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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잘못된 첫 단추가 초래한 비극-태국 캄보디아 국경 분쟁

김민SJ 121.♡.226.2
2026.01.23 16:19 16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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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 DALL-E 생성 이미지

 

대학시절 은사가 나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너는 전쟁의 이미지가 어떤 것이니?”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한국전쟁의 기억이 불현듯 찾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분의 소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나한테 전쟁은 전선 줄이 땅을 덮고 도시를 뒤덮는 혼란의 소용돌이야.” 그러면서 그분은 더운 여름날 판사였던 까닭에 학살당했던 아버지의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끌고 오던 기억을 소환하셨다. 확실히 주말의 명화에서 용감하게 전투를 벌이다가 신사답게 땅에 곱게 쓰러져 죽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나에게는 은사의 전쟁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 캄보디아 국경 분쟁은 그 기억을 소환시켰다. 일단 언어를 정리해 보자. 2025년 있었던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분쟁은 4차례였다. 그중 작년 12월에 있었던 최근의 분쟁은 단순히 분쟁이 아니라 전쟁으로 분류된다. 물론 군사 분쟁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나 이번 분쟁은 제한전에 가깝다. 캄보디아나 태국 정부 모두 전쟁의 목표를 국경의 안정으로 잡았고 전쟁 자원의 동원 역시 매우 제한적이었다. 나중에 태국은 전쟁 목표를 캄보디아 군사 자산의 무력화로 급진화시켰고 실제로 캄보디아 영토를 점령하고 무엇보다 다리와 같은 인프라를 공격하긴 했지만 언론은 양국의 군사 분쟁을 결코 러-우전과 같은 전면전으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왜 양국 사이에 이 같은 무력충돌이 벌어졌을까?

 

인도차이나반도의 역사를 바라보면 작금의 갈등이 매우 뿌리 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버마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은 수 세기 동안 역사적 라이벌이었다. 특히 캄보디아의 경우 앙코르 제국의 황금기 이후 태국과 베트남의 팽창에 따라 끊임없이 국경선이 축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베트남의 옛 수도였던 호찌민(예전의 사이공)이 포함된 메콩델타가 캄보디아의 영토였음을 기억한다면 캄보디아의 쇠퇴는 안타까울 정도이다. 실제로 프랑스가 베트남을 힘들게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라오스와 특히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보호국 신세가 태국과 베트남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보다는 훨씬 나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솔직히 이러한 역내 민족감정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우리만 하더라도 민족감정만 놓고 보면 일본과 중국과 치고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태국과 캄보디아 관계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퍼즐 조각이 있다. 이른바 국경 경제이다. 경제적 상호 관계는 상호 이익을 담보하기만 한다면 군사충돌을 방지할 꽤 강력한 수단이 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경제공동체를 구성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경쟁관계가 협력관계로 전환되면, 그리고 이익의 공동체로 재탄생하면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아세안이라는 경제블록으로 묶여 있지만 아세안의 경우 수많은 경제동맹 중에서 결속력이 가장 약한 동맹이다. 차라리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활성화된 국경 경제는 양국의 평화를 위한 좋은 안전판이 될 수 있었다. 태국은 작년 12월 전쟁이 발발했던 포이펫 국경 쪽에 상당한 규모의 카시노 단지를 운영했다. 상당수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태국에서 운영하는 국경지대의 서비스 산업에 고용되었다. 2014년 캄보디아의 예수회원들이 국경 지대 시소폰에 학교를 설립했을 때, 이들은 예수회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을 양성하고 이렇게 양성된 학생들이 캄보디아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당시 학교를 운영하던 예수회원 한 분이 나에게 결국 우리는 태국의 카지노 산업에 투신할 청년들을 양성하는 꼴이었다.”라고 한탄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국경 경제는 비록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일종의 두뇌유출이 되지만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이 지역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좋았던 국경 경제의 호시절은 곧 끝이 났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카지노들은 문을 닫았고 당시 카지노 경제의 가능성을 엿봤던 캄보디아 측의 대규모 투자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새롭게 이익을 창출할 기회를 찾아냈다. 이게 가장 치명적인 퍼즐이 되었다.

 

