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성찰] 난민들을 생각하는 기도: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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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난민들을 생각하는 기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40)
맥락
지난 8월 26일 아프간 난민 377명(나중에 한 명이 더 추가됨)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들을 ‘특별기여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들이 받은 비자도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이 받는 G1 비자가 아니라 거주비자(F-2)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여론은 꽤 우호적입니다. 국내에서는 난민들이 아니라 한국의 국익을 위해 일한 이들이 선별적으로 입국했고, 무엇보다 한국정부에서 깔끔하게 이들을 픽업해서 입국시킨 것에 대해서 호평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외에서도 ‘특별기여자’라는 새로운 라벨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난민들이 갖는 칙칙한 이미지를 벗어나게 했다는 점에서 호평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이번 ‘특별기여자’의 입국은 한국사회가 작은 이들에게 얼마나 덜 관용적이고 덜 친절한가에 대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왜 정부는 이들에게 ‘특별기여자’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이고, 또 비자도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허가자에게 통상적으로 발급되는 것과는 다른 비자를 주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3년 전 제주도에 552명의 예멘 난민들이 입국했습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사회의 난민혐오는 조직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론에 민감한 정부에서도 애초에 보여주었던 난민에 대한 온정적인 태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난민에 대해서 난민 심사부터 인정, 난민에 대한 지원을 국제적인 기준에서 규정했던, 한국의 난민법을 개정해 한국에 입국하는 난민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난민법 개정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여당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법무부는 난민법 개정을 예고하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위기가 고조되고 아프간 난민들이 대량 발생하면서 한국정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상태에서 아프간 난민 사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하지만 동시에 국내의 반이민, 반난민 정서에 대해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한 특별한 명칭, ‘특별기여자’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럴듯한 명칭은 동시에 한국사회가 이주민과 난민들, 이 사회의 가장 작은 이들에게 얼마나 덜 관용적인지, 덜 친절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나를 찾아온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다른 말로 나는 가장 작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난민이신 예수님 ('Christ of Maryknoll' by Brother Robert Lentz, OFM)
성경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40
성찰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가장 떨리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visio Dei을 한국교회에서는 ‘지복직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나 꿈꿀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받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급기야 예수님을 죽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느님을 말입니다.
다시,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하느님은, 혹은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실까?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마태오복음 25장 40절을 해주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때와 장소는 우리가 가장 작은 이들을 만나는 때와 장소가 됩니다. 우리가 가장 작은 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느냐가 바로 우리가 우리를 찾아온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오늘날 가장 작은 이들은 누구일까? 오늘날 예수님이 우리 사이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분명 노숙인의 모습, 가난하고 모든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의 모습, 무엇보다 모두가 싫어하고 배척하는 이주노동자, 다문화 여성, 난민의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가장 작은 이들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나요?
기도를 위한 질문
1.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이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 이들을 맞이하는 사회의 호의와 선의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하여,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2. 이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시고 있습니까? 기도 속에서 난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초대를 하고 계신지 귀 기울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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