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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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창조시기, 제11차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성찰 가이드] “생명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

인권연대연구센터 121.♡.226.2
2026.08.26 14:26 83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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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창조시기 성찰가이드

“생명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

 

 

맥락

 

2026년 창조시기를 맞는 우리는 메마르고 상처 입은 세계 앞에 서 있습니다. 자유롭게 흘러야 할 강은 댐과 보에 가로막히고, 오염된 물에서는 생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생명의 터전인 갯벌과 숲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가뭄과 홍수, 폭염과 산불이 더욱 빈번해지는 가운데,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누릴 권리조차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 역시 창조 세계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폭격은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땅과 숲, 강과 바다를 파괴하며,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식량 생산의 기반을 무너뜨립니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이들은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잃고, 파괴된 생태계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고통을 이어 갑니다. 군비경쟁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원은 가난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습니다. 인간을 향한 폭력과 피조물을 향한 폭력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6년 제11차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레오 14세 교황은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 2,4)는 말씀을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생명을 파괴하던 도구가 생명을 돌보는 도구로 변화되는 이사야의 환시는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전망인 동시에, 우리가 가진 힘과 자원, 기술과 마음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묻는 초대입니다.

  

한편 2026년 창조시기의 주제인 “생명수”는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 47,9)는 약속을 되새기게 합니다. 물은 모든 생명을 이어 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물은 사람과 사람, 도시와 농촌, 인간과 다른 피조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물이 상품과 개발 자원으로만 취급될 때, 그 흐름이 막히고 오염될 때, 가장 먼저 목마름을 겪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과 생태적으로 취약한 공동체들입니다.

 

이번 창조시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보다 파괴하는 데 무엇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는 어떤 ‘칼’과 ‘창’이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생명을 경작하는 ‘보습’과 ‘낫’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 다시 세상 곳곳으로 흐르도록,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시작해야 합니까? 

 

 

성경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 에제 47,9 

 

 

성찰

 

성경의 여러 장면에서 물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활동과 은총을 드러내는 표지가 됩니다. 한처음, 하느님의 영은 물 위를 감돌고 계셨습니다(창세 1,2). 광야에서 목말라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위에서 솟아난 물은 생명을 이어 주는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탈출 17,1-7).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고 초대하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생수의 강’으로 말씀하셨습니다(요한 7,37-39).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강가 생명나무의 잎이 민족들을 치료합니다(묵시 22,1-2). 이처럼 물은 창조에서 새 창조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회복하시는 활동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강과 바다는 생명보다 성장과 이윤을 우선해 온 선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흘러야 할 강은 인위적인 구조물에 가로막혀 녹조로 신음하고, 갯벌과 습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취급되어 개발의 대상이 됩니다. 핵발전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현재 세대가 사용하지만, 수십만 년 동안 위험한 고준위 핵폐기물의 부담은 미래 세대에게 넘겨집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편리한 소비를 위해 특정 지역과 공동체가 희생되는 현실은 우리가 누구의 생명을 가치 있게 여기고 누구의 고통을 외면해 왔는지 보여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한 접근권이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물은 돈을 낼 수 있는 이들만 누리는 상품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선물입니다. 그런데도 물의 오염과 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 원주민과 농어촌 공동체, 기후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의 만들지 않은 위기의 대가를 먼저 치릅니다. 피조물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은 하나의 외침입니다.

 

전쟁이 만들어 내는 생태적 파괴는 이 연결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폭격과 군사작전은 사람을 죽이고 공동체를 해체할 뿐 아니라, 숲과 농지를 불태우고 수원을 오염시키며 수많은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불발탄과 지뢰, 독성 물질과 황폐해진 토양은 오랫동안 생명을 위협합니다. 전쟁은 인간 사회의 관계뿐 아니라 생명의 그물 전체를 찢어 놓습니다. 평화와 생태적 정의를 따로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으로 만드는 세상을 내다보았습니다. 보습과 낫은 땅을 갈고 열매를 거두는 도구입니다. 예언자의 환시는 단순히 무기를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파괴에 사용되던 힘과 자원을 생명을 돌보는 일로 전환하라고 요청합니다. 군비와 전쟁에 투입되던 재원이 굶주림을 해결하고, 기후위기로 파괴된 삶의 터전을 회복하며, 깨끗한 물과 안전한 에너지를 모두에게 보장하는 데 사용되는 세상을 상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일은 국가와 정부에만 맡겨진 과제가 아닙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외적인 구조의 변화와 함께 인간 마음의 회심이 필요하다고 일깨웁니다. 끝없이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 당장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의 희생을 감수하는 무감각이 우리 마음 안에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외적인 광야는 우리 안의 메마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생태위기를 걱정하면서도 익숙한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소비의 결과가 어떤 지역과 생명에게 부담으로 돌아가는지는 살피지 않습니다. 재활용과 일회용품 줄이기를 실천하면서도,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경제 구조와 에너지 정책에는 무관심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작은 실천은 소중하지만, 생태적 회개는 개인의 생활 습관만을 바꾸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무엇이 생산되고 누구를 위해 개발되며 그 과정의 위험과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함께 묻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회심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대한 위기 앞에서 무력감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수는 처음부터 거대한 강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에제키엘이 본 물은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흘러나와 발목과 무릎, 허리까지 차오르고, 마침내 건널 수 없는 강을 이룹니다. 본래 이 환시는 인간의 노력보다 더 크고 풍성하게 생명을 회복하시는 하느님의 힘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모습을 묵상하며, 작아 보이는 실천도 하느님의 생명을 세상에 흐르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믿게 됩니다. 

