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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화해는 어떻게 오는가?

김성한 121.♡.116.95
2021.04.13 16:38 3,89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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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두 개의 깃발을 들고 있어?

 

2004년 메노나이트 신학교에서 평화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온 호마래 미야자끼를 만났다. 그리고 그해 10월 아나벱티스트-메노나이트 계열의 학교에서 평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가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유엔 사무실 주최로 뉴욕에서 열렸다. 학생들의 논문도 발표하고 MCC가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프로그램의 일부로 유엔 본부를 방문해서 본회의장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과 사무실을 견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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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기념품 가게였다. 기념품 가게의 중앙에는 원형으로 된 커다란 기둥이 있었고 유엔에 가입한 나라들의 작은 국기가 판매되고 있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방문객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국기를 찾고 있었다. 나는 나란히 놓인 두 개의 깃발을 손에 들었다. 마침 그때 옆에 있던 호마래가 물었다. “성한, 너는 왜 두 개의 깃발을 들고 있어?”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호마래,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지금 대전 국립 현충원에 묻히셨다. 평안북도 용천 사람이었던 할아버지는 보합단이라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다.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었고, 고문과 재판 뒤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셨다. 만나보지 못한 할아버지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할아버지가 겪었던 모진 고문과 그로 인한 후유증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에 대한 좋은 감정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호마래는 "성한, 너는 왜 두 개의 깃발을 들고 있어?"라고 물은 것이다.

 

그날 밤,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호마래는 일제 강점기 이후의 해방, 분단, 전쟁, 휴전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에 대해 듣길 원했다. 일본 사람과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오래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참 뒤, 호마래는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19973월에 발표된 일본홀리네스교단의 전쟁책임에 관한 우리의 고백이라는 문서였다.1) 호마래는 내 곁에 앉아서 일본어로 된 세 페이지의 문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꼼꼼히 설명했다. 그리고 호마래는 진심을 다해 나에게 사과했다. 일본 사람에게 처음 들어 본 사과였다. 그제야 한주도 빠짐없이 매 주일 오후, 한국어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호마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호마래는 자신을 불편해하는 나를 향해 계속해서 다가오고,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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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마래가 사과와 함께 설명해주었던 일본홀리네스교단의 전쟁책임에 관한 우리의 고백 문서

 

 

난징위안부기념관에서 만난 십자가

 

MCC에서 평화교육가로 일하게 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모임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2019년에는 중국 난징에서 동북아시아 평화훈련원(Northeast Asia Regional Peacebuilding Institute NARPI)의 여름 프로그램이 열렸다. 1주차 프로그램을 마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은 814일 난징위안부기념관을 찾았다.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이 위안소는 이 공간을 비롯해서 아시아 각지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일들을 증언하고 있었다. 전시관 2층의 한 방은 레이 구이잉(Lei Guiyang) 할머니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1928년 난징 근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위안소에서 허드렛일을 돕다가 위안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소품들 가운데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었다. 오래된 찬송가와 작은 십자고상이었다. 할머니는 크리스천이었을까? 십자고상을 위안부 기념관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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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위안부기념관에 소장된 레이 구이잉(Lei Guiyang) 할머니의 십자가

 

다음 날인 815, 우리는 또 다른 아픈 역사의 현장인 난징대학살기념관을 방문했다. 참가자 중에는 타이완에서 온 알렉스가 있었다. 알렉스의 가족은 원래 난징에서 살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난징대학살의 희생자였다. 그렇기에 알렉스에게 이번 난징 방문은 여러 가지로 뜻깊은 일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알렉스는 그날 저녁 자기 방에서 룸메이트인 일본 신부님과 함께 성모승천대축일을 기념하기로 했다며 나를 초대했다. 그날 저녁 성공회교회에 출석 중인 타이완의 알렉스, 한국에서 온 메노나이트 성한, 한국에서 온 가톨릭 다빈은 일본에서 온 준 신부와 함께 기도하며 성모승천대축일을 기념하였다. 국적이 다른 가톨릭, 개신교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인 것이다.

 

그날 함께 묵상한 구절은 루카복음 1장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노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순서에 따라 마리아의 노래를 읽는 동안, 레이 구이잉 할머니를 떠올렸다. 고난 가운데 있던 레이 구이잉의 삶을 돌보셨을 하느님께서, 시간을 넘어, 국경과 민족을 넘어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어버리시는 분임을 굳게 믿기에 이 소망을 함께 품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난징의 여러 곳에서 함께 보고, 들었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이야기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나눈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빵과 하나의 잔을 통해서, 각자의 국적과 지난 역사를 넘어서, 새로운 존재인 새로운 우리, New We”가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성찬의 정치학을 제안하는 캐버너는 그날 난징에서 우리가 겪은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해 준다.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은 현재 살아 있는 미국인, 혹은 독일인이나 영국인과 동료 시민이 될 뿐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간 천상의 시민들, 우리가 달려갈 때 마주하게 될 천상의 시민들과도 동료 시민이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점 아래 우리는 모든 인류,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 모두를,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잠재적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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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크리스천화해포럼 참가자들의 모습

    

New We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우리가 된 우리는 그동안 익숙했던 각자의 위치와 정체성을 넘어서 서로의 자리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가담하지 않은 선대의 죄악을 사죄하는 일본의 그리스도인 호마래는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난징대학살에서 할아버지를 잃은 알렉스에게 일본인 준이 나누는 그리스도의 몸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참혹한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로 마음이 무거웠을 다빈에게 마리아의 확신에 찬 노래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화해를 향한 길은 곧지 않고, 복잡하며, 멀리 돌아가야 하는 길이다. 그러나 화해의 여정은 단지 목적지로 빨리 가야하는 이동이 아니라 화해의 과정이기도 하다. 화해의 경험과 화해의 이야기 없이, 이해관계나 정치적 협상 결과로서의 이루어지는 화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호마래가 나를 향해 걸어왔듯이 나도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사과의 이야기를 내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회해야 할 이들에게 할 이야기를 준비해야 한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우리는 화해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교회가 먼저 화해의 공동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드러내야 할 다른 세상의 빛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를 바란다.

    

 

1) Our Confession Concerning the Wartime Responsibility of the Japan Holiness Church

2) 윌리럼 T. 캐버너/손민석 옮김,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서울: 비아, 2019), 18.

 

 

 

김성한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동북아시아 대표)

 교회사평화학선교학을 공부했다한국기독학생회(IVF) 간사로 일했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에서 평화교육가이자 동북아시아 지역 대표로 일하고 있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코드셋이란 밴드에서 기타와 노래를 담당한다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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