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매거진

image

  

[환경] 농촌, 아픈 우리 손가락

조현철SJ 118.♡.21.101
2024.10.21 14:10 217 0

본문

  

웹진 이미지 규격.png

 

지난 6월 말 북한산에 갔다가 손을 다쳤다. 평소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는데 발이 꼬이면서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일어나 보니 다른 데는 괜찮은 듯한데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몸에 깔려 좀 심하게 접질렸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손가락이 많이 부었다. 바로 동네 병원에 갔더니 한 3주 정도 손가락을 쓰지 않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냥 가만히 뒀더니 시간이 갈수록 손가락이 더 불편해졌다. 아프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고 나면 손가락이 뻣뻣해져 굽혀지질 않는다. 손가락을 천천히 힘껏 당겨야 겨우 주먹을 쥘 만큼 굽혀진다.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병원에 갔더니 인대를 다쳤는데 제때 재활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곳 의사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아픈 관절 부위를 힘껏 누르고 제치는 운동을 하면 손가락이 조금 편해진다. 그런데 금방 다시 뻣뻣해진다. 손가락이 제대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듯하다.

 

손가락이 아프니까 몸의 중심은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지금 가장 아픈 곳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요즘은 다친 손가락이 내 몸의 중심이다. 시간과 신경을 가장 많이 쓴다. 그렇게 하면 몸이 편안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어디 사람 몸만 그럴까. 우리 사회도 가장 아픈 곳을 중심에 놓을 때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강원도 철원, 경기도 안성, 충남 부여 등에서 논 갈아엎기가 벌어졌다. 농부들이 나락이 그득한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지난해 가을 쌀 80kg 한 가마에 20만 원대였던 산지 가격이 최근 17만 원대로 떨어졌다. 농민 5,000여 명이 여의도에서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을 외친 게 2018년 가을이었다. 한 가마로 치면 24만 원이다.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여섯 해가 지났고 쌀 한 가마 값은 20만 원이 안 된다. 이게 오늘 농촌의 현실이다. 정부는 농부의 발길 손길이 여든여덟 번 가야 한다는 가을 논을 갈아엎는 농부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렸을까.

 

정부는 2005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쌀 목표가격제를 도입했다. 2020년 목표가격제를 폐지한 정부는 쌀값이 떨어지면 쌀을 매입해 적정 가격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2022년 쌀값이 폭락했고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정부는 야당이 주도한,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대신 쌀 한 가마 20만 원을 약속했다. 2019년 목표가격 214,000원보다도 적은 액수였지만, 올해는 결국 그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오락가락하는 쌀 정책과 그 결과를 보면 역대 정부가 지금까지 농촌과 농민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배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 가격이 폭등했다. 산지에서는 배추가 녹아내렸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번 금배추사태는 폭염과 폭우 탓이다. 특히 올가을 폭염과 폭우는 기후위기를 새삼 실감하게 했다. 여름은 더 더워졌고 길어졌다. 농민들은 이제 정부의 무관심에 더해 기후와 씨름해야 한다. 배추 가격이 폭등해도 농민들은 생산비가 급등해 금배추 팔아 동전 줍는형편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중국산 배추를 수입해 소비자 가격을 안정시킨다고 나섰다. 대책은 언제나 소비자 중심이고 생산자 농민은 소외된다. 기후위기로 극한 폭염과 폭우는 앞으로 더 심해질 텐데 단기 대책만 있고 농민을 중심에 둔 근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올해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 농민에게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약속했다. 우리도 이제 쌀은 물론이고 밀과 콩,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정책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 농촌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희생됐다. 농촌에 기생해온 도시는 비대해졌고 도시를 먹여 살린 농촌은 쪼그라들었다. 이제 농촌 인구는 전체 인구의 4.2%에 불과하다. 그나마 65세 이상이 절반가량이다. 농지면적도 줄고 있다. 정부는 식량이 부족하면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도체나 자동차, 스마트폰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말한다. 어이없는 발상이다. 사람을 먹여 살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농사다. 게다가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팬데믹, 농사에 결정적인 기후의 불안정 등으로 해외 식량 공급망의 안정적 확보는 갈수록 불확실해진다. 자유무역에 의한 식량 조달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실제로는 세계 곡물 메이저의 배만 불리는 신자유주의 식량안보개념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는 우리가 필요한 식량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능력을 뜻하는 식량주권확보에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사그라드는 농촌을 이제라도 우리 사회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먹을 것은 농촌에서 온다는 상식을 우리는 발전의 이름으로 부정했다. 상식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가 농촌을 병들게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농촌이 뻣뻣하게 부어있는 내 손가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먹을 것을 우리 입에 넣어준 농촌이 곧 우리 손가락이 아닌가. 그런 농촌이 병든 지 오래되었다. 딱하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 재활 시기를 놓쳐 늦긴 했어도 정성껏 보살피니 아픈 내 손가락은 조금씩 나아진다. 농촌, 아픈 우리 손가락도 꼭 그리되어야 한다.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