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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모든 형제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 (1)

조현철SJ 121.♡.116.95
2021.04.22 15:54 3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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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힘과 열림, 단절과 연결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하지만 1년 전 순식간에 세계를 덮쳤던 코로나19 팬데믹은 변함이 없습니다.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언제쯤 감염병이 통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감염병이 장기화하며 거리 두기’, ‘자가 격리’, ‘코호트 격리등 이전에는 낯설었던 격리가 일상화되었습니다. 격리는 어떤 경우든 사람의 인격을 침해합니다. 인격체인 사람은 타자 지향성을 본질로 지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장기간의 격리는 인격의 형성 자체를 가로막습니다. 물론 감염병 상황에서 격리는 불가피하지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코로나 재난은 불가피한 격리 외에도 이전에 세상에 있었지만 잘 드러나지 않던 격리를 깊이 의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3월 하순 어느 저녁, 프란치스코 교종이 성 베드로 광장에 들어섰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어둠이 깃든 광장은 격리 조치로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적막한 빈 광장에 홀로 선 교종은 우리가 모두 같은 배를 탄 공동 운명체지만 서로 분리되고 단절된 채 살아왔다는 걸 코로나 감염병이 알려주었다며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각자도생의 현실에서 순환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씨앗이 자기를 땅에 내어주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생명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를 땅에 내어주면 씨앗은 땅을 통해 풍성한 생명을 냅니다. ‘순환이 자연의 근본 질서입니다. 순환의 원리를 존중하고 따를 때, 번영합니다. 사람의 삶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순환의 원리는 세상 모든 것이 근원적 유대로 연결되어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여라”(창세 1,11).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존재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순환의 세계에서 가난과 번성은 동전의 양면이지요. 서로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주면, 모두 번영합니다. 자기만 살겠다며 자기의 번영에만 집착하면, 모두 황폐해집니다. 땅에 떨어지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인 세상에 자신을 닫는 것입니다. 분리되고 단절됩니다. 죽음입니다.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세상에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연결되고 연대하는 것입니다. 곧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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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모든 형제들>, 닫힘에서 열림으로

 

순환의 열린 관계, 연결의 원리로 돌아가야 할 세상에서 사람과 자연이 분리되고 단절되었다는 위기의식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5)를 발표하며 세상에 생태적 회심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순환의 열린 관계, 연대의 원리로 돌아가야 할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분리되고 단절되었다는 위기의식에서, 교종은 회칙 <모든 형제들>(202010)을 발표하며 세상에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을 호소합니다. 창조 이야기(창세 1~2)는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한다고 알려줍니다(<찬미받으소서> 66). 하느님께서 세상에 심어놓으신 창조질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이 세 가지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교종은 <찬미받으소서><모든 형제들>로 부서지고 훼손된 창조질서의 회복과 보전을 호소하고 촉구합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은 닫힘과 분리에서 열림과 연결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닫힘과 분리는 무관심, 불평등, 배제, 차별, 억압, 착취, 폭력을 낳지만, 열림과 연결은 관심, 평등, 환대, 연대, 호혜, 돌봄, 해방을 낳습니다. 회칙은 첫 번째 장 닫힌 세상의 그림자로 시작합니다. ‘닫힌 세상은 안과 밖이 분리된 세상, 사람이 서로 단절된 세상입니다. 닫힌 세상의 그림자는 음울합니다. 닫힘과 분리는 다양한 양상으로 일어납니다. 한편으론 80광주가 재현된 듯한 미얀마 군부의 민중 학살, 로힝야 난민, 수십 년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과 같은 폭력적 양상으로 일어납니다. 다른 한편으론 무표정한 얼굴과 무관심, 시장과 상품 중심의 소비문화라는 세련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기에 맞서듯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앞부분에서 분리와 단절을 극복하려 했던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이집트의 술탄 말리크 알 카밀을 방문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3). ‘십자군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성인의 방문은 분리와 단절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상징입니다. 이어서 <찬미받으소서>에 영향을 준 그리스 정교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모든 형제들> 작성에 큰 영감을 준 아흐메드 알타예브 대이맘을 소개합니다(5).

 

다음은 회칙의 두 번째 장 전체를 할애한 복음의 인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사이의 을 극복한 사마리아 사람은 회칙의 중심인물입니다. 이집트의 술탄, 정교회 총대주교, 이슬람의 대이맘, 사마리아 사람은 모두 경계 너머의 사람, 이방인에 속합니다. 교종은 샤를 드 푸코를 모든 이의 형제가 되기를 바랐던 사람, “스스로를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과 동일시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이의 형제가 되었던 사람으로 기억하며 회칙을 마무리합니다(287).

 

회칙에 언급된 이 인물들은 갈라진 세상에 다리를 놓으려고 애쓰는 교종 자신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교종은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 회칙의 부제인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로 연대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합니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조현철 신부님의 회칙 '모든 형제들' 해설 <닫힌 세상을 활짝 열고>는 2주에 한 번, 4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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