 

교회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생태적 회개는 세상을 향한 책임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길입니다. 소비와 경쟁, 지배와 효율의 논리에 붙잡힌 마음을 비울 때, 우리는 적게 소유하면서도 더 깊이 연결되는 기쁨을 발견합니다. 물을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땅을 자산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다른 피조물을 도구가 아니라 창조 공동체의 이웃으로 바라볼 때 우리 안의 메마른 땅에도 다시 생명이 피어납니다.

 

이번 창조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수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도록 초대받습니다. 그 물이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무관심과 탐욕을 씻어 내며, 파괴를 위해 사용해 온 힘을 돌봄과 치유의 힘으로 바꾸도록 청합시다. 생명수가 흐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듯, 우리의 기도와 선택도 가장 목마른 곳으로 흘러가게 합시다. 그리하여 광야가 다시 동산이 되고, 칼이 보습이 되며, 상처 입은 창조 세계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깃들게 합시다. 

 

 

질문

 

1. 오늘의 창조 세계가 겪는 ‘목마름’ 가운데 특별히 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과 바다의 오염, 기후재난, 전쟁으로 인한 생태 파괴, 물과 에너지의 불평등 가운데 나는 어떤 현실에 더 귀 기울여야 합니까?

 

2. 내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칼’과 ‘창’은 무엇입니까?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다른 생명의 희생에 대한 무관심을 어떻게 생명을 돌보는 ‘보습’과 ‘낫’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3. 우리 가정과 본당, 교회 공동체에서 생명의 물이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는 무엇입니까? 개인의 실천을 넘어 지역사회와 제도적 변화를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기도

 

생명의 주님,
한 처음 물 위를 감돌던 당신의 영으로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생명을 하나로 이어 주셨으니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강과 바다, 비와 샘물을 통하여
메마른 땅을 적시고
사람과 동물, 숲과 들판을 살리시는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당신께서 주신 물과 땅을
소유하고 이용할 대상으로만 여기며,
편리함과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생명의 터전을 훼손하였습니다.

 

오염된 강과 메마른 대지의 신음을 외면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마을과 숲을 잊었으며,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에게
위험과 희생을 떠넘겼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 안의 메마른 마음을 적셔 주소서.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을 비우고,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오만을 내려놓으며,
상처 입은 피조물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생명을 파괴하던 칼을 쳐서
땅을 일구는 보습으로 만들게 하시고,
전쟁과 경쟁에 사용하던 힘을 돌려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목마른 이들에게 물을 건네며
상처 입은 창조 세계를 치유하게 하소서.

 

살아 있는 물이신 그리스도님,
저희 안에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주소서.
우리의 가정과 본당과 교회가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공동체로 거듭나고,
우리의 기도와 선택이
가장 메마르고 목마른 곳으로 흐르게 하소서.

 

거룩하신 성령님,
은총의 물결 위로 저희를 이끄시어
공정이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강이 닿는 곳마다 만물이 살아나고,
광야가 다시 동산이 되며,
창조 세계 전체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득 차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이 성찰 가이드는 레오 14세 교황의 「2026년 제11차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의 「2026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2026년 창조시기 기도문 「살아 있는 물」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생명수’라는 창조시기의 주제와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들라”는 성경의 요청을 바탕으로, 전쟁과 생태계 파괴, 불평등과 인간 마음의 위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돌아보고 창조 세계와의 화해를 위한 기도와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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