세계은행에서 집계한 캄보디아의 2024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465억 달러이다. 그런데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2024년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스캠 산업의 규모는 백 25억 달러이다. 일단 이 수치를 신뢰한다면 2024년 캄보디아의 명목 GDP20% 이상을 불법적인 스캠 산업이 일구고 있는 셈이다. 이는 매우 치명적이다. 도대체 스캠 산업의 규모를 어떻게 통계화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문제를 꾸준히 추적해온 국제 앰네스티와 인터폴의 보고서들을 보면 캄보디아 정부가 거대한 스캠 산업을 오히려 비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국제 사회에서는 미얀마와 캄보디아를 스캠 산업의 중심국가로 확신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스캠 산업은 상당히 국제적인 성격을 띤다. 주로 중국인 혹은 중국계 캄보디아인들이 주도를 하지만 한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의 조직폭력배들도 한몫을 잡고 있었고 이 모든 네트워크를 비호한 것이 캄보디아 정부였다. 스캠 산업은 좀 복잡하다. 왜냐하면 스캠 단지에서 자국인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이들은 인신매매나 강제노동의 피해자이면서 상당수는 가해자이자 범죄의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물게 캄보디아 경찰에 의해 구조되거나 스스로 탈출한 이들에 대한 인터뷰 작업을 꾸준히 수행한 국제 앰네스티에서도 이들은 단순히 피해자라고 묘사하기보다는 생존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의 국적은 많이 놀라운데 20256월에 나온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에는 58명의 생존자를 열거하며 이들의 국적이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에티오피아로 특정하였다. 또한 지난 기록들을 검토하면서 인도, 케냐, 네팔, 필리핀 등의 국적자들도 확인하였다. 즉 캄보디아(그리고 미얀마)의 스캠 산업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국제적 협업의 생생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작년 말부터 한국에도 알려졌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미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스캠 단지는 우크라이나와 라이베리아 등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문제는 캄보디아는 미얀마나 우크라이나,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처럼 전쟁이나 내전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캄보디아의 국가적 평판 자체가 대단히 악화되었다. 그리고 태국은 이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태국 공군의 F-16과 그리펜, 나중에는 한국산 경공격기들은 카지노를 폭격하며 이곳이 스캠 단지이자 캄보디아 군대의 보급 거점이라고 홍보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편을 드는 나라는 그 어느 나라도 없었다.

 

인도차이나의 국제관계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부족함이 있다. 평화의 안전판 혹은 평화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나 동맹체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세안은 나토나 심지어 쿼드(QUAD)처럼 안보 공동체가 아니다. 게다가 아세안은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당사자 간 합의를 우선시하는 정치문화가 있다. 실제로 캄보디아는 군사 분쟁이 전쟁 수준으로 통제 불가능하게 격화되자 아세안의 중재 요구를 무시하고 유엔의 개입을 요청하였다. 즉 캄보디아는 태국과의 직접 협상 대신 문제를 국제화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매우 놀랍다. 일단 유엔 자체가 지금 트럼프 행정부 이후 거의 무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인도차이나의 베트남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다자간 협의체가 무력화되는 순간 인도차이나의 평화의 조정자 역할은 다른 누군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모두가 짐작하듯이 중국이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비극적인 퍼즐 조각이 등장한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휴전 합의는 중국 원난성에서 이루어졌다. 중국이 인도차이나 역내의 조정자가 된 것이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잔인한 물음에 대해서 국제 언론은 거의 대부분 중국을 지목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라는 현실을 보게 된다.

 

캄보디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요한 파트너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의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다. 캄보디아의 한 조각 남은 해안선의 가장 중요한 항만인 시아누크빌 인근에 리암 해군기지가 있다. 원래 이 해군기지는 2010년 캄보디아와 미국의 군사협력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이 기지는 대거 확장공사에 들어갔는데 이때 공사를 맡은 곳이 중국의 회사들이었다. 그리고 기지의 완성 직후 중국정부는 이곳에 두 척의 중국산 초계함을 상시 배치하였다.

 

질문을 던져보자. 중국은 태국과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반도의 평화를 원할까? 거의 대부분은 분석가들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만약 중국이 평화를 원했으면 미얀마 내전은 일찌감치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얀마의 정부군과 중국계 반군들을 순차적으로 지원하며 내전을 관리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평화를 원했으면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마 무시하니까. 그러면 중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화의 조정자라는 역할 그 자체이다. 이것이 태국 캄보디아 국경 분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분쟁은 역내의 국가들이 국 경경제나 경제블록을 통해서 상호 이익으로 묶여지는데 실패했을 때, 그리고 역내의 평화 유지를 위한 주도적 국가나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무엇보다 캄보디아와 태국의 지도자가 국지전을 통해 자신의 정치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작년 우리가 운 좋게도 가까스로 피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캄보디아와 태국에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예수회원과 굉장히 존중하는 예수회원이 있다. 한 명은 중국계 캄보디아 예수회원이고 다른 한 명은 타이족 예수회원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지금은 번아웃이 왔지만 그래도 몸을 갈아대며 자기의 양 떼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두 친구의 아버지 모두 군 장성 출신이라는 것. 전쟁의 끔찍한 점 중의 하나는 전쟁에 휘말린 모든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증발시킨다는 사실이다. 안네 프랑크야 운 좋게 자신의 일기가 재발견되기에 기억이 되지 수많은 안네 프랑크들이 익명의 상태에서 자신의 서사와 함께 땅에 묻혔다. 우리는 좀 더 개인적이어야 하고 인격적이어야 한다. 내가 말한 모든 지정학적 서사들은 사태를 이해하는데 코딱지만큼의 도움만 줄 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양측에서 7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발생했고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들은 모두 흩어지고 누구 하나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참담한 현실이다. 아마도 곧 캄보디아의 친구 다모나 태국의 친구 비를 만나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이 참담한 충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의 기억을 듣고 성찰할 때 우리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왜 비극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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