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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코로나 학기를 함께 보낸 학생들에게

조현철SJ 120.♡.158.47
2020.12.22 17:04 17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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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학기, 비대면 수업으로 얼굴도 한번 못 본 우리 학생들, 안녕하세요. 지난 학기 저는 여러분과 <인간학>이란 교과목으로 사람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제가 근원적 유대를 반복해서 강조했던 걸 기억하겠지요.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를 하나의 으로 보면 우리는 그 집의 구성원이고 경제(오이코노미아)는 집(오이코스)살림살이를 뜻합니다. 하지만 근대의 자연과학적 관점은 모든 것을 고유성과 생명을 제거한 물질로 균질화했습니다. 물질과 운동만 남은 추상의 세계는 기계로 재구성되었고 그 안의 모든 것은 부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근원적 유대를 제거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산업주의 시장경제의 풍요로운 토양이 되었습니다. 산업화로 자연은 자원의 창고와 개발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파헤쳐졌습니다. 분업과 기계화로 생산과 소비가 늘고 시장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장이 사회에 봉사하지 않고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합니다. 상품이 아닌 것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정한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노동력과 임금을 교환하는 임금 노동으로 사람은 상품이 됩니다. 사람과 그 노동력은 구별할 순 있어도 분리할 순 없으니까요.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백신은 전 인류에게 필요한 공공재 같지만 일단 개발된 백신은 시장의 상품입니다. 백신을 확보하려면 구매력과 협상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죽음은 서비스 산업의 가장 안정적 품목이고 장례식장은 대형병원에서 가장 확실한 수입원입니다. 사람은 언젠간 죽으니까요. 평등과 공정과 정의도 시장 논리로 규정되고 평가됩니다.

 

시장은 신격화되었습니다(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56). 우리는 시장 의 충실한 신자, ‘호모 에코노미쿠스입니다.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수록 좋다는 시장의 교리를 굳게 믿고 따릅니다. 자유는 소비의 자유를 뜻하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나의 의지의 자유를 포기합니다.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증가를 뜻하는 성장이 행복을 뜻한다고 믿습니다. 필요가 아니라 성장을 위해 생산과 소비를 늘립니다. 그만큼 자원을 더 소비하고 쓰레기를 더 생산합니다. 그렇지만 시장의 교리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리는 온실가스로 계속 지구를 데웠고 이제 기후변화는 모두의 위기가 되었습니다. 성장을 위한 개발과 채굴로 자기의 서식처를 잃은 야생동물이 사람의 자리로 들어오며 바이러스도 따라왔습니다. 우리가 시장의 충실한 신자인 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재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겁니다. 글쎄, 이걸 행복한 현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성장의 환상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 이미 지났습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삶은 자꾸 힘들어집니다. 역사적으로, 경제성장은 세상의 근원적 유대를 깨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장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적 파괴도 심해졌지요. 살기 힘들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성장은 행복과 무관할 뿐 아니라 행복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다행히 이 현실은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입니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면, 현실은 우리가 세상을 기계와 시장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시장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삶이 편리하도록 고안한 제도입니다. 우리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면 현실은 변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강의 주제마다 여러분의 생각을 글로 읽었습니다. 거기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와 함께 현실에서 오는 좌절과 두려움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앞엔 현실이라는 거대하고 탁한 흐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흐름에 여러분 자신을 그냥 맡겨버리지는 말았으면. 그러기에 여러분은 아직 너무 큰 가능성입니다. 여러분이 더 오래 지낼 세상입니다. 쉽진 않겠지만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겁니다. 4차가 아니라 5차 산업혁명이 온다고 해도, 이윤과 성장, 사회적 불평등과 자연생태계 훼손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사회의 흐름은 계속될 겁니다, 파국이 올 때까지.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애쓰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함께, 여러분도 변화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시장을 으로, 시장경제를 삶의 경제로 바꾸는 변화 말입니다.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 의문과 우려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사만 보아도 변화는 사실 성공과 승리보다 실패와 좌절로 생겨났습니다. 개인의 삶도 비슷하지요.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우리를 바꿉니다. ‘실현 가능한지가 아니라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지요.

여러분에 대한 기억은 사진으로 어렴풋이 남겠지만, 소중한 인연으로 깊이 간직합니다. 모두,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빕니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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