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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사회교리 다시 생각하기 - 개념 살피기

조현범 121.♡.116.95
2021.03.31 14:03 3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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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의 체질 변화

 

1980년대에 한국 천주교의 교세가 큰 폭으로 증가한 적이 있었다. 1974년에 신자 수가 1백만 명을 약간 넘는 정도였는데, 1986년에 2백만 명을 훌쩍 넘어 2배가량 증가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아마도 한국 천주교의 구성원들이 독재 정권의 민주주의 탄압,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활동을 하였던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일반인들로부터 사회적 공신력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나아가서 천주교라는 종교 자체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사실 한국 천주교가 걸어온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런 모습은 상당히 낯선 풍경이라고 해야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온 천주교는 조상 제사를 우상 숭배로 배척하는 등 선교지역의 문화에 융화되는 길을 거절하였다. 이것이 조정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는 교회 당국자들이 총독부의 식민 통치에 순응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래서 천주교는 민족과 사회의 현실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고립된 소수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환점으로 하여 한국 천주교의 체질이 크게 변하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토착화라는 이름 아래에 복음과 문화의 만남을 모색하는 시도들이 등장하였다. 덩달아 조상 제사도 용인하는 폭이 넓어졌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크게 증폭되었고, 이에 따라 천주교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천주교의 사회적 실천에서 그 반경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독재 정권을 물리치는 민주화 운동도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고,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정당한 생존권과 정치적 자기주장을 보장하는 운동 역시 자체적인 역량에 의해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인권이나 환경, 평화 그리고 특별히 이주민 관련 문제 등 천주교 활동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영역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기에 새로운 활동 분야에 걸맞은 활동 방식, 교회 구성원의 지지와 성원을 얻기 위한 노력 등이 필요하다.

 

사회교리, 다시 생각하기

 

천주교에서는 이렇게 자신과 동료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고 직접 참여하여 실천하는 것이 신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고 본다. 그리고 교회의 다양한 규범들과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사회적 실천의 당위성을 강조할 때 사회교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나는 사회교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과연 사회교리라는 표현이 적절한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 천주교의 사회 참여가 무디어진 원인이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일까? 천주교가 한국 사회 전체의 공적 담론 영역에 참여할 때 사회교리를 자기 발언의 준거로 삼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이 사회교리에 관한 논의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중요한 논제라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이 명쾌한 답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생각을 가다듬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사회교리와 한국 천주교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서 찬찬히 따져보아야 할 것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몇 회로 나누어 글을 실을 계획이며, 이번 글에서는 먼저 사회교리 개념의 문제를 다루겠다.

 

사회교리의 출발점

 

이른바 사회교리(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근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천주교의 공식적인 가르침정도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가르침의 시작 지점은 레오 13세 교황이 1891년에 반포한 회칙(回勅)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이다. 말하자면 사회교리의 효시는 레오 13세 교황이라는 것이다. 레오 13세 교황은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병폐를 지적하고 정의와 평등이라는 기준에 따라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제시하였다.

 

그 이후로 100여 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문제들에 대하여 역대 교황들이 반포한 문헌,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세계 주교회의 및 지역 주교회의 등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발표한 문헌 그리고 지역교회에 보낸 서한 등이 축적되었다. 그 문서들에 담긴 내용 등을 총괄해서 사회교리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는 천주교 신자, 성직자, 수도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각종 사회운동에서 활동의 지침으로 여기는 가르침이 사회교리인 셈이다.

 

그런데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이 사회교리의 효시라고 했지만 기실 그 문헌에는 사회교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교회의 선익이나 공공선, 정의와 평등 등을 거론하지만 그러한 개념들을 묶어서 사회교리라고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사회교리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일까?

 

번역어로서의 사회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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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3세 교황의 회칙이 나온 뒤로 40년이 지난 1931년에 비오 11세 교황이 사십 주년(Quadragessimo Anno)이라는 문헌을 회칙으로 반포하였다. 이 문헌의 제9항의 한국어 번역문을 읽으면 사회교리라는 용어가 보인다.

