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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예수에게로 가는 길은 없다. 예수가 길이다.

김성한 121.♡.116.95
2021.01.26 16:45 5,83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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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뱁티스트 순교자 더크 윌렘스. 그는 이단으로 몰려 도망치던 중 자신을 쫓는 경비병이 빙판에 빠지자 그를 구하고 결국 붙잡혀 순교했다.

 

크리스텐덤 너머

 

소종파라고 할 수 있는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전통에 속한 필자에게 콘스탄티누스 전환이 가톨릭 교회사가의 저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스만은 콘스탄티누스 전환이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평가한다.1)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훨씬 이전인 16세기에 이미 콘스탄티누스 전환이 만들어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하고도 급진적인 질문과 실천이 존재했다. 루터와 칼뱅과 같은 개혁가들이 주도했던 개혁운동이 지역 봉건 영주들의 보호와 후원 가운데 이루어졌기에 관료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이라 불리는 동안 아나뱁티스트와 같은 이들은 관료적 종교개혁 그룹이 다루지 않았던 국가와 교회, 크리스텐덤에 대해 질문했기에 급진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으로 분류된다.

 

최근 한국 교회에서 크리스텐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선교적 교회운동이라 번역할 수 있는 미션얼 처치(Missional Church)의 이론가와 실천가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2009년 번역 소개되어 이후의 미션얼 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가 쓴 새로운 교회가 온다가 그 좋은 예다.2) 프로스트와 허쉬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론(Christology)이 선교론(Missiology)을 결정하고 이어서 선교론이 교회론(Ecclesiology)을 결정한다는 빛나는 문장을 남겼다.3) 이 당연해 보이는 순서는 놀랍게도 교회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다른 순서로 진술되고 실천되었다. 가장 비극적인 역전 현상을 찾는다면 십자군 전쟁과 기독교 제국의 식민 지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국과 교회가 구별되지 않는 크리스텐덤 상황에서 국가교회의 교회론은 그에 합당한 선교학을 결정했고 그 선교학은 3M이라 불리는 선교사 (Missionary), 무역상 (Merchant), 군대 (Military)의 모습으로 실현되었다. 지배와 폭력을 통해 소개되는 예수의 복음이 어떤 기독론을 제시하고 있을지는 분명해 보인다. 프로스트와 허쉬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여전히 이 뒤집힌 순서를 바로잡는다고 해도 어떤 그리스도론인가?”라는 질문이 남아있다.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루터는 율법이 아닌 복음을 재발견하였다.4) 개혁가들은 예수의 가르침, 행동, 선택보다 예수의 구원 사건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더 강조한다. 그리고 이 구원에 대한 이해가 성서에 대한 해석학의 열쇠를 제공한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의 구원 사역을 기술한 교리보다는 예수 그 자신에 집중한다. 예수는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닮아야 할 모범이요 따르고 순종해야 할 선생님이기 때문이다.5) 이들의 급진적 주장은 제도화된 그리스도교를 떠나 사막으로 갔던 은수자들과 수도원 전통과 만나는 지점들이 있다. 그리스도론을 가장 앞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프로스트와 허쉬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굳이 16세기 급진주의자들의 성서해석학을 언급하는 이유는 (결국-) 구원론으로 모든 것을 수렴하거나 환원하는 그리스도론과 성서해석은 다시 납작한 복음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수가 전한 평화의 복음이 낯설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정작 예수의 삶과 모범을 다 걷어내고서 구원에 대한 교리를 성서에 대한 해석학의 열쇠로 여겼기 때문 아니던가? 낯선 이야기가 되어버린 평화의 복음을 새롭게 만나려면 교리와 전통 너머에 있는 예수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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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진리, 생명 

 

예수는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의 복음서 14:5)라고 선언했다. “예수가 길, 진리, 생명이라는 선언을 통해 지금 우리 시대와 상황 속에서 필요한 평화의 복음의 성격을 생각해보자.

 

1. 예수는 길이다

개신교회는 얼마 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했다. ‘소수 종파의 시선으로 볼 때 종교개혁은 콘스탄티누스 전환과 크리스텐덤의 문제들 가운데 교권주의(clericalism)의 폐단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전환으로 실종된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하나의 윤리를 회복하는 것은 실패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벽을 허물고, 모두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로 살기위해 모든 사람이 제사장임을 선언했지만,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제자로 살라는 초청은 희미해져 버렸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은 그리스도교 윤리의 최대치는 구원을 위한 근검절약과 성실한 삶으로 축소되고 자본주의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인상적이다.

 

2. 예수는 진리다

예수가 진리라는 주장이 가장 강력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우리를 둘러싼, 우리를 억누르는 우상들이 폭로될 때다. 우리는 진보와 번영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만들어 놓은 많은 우상이 연합하고 동맹을 맺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한 세상을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교회는 여러 우상을 호명하고 진리의 빛으로 폭로하기보다 그 우상들과 손을 잡았다. “내가 진리라는 예수의 주장에 마음을 열고 반응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깊숙한 곳에 있는 우상들을 비추신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교회의 오랜 친구였으며,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를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군비 지출과 군사주의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잘 살아보기를 원하는 각 개인의 욕망을 사로잡고 있는 물질 번영의 이데올로기는 가장 강력한 이 시대의 우상이다.

 

3. 예수는 생명이다

우리는 예수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가져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는 많은 역설의 주인공이다.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약함으로 강해지며, 증오가 아닌 사랑과 배제가 아닌 환대를 선택하게 된다. 예수가 가져온 (영원한)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생명이 영원하다는 물리적 특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하느님과 함께하는 질적인 특성에 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과의 연합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죽음과 폭력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불러오는 모든 폭력과 파괴에 대해 맞서게 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조화를 이루며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온전한 반응일 것이다. 이는 또한 평화에 대한 관심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이 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길이라는 예수의 선언을 어떻게 이해할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은 예수의 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가 걸었던 평화의 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예수에게로 가는 길은 없다. 예수가 길이다로 바꿔보자.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그 길을 함께 걷자     

 

 

 1) 에른스트 다스만/하성수 옮김 교회사ll/1(왜관: 분도출판사, 2013), 24.

 2) 마이클 프로스트, 앨런 허쉬/지성근 옮김 새로운 교회가 온다(서울: IVP, 2009)

 3) 마이클 프로스트, 앨런 허쉬, 371.

 4)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은 '복음의 재발견'으로 촉발되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지적하면서, 율법과 날카롭게 대조되는 복음의 중심성을 강조하였다. 복음에 대한 이 같은 강조 때문에 루터를 따르는 무리들은 '가톨릭(Katholisch)'과 구분되는 '복음주의(Evangelish)'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김정형, “교회 일치를 위한 온전한 복음 이해”, 종교개혁 500, 그 빛과 어둠(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2016), 245.

 5) Lloyd Pietersen,Reading the Bible After Christendom(Harrisonburg: Herald Press, 2012), 71.

 

  


 

김성한 (평화교육가)

교회사평화학선교학을 공부했다한국기독학생회(IVF) 간사로 일했다.

 지금은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평화교육가로 일하고 있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코드셋이란 밴드에서 기타와 노래를 담당한다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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