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나의 게으른 텃밭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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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수녀원 마당 한쪽에 텃밭이 있다. 지난봄, 나도 농사를 좀 지어볼 요량으로 밭 한 이랑을 얻었다. 폭 50cm, 길이 4m 정도의 작은 밭에 상추와 아욱과 흰 당근 씨앗을 심고, 토마토 모종 5주도 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다른 사람 농사를 도왔지 ‘내 밭’에 거름 주고 씨 뿌린 건 처음이다. 텃밭을 드나드니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겨울을 빼곤 거의 매일 아침저녁 집 근처 공터의 텃밭에 나가셨고 현관에는 언제나 삽, 호미, 곡괭이 같은 흙 묻은 농기구가 있었다. 아버지는 상추, 파, 감자, 들깨, 배추, 무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기르셨고 가을엔 김장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줄 만큼 소출도 상당했다. 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풍성한 소출은 농사 경험보다 아버지가 밭에 들인 정성 덕분이었을 것이다. 텃밭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 정성을 떠올리니 내 생애 첫 번째 텃밭의 결실에 대한 호기심은 컸지만 기대는 이내 접었다.
씨를 흙에 넣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슬슬 조바심이 나려는 데 싹이 텄다. 어제만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밭에 여기저기 싹이 살포시 올라왔다. 상추다. 저 여린 새싹들이 어떻게 흙을 밀고 올라왔을까, 볼수록 신통하고 신비하다. 내가 한 거라곤 해거름에 흙에 물 준 게 단데,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여린 상추 잎을 조금 따서 샐러드를 해봤다. 훌륭하다. 상추가 웃자라 더는 먹기 힘들 때까지 수시로 따서 먹었다. 그 작고 딱딱한 씨앗에 이렇게 풍요롭고 부드러운 생명이 깃들어 있다니.
땅은 씨앗을 품고 그 안에 잠든 생명을 깨워 세상에 내놓는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나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일해서 소출을 내는 건 사람이 아니라 땅이다. 사람은 옆에서 도울 뿐이다. 땅에 몸 붙여 사는 이들이 땅을 ‘어머니’로 여기고 공경했던 까닭일 테다.
사람은 땅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무용지물이다. 사람(‘아담’)은 흙(‘아다마’)에서 나왔다는 성서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이치다. 땅은 누구나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아무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땅의 소유권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은 결국 점유에 있고, 소수의 과점은 필시 강제 점유일 테다. 불의다.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오만과 탐욕이 온갖 갈등과 폭력의 뿌리요 온상이다. 성서는 땅은 하느님의 것이라 선언하여 인간이 땅을 영구적,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금한다. 오늘날 토지공개념의 ‘원조’ 격이다.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무차별 학살도 이스라엘의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땅의 점령에서 시작했다. 땅에 대한 성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팔레스타인 강점의 정당성을 성서에서 찾는 이스라엘은 뻔뻔한 건가 무지한 건가.
텃밭에 내가 심지 않은 들깨가 나왔다. 지난해 심었던 게 올해 다시 자라 깻잎이 무성해지는 걸 보니 성서의 ‘안식년’ 생각이 난다. 7년마다 땅을 묵히는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뿐만 아니라 너희의 남종과 여종과 품팔이꾼, 그리고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거류민의 양식이 될 것이다. 또한 너희 가축과 너의 땅에 사는 짐승까지도 땅에서 나는 온갖 소출을 먹을 것이다.” 땅은 인간뿐 아니라 뭇 생명체를 살리려고 일한다. 안식년은 적어도 7년에 한 번은 땅을 쉬게 하고, 그해 땅의 결실은 모든 생명체에게 돌리라 한다. 땅이 관대하듯이 우리도 관대해지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땅이 거저 내주는 걸 독차지하려고 온갖 모진 짓을 서슴지 않는 욕망에 찌든 인간들은 땅까지 망가뜨리기 일쑤다. 거저 받은 깻잎을 몇 사람과 나누었다.
토마토 줄기가 조금씩 올라와 그 옆에 버팀목을 세웠다. 예전에 괴산의 솔뫼 농장 농부들과 지낼 때 토마토 순 땄던 건 기억하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어떻게 따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알아봐야지 하며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짠하며 토마토가 나타났다. 순을 제대로 따주지 않아선지 씨알이 작고 아직은 푸르른 그러나 분명한 토마토다. 벌써 새들이 쪼아먹는다. 다 익길 기다리다 맛도 못 볼라, 눈에 잘 띄는 데 있는 토마토부터 따서 집안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었다. 며칠이 지나자 토마토가 조금씩 익어간다. 수줍은 듯 발그스레 변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그냥 먹기가 미안하다.
땅은 누구에게나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내어준다. 올해 텃밭은 게으른 내게도 풍성히 베풀어주었다. 땅의 마음일 것이다. 텃밭에서 받은 것 못지않게, 배운 게 많다. 내년엔 텃밭에서 마음 농사도 부지런히 지어야겠다.
조현철(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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