 

“9. 그리하여 교황 레오 13세 회칙의 인도와 빛 안에서 가톨릭의 진정한 사회교리가 성립되었으며, 본인이 교회의 협력자로 선정한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그 사회교리는 나날이 촉진되고 풍부해지고 있다. 그들은 사회교리를 학문의 그늘에 숨겨놓지 않고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가톨릭 대학교, 대학, 신학교에서 자주 열리는 풍부한 강좌, 그리고 만족한 성과를 거두면서 종종 개최되는 사회적 집회와 주간 모임’, 그리고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건전하고도 시의적절한 출판물들이 사회교리를 명백히 보여준다.”

 

위의 한국어 번역문은 주교회의 홈페이지 교황 문헌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이 회칙의 라틴어 원문을 찾아보면 사회와 경제 문제에 관한 교리(doctrina de re sociali et oeconomica), 가톨릭의 사회 관련 가르침(disciplina socialis catholica) 등과 같이 교리(doctrina)와 가르침(disciplina)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어 번역문을 찾아보면 아예 진정한 가톨릭 사회과학(true Catholic social science)’으로 의역되어 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보면 비오 11세 교황 회칙을 번역할 때 처음부터 사회교리라는 번역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한국 천주교에서 사회교리라는 말이 정립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 용어를 사용하여 사십 주년을 번역하였다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


교황 회칙에 나오는 용어를 사회 관련 가르침으로 번역하느냐, 아니면 사회교리로 번역하느냐의 문제는 지엽적일 수 있다. 아마 사회 문제를 대하는 천주교의 입장, 실천적 지침에 좀 더 강한 권위가 부여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사회교리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것 같다. 용어의 번역과 사용에서 미묘한 차이를 지적하는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영미권에서도 제기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몇 가지 용어들(Catholic social teaching,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이 혼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용어 번역 문제에 대해서 논쟁하기보다는 대충 동의어로 보고 넘어가는 식이다.

 

사회교리 용어의 정착

 

그러면 언제부터 한국 천주교에서는 사회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을까? 이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먼저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1990년에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Revisited(교회의 사회 관련 교리, 개정판)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는 1992년에 이 책을 '사회교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그리고 1994년 한국에서 제1회 아시아 평신도 회의가 열렸을 때 그 주제가 평신도의 사회교리 실천이었다. 이어서 1995년에는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회교리학교를 개설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면 대체로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천주교에서는 사회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울대교구 사회 사목부에서 1995년에 '가톨릭 사회교리'라는 책을 펴내면서 용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서울대교구 사회 사목부에서는 이 용어에 대한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신자들에게 사회성을 강조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교리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사회교리는 천주교의 고유한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는 천주교의 사회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천주교 인사들마저도 사회교리라는 용어를 거부하지 못하고 올바른 사회교리와 같은 형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을 정도이다.

 

사회교리의 위상

 

사회 문제에 대한 천주교의 공식적인 판단이나 입장,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행동 지침 등은 삼위일체, 무염시태, 강생, 대속(代贖) 등 신앙의 근본 원리에 관한 교리적인 판단과는 차원이 같지 않다. 그래서 인류에 대한 신적인 사랑과 구원의 경륜, 교회의 사명 등을 다루는 원론적인 준칙이 대전제로 존재하지만, 인권과 공동선, 노동 문제와 경제 및 정치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대응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모든 상황에서 모든 신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지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교리라고 불러도 되는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과연 사회교리가 모든 천주교 신자들이 준수해야 하는 의무 규정인지, 아니면 교회 당국의 단순한 의견 표명 내지는 권고 사항인지를 둘러싸고 해석상의 편차가 존재하는 형편이다.

 

물론 사회교리를 믿을 교리에 버금가는 행할 교리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르면 천주교의 공식적인 교리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3그리스도인의 삶에 들어 있는 사회 정의 및 십계명 해설이 바로 사회교리의 모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교리 역시 천주교 교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사회교리에 담긴 의미와 내용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은 애초에 사회교리라는 용어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간과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어느 한쪽 입장을 선택한다고 해서 개념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사회교리 용어를 유지하면서, 한국 천주교에서 사회교리 관련 실천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공적 담론의 차원에서 사회교리가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논쟁점 등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그런 연후에 다시 개념의 문제를 거론하고자 한다.

 

조현범 토마스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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