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한반도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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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31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반면 현재 남북은 개성공단 내에 세워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어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이 회담을 마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하고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9월 14일 설치되었다. 세워진 지 겨우 2년도 안 되어 폭파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겨울의 시작이다. 한여름에 맞이하는 겨울이기에 더욱 춥기만 하다. 6·25전쟁이 멈춘 지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전쟁의 위험과 상처가 남아 있다. 이렇게 얼어붙은 한반도의 봄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마치고 해방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잠시뿐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분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미국, 소련,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였던 독일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분할 통치한 것처럼 일본 본토를 분할 점령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군이 1945년 8월 9일 일본과 전쟁을 선포하고 ‘만주전략공세작전’에 성공하고 빠르게 남하하여 한반도 북쪽을 점령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미국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한반도를 38선을 경계로 하여 분할하자고 소련에 제안하였다. 소련군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45년 8월 23일 개성까지 내려왔었지만 9월 초에 38선 이북으로 철수하였다. 그리고 미군이 남쪽에 주둔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한반도는 분단된 상황에서 각자 이념이 다른 독립된 두 정부를 수립하였다. 남쪽은 미군의 점령하에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민주주의 정부가 출범하였고, 북쪽에서는 소련군의 점령하에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두 정부는 각자 다른 통일론을 내세우면서 대립되었다. 북한은 ‘국토완정론’, 남한은 ‘북진통일’이라는 통일론을 내세우고 있었다. 두 통일론은 한반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고자 하는 내용은 비슷하였지만 완전히 다른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완정론은 분단의 책임을 남한에 떠넘기고 남한에도 사회주의를 이식해 한반도 전체를 사회주의화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남한을 통일시키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북한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결속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남한은 북진통일론을 주장하였지만 당시 남한의 군사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북한은 뛰어난 전투력과 소련제 무기들이 배치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승만 정권이 북진통일론을 내세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하여 통일정부를 지향하는 김구를 지지하는 세력을 무력화하고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는 반공·반북 세력을 결집하고자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유발하여 가능하면 더 많은 미국의 원조를 끌어내려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두 통일론은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통일 국가를 이루겠다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결과적으로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한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1950년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6·25전쟁은 승자가 없는 패자들만 존재하는 전쟁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비극 속에 영구 분단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독일은 올해 통일 3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된 지 41년 만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서독의 국민들이 평화적인 교류·협력이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으며 평화 경제의 미래상을 국내외에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 독일이 주변 국가들의 안보 위협이 되기보다는 유럽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변 국가들을 설득하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에서는 종교 간의 교류가 큰 역할을 하였다. 정치적인 관계가 어려운 시기에도 종교 간의 교류는 계속 이루어졌다. 독일의 통일은 정부 주도가 아닌 주민들이 중심이 된,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시작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기도모임을 가지고 여행 자유화와 교류를 외치기 시작하였으며, 동독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이 이어지며 내부개혁을 가져왔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은 대부분 강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들이 이끌고 있다. 그들은 자국 이기주의와 패권주의를 내세우면서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는 강대국 사이에서 압박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세력 다툼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한은, 통일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안보와 공동번영이라는 미래상을 보여주고 안정감을 심어 주면서 주변 국가들을 설득시켰듯이, 한반도의 평화가 주변국가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고 통일이 되더라도 주변 국가들의 경쟁구도가 아닌 협력구도를 통해서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먼저 화해하고 평화체제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해야 한다. 히가시 다이사쿠는 <적과의 대화>라는 책에서 전쟁하는 당사자들은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전쟁을 끝내려고 해도 계속한다고 표현하였다. 지금 남북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이다. 전쟁은 적의 개념을 필요로 한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남아 있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 안에도 전쟁의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이 상처는 여전히 북한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제 그 상처를 넘어 형제적인 사랑으로 십자가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이다. 사회교리는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용서와 화해는 창조주의 본래 계획에 따라 인간의 다중적인 관계망을 회복하기 위한 진실 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성숙한 용서와 화해가 주는 열매는 평화다. 그리스도인은 인류가 화해하여 평화로운 가족이 되도록 수고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위해서 자신을 못 박은 이들을 저주하기보다는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미신 예수님의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북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교황의 회칙은 교회가 ‘교사와 어머니’의 역할을 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많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북한학을 전공하였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교구별 본당에서 대림절이나 사순절에 북한학을 전공한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초대해서 강의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분명 북한은 변화하고 있지만 천주교 내 일부는 여전히 북한을 이념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있다.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시점에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을 이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평화의 하느님께 희망을 두어야 한다. 교회는 남북이 분단된 이후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남한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밤 9시에 ‘주모경’을 바치도록 초대하고 있다. 모임을 하다보면 이 시간에 핸드폰 알람이 울리는 신자들을 만나게 된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오 5.9). 예수님은 평화란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하느님의 사명이다.
김연수 신부 (예수회)
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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