회로서 정의평화위원회가 있다. 각 교구에도 정의평화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또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와 같은 연합 조직에서도 사회교리의 실천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결의를 표방하기도 한다.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의 괴리

이렇게만 보면 한국 천주교의 사회 참여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활발한 것 같다. 심지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교리 차원으로 끌어올려 천주교의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따르고 실천하도록 이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의식에 관한 조사를 보면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이 갈수록 양극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사의 의뢰로 1998년과 2006년 그리고 2017, 이렇게 대략 10년을 주기로 신자 의식 조사가 이루어졌다. 교회의 사회현실 개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항목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응답한 경우는 20.0% -> 10.2% -> 20.9%, 동의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62.8% -> 59.9% -> 50.8%, 반대하는 편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는 15.7% -> 25.7% -> 23.3%, 그리고 절대로 반대한다는 응답이 1.6% -> 4.2% -> 5.0%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를 도표로 나타내면 그 추세가 잘 드러난다.


응답 내용

1998

2006

2017

전적으로 동의함

20.0

10.2

20.9

동의하는 편

62.8

59.9

50.8

반대하는 편

15.7

25.7

23.3

절대 반대

1.6

4.2

5.0

 

위의 도표를 보면서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절대 반대라는 의견도 계속 증가하고, 마찬가지로 전적인 동의라는 의견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신자 의식에서 양극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2006년에 비해서 2017년에 전적인 동의 응답이 2배 가량 증가한 것을 한국 천주교에서 사회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동의하는 편에 서 있던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전적인 동의로 넘어온 것이지, 교회의 사회 참여에 반대하던 신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절대 반대라는 의견은 증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교회 내의 입장 차이가 더 첨예하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천주교 신자 구성에서 중산층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신자들도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 교회의 입장과 방침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직자들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진보 측과 보수 측으로 편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신자들은 각자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교회의 대사회적 입장을 지지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천주교는 전인격적인 구원을 표방한다. 그렇지만 교회 내부의 문제가 아닌 세속 사회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복음의 관점으로 유지하더라도 합리적인 설명 방식을 강구해야만 신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창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의 기본 정신이 아닐까?

 

사회교리 교육을 강화하자고?

하지만 천주교 일각에서 제시하는 처방은 사회교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한국 천주교가 활력을 상실하고 있는 이유도 사회교리에 입각한 사회복음화 운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서 그렇다고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천주교가 행했던 역할과 같이 오늘날에도 적극적으로 사회현실에 참여하여 실천함으로써 천주교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사회교리를 학습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1891) 반포 12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2011년에 주최한 심포지움에서 나온 어느 논평자의 발언은 이런 주장을 잘 보여준다

 

사회교리를 이제는 교리로 보아야 한다는 문제에 대하여 적극 동의하면서 추가로 예비자 교리부터 내용에 변화를 주는 방법을 제안한다. ‘믿을 교리 중심의 현 교리서는 사회윤리적인 고려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궁극에 훌륭한 신자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는 적어도 전체 교리의 1/3을 차지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인데 이 부분이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 정부 들어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교회가 참여하는 것에 대해 교회 안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신자들이 이렇게 계층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신앙이 이들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교리는 이제 일상적인 강론과 신자교육에서 사회교리라는 이름으로가 아니라 성경, 거룩한 전통의 수많은 가르침과 선포의 연장에서 핵심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공공(公共) 의식을 상실한 개신교의 중대형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또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천주교가 사회교리를 등한시하다가는 머지않아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마디로 천주교의 사회교리가 종교적 공공성을 담보해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천주교 언론에서도 신자들이 사회 문제를 판단할 때 사회교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음은 가톨릭신문 2012325일자 사설 사회교리는 사회문제 판단 기준에 나오는 일부 구절이다.

 

최근 교회의 사회 참여적 발언들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교구의 경우 교구 주보에 보기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사 문제를 담은 간지를 함께 넣었다가 이에 대해 신자들이 항의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본당에서 강론 시간에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 될 수도 있는 사회문제를 주제로 삼았다가 불평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논란과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식별의 모든 기준들이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점이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경륜과 지혜, 그리고 오랜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지금 이 자리의 문제들을 식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보배로운 원천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이 보배는 사회교리가 아닐 수 없다. 사회교리는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상에 열린 자세를 천명한 교회가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이다. 어떤 사회 문제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침은 바로 이 사회교리이다.”

 

이상의 발언들은 문제의 핵심을 신자 교육에 두고 있다. 그런데 과연 더 많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를 교육하지 못해서 천주교의 사회 참여가 둔화되고 있는 것일까? 천주교 신자들에게 사회교리에 대한 교육을 많이 시키면 신자들의 사회의식이 향상되어 사회 참여에 공감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상당히 기계론적인 인식 태도이면서 동시에 엘리트주의 혐의가 짙은 발상이다. 기계론적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천주교 신자들의 사회적 구성이 크게 변하면서 신앙생활의 영역에서도 자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교회 당국과 신자들의 관계를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관계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위 의식 있는 주교나 사제가 무지한 신앙 대중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관점을 은연중에 깔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엘리트주의라 일컬을 만하다.

 

이 대목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주 접하는 용어 하나를 되새기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인데, 흔히 공동합의성이라고 번역한다. 시노달리타스 자체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루기로 하겠지만 여기서 시노달리타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를 더 열심히 교육함으로써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신자들의 지지를 고양시키겠다는 발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교리를 둘러싼 발상의 전환을 이루려면 시노달리타스의 문제의식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교리 혹은 사회적 의제에 대한 교회의 판단과 참여를 둘러싸고 교회 내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이른바 권위주와 다수결주의를 넘어서 공동합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사회교리를 다종교사회의 차원에서 살피고자 한다. 사회교리가 천주교의 교리적인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진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상황, 심지어 다양한 세속적 가치들까지 가세하여 경합하는 상황 속에 놓고 보면 천주교 사회교리는 소통이 어렵거나 아예 통약 불가능한 일종의 사회적 방언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교리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조현범 토마스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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