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탄소중립, 무엇이 문제인가?
조현철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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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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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2023년 7월이 역대 가장 더운 달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warming) 시대가 끝나고 지구가 들끓는(boiling)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제 지구 가열화 시대로 들어섰다. 지구를 달구어 온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인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자 2015년 12월 파리에서 195개국 대표가 모여 체결한 것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2021년, 이 협약이 발효했다. 파리협약의 골자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도로 제한하고 가능하면 1.5도로 막자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각국은 자발적으로 정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유엔에 제출하기로 했다.
협약 체결 3년 후인 2018년 우리나라 인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특별보고서는 당시의 추세라면 지구 평균 온도가 늦어도 2052년에 1.5도 오를 것이라며 2100년까지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2도가 상승하면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기후 재앙이 발생하리라는 예측을 근거로 한 권고였다. 상황이 더 급해졌다. 이 보고서는 온도 상승을 1.5도로 막으려면 2030년에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감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 중립(carbon neutral)은 대기에 배출한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한다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힘겨운 목표다. 여하튼 이때부터 ‘2050 탄소중립’이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목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2021년 9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했다. 2023년 4월 현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기본계획)’을 확정했고, ‘2030 NDC’는 전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2018년 대비 40% 감축’을 유지했다. (2018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CO₂eq)은 727.6백만톤, 순배출량은 686.3백만톤이고, 기본계획에 제시한 2030년 총배출량은 508.7백만톤, 순배출량은 436.6백만톤이다. ‘2018년 대비 40% 감축’은 2018년은 총배출량으로 2030년은 순배출량으로 계산한 결과로써 이렇게 계산한 것은 감축량을 늘려 보이기 위한 편법이다. 양쪽 모두 총배출량으로 계산하면 감축량은 30%로, 순배출량으로 계산하면 36.4%로 떨어진다.)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개념이지만, 대증적이고 단선적인 접근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실제로 탄소중립이 화두로 떠오르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떻게든 온실가스 배출량만 줄이면 된다는 발상이 기후 문제를 지배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온도 상승은 빨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2022년 10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2022 NDC 종합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이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준수했을 때 2100년 지구 평균 온도가 2.5도 상승하리라 예측했다. IPCC가 권고한 1.5도를 1도나 초과하는 수치다. 더구나 이 예측치는 감축 약속의 준수를 전제한 것이며 실제로 약속을 지키는 국가는 거의 없다. (2022년 11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에 따르면,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3년 3월 IPCC 제58차 총회가 승인한 ‘제6차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1850~1900년) 이후 지구 평균 온도는 1.09도 상승했으며, 현재의 추세라면 2040년에 1.5도 상승하리라고 예측했다. 2015년의 특별보고서보다 1.5도 상승 기간이 10년 이상 줄어들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인류를 위한 생존 지침”이라고 부른 이 보고서는 인류의 미래가 향후 10년간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고 경고한다. 기후 문제는 이처럼 위급해지는데, 세계는 태연하고 느긋해 보인다.
탄소중립 위주의 담론은 자칫하면 지구가 가열되는 과정의 역사적·사회적·경제적 맥락을 배제하고, 이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과 지역의 문제를 단순한 온도의 문제로 대체하기 쉽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정의 문제가 의도적으로 무시되는 수도 많다. 오늘날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난민 대부분은 가뭄과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기후 난민’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극한의 가뭄과 가난, 내전 등은 유럽의 식민지 통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가난한 나라와 사람은 기후위기의 책임이 적지만 그 피해는 더 빨리 더 많이 받는다.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원으로 지목받는 석탄화력발전소와 같은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대책 없이 대량 실업에 내몰리고 생계 위협을 감내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사회적, 경제적 맥락이 가려질수록 기후 대책은 온실가스의 양적 감축에 집중하고 그럴수록 기술과 시장에 의존하게 된다. 기술과 시장은 경제성장의 동력을 제공하며 대량 생산과 소비로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왔다. 이런 역사가 있는 기술과 시장에 기대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기에 필요한 만큼 감축하겠다는 것은 환상이거나 사기에 불과하다. 기술과 시장을 지배하는 자본은 기후 문제를 또 하나의 거대한 돈벌이 사업으로 여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환도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자 산과 논밭, 바다가 망가지고 지역민의 삶이 훼손되는 등 사회적, 생태적 부작용이 컸다.)
기후 위기 대응이 기술과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은 우리나라의 제1차 ‘기본계획’에서도 드러난다. 이 기본계획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기존의 ‘2030 NDC’를 수치상으로만 유지했을 뿐 전체적으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2023년에서 2042년까지 향후 20년의 계획에 2030년 이후의 계획은 아예 없고 2030년까지 계획은 성의가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줄였다. 줄어든 감축량은 ‘국제 감축’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기술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산업계가 끈질기게 요구해온 대로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국제 감축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 줄이고 이것을 자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급박한 상황에서 국제 감축을 과다 책정해 국내 감축으로 이전하는 것은 한가한 숫자놀음이다. 대규모 상용화가 매우 불투명한 미래 기술인 CCUS로 온실가스 감축량을 늘리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다.
이번 기본계획을 보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상쇄 배출권’ 한도가 기존의 5%에서 10%로 늘었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에 연간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실제 배출량을 평가하여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는 제도이며, 상쇄 배출권은 한 사업장이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이것을 자기의 감축량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배출권거래제와 상쇄 배출권은 기본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시장에 맡기자는 발상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와 상쇄 배출권의 가장 큰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도 ‘거래’하고 ‘상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 제도는 온실가스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으로 여기면서 대기라는 공공재를 사유화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대기를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를 돈으로 살 수 있음을 뜻한다. 상쇄 배출권은 밖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면 안에서는 그만큼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권리, 지구를 더 가열할 권리를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현실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에너지 사용의 축소, 곧 편익의 축소와 직결된다. 상쇄 배출권 한도를 늘린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누리는 편익을 유지하려고 다른 지역에 불편을 떠넘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와 상쇄 배출권의 실제 효과를 떠나서 우리는 먼저 이런 태도가 윤리적으로 타당한지 물어야 한다. 특히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나라와 기업이 이런 대책을 선호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배출권거래제는 “새로운 형태의 투기를 유발할 수 있으며 세계적인 오염 가스 배출 감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LS 171항). 기술과 시장에 의존하다가 때를 놓치면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조현철(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2023 창조시기를 맞아 '기후위기와 생태적 회심'을 주제로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조현철 신부의 특별 기고가 세 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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