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성찰 가이드]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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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26년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성찰 가이드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하여”
맥락
2026년 세계 평화의 날을 우리는 평화를 말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 속에서 맞이합니다. 전쟁은 일상의 언어가 되었고, 군비 증강과 억제력은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됩니다. 불안과 공포는 사회를 조직하는 감정이 되었고, 폭력은 예방과 안보라는 말로 포장됩니다. 평화는 여전히 선포되지만, 동시에 이상적이고 순진한 것으로 쉽게 밀려납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러한 세계 한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인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이 평화는 단순한 안정이나 갈등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기를 내려놓는 평화이며 동시에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입니다. 곧, 폭력에 맞서 또 다른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 두려움과 공포의 논리를 끊어 내며, 인간의 마음과 관계를 근본에서부터 변화시키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언제나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힘과 통제, 우위에 기대어 자신을 지켜 온 방식 자체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는 말하기 쉬운 이상이 아니라, 선택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 됩니다. 세계 평화의 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물어옵니다. 우리는 평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으며, 그 평화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흔들고 있습니까?
성경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 요한 14,27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 이사야 2,4
성찰
복음서가 증언하듯,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평화는 폭력의 위협이 즉각 사라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평화는 배신과 실패,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선물과 같은 평화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이 잠긴 방 안으로 들어오시어, 먼저 제자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십니다. 그분의 평화는 상황을 단숨에 바꾸기보다, 사람들의 내면과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박해 자체보다도,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시는 스승의 선택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사용하지 말라고 단호히 요구하십니다. 이 장면은 평화가 얼마나 근본적인 회심을 요구하는지 보여 줍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을 반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위협 앞에서 우리가 무엇에 의지하며 자신을 지켜 왔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점점 더 정교한 무기를 만들고, 더 많은 자원을 군비에 투입하며, 불안을 관리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려 합니다. 책임은 분산되고, 생명과 죽음에 대한 결정은 비인격적인 체계로 이전됩니다. 그 과정에서 평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 취급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일관되게 말해 왔습니다. 무기의 균형과 공포에 기초한 안정은 참된 평화가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폭력을 정상화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는 언제나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갈등과 고통이 드러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평화는 제도나 선언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모이고 말하며 행동하는 공간에서 시험받습니다. 그곳은 자주 불편하고 시끄러운 장소, 곧 광장과 거리, 그리고 사회의 가장자리입니다. 평화를 진지하게 선택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마주하게 됩니다. 평화는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중립적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위험합니다. 평화를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질서와 힘의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폭력의 논리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며, 말과 침묵, 신앙과 기도마저도 도구화해 온 방식을 성찰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평화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통과해야 할 가장 급진적인 회심의 과정이 됩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말하는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상대를 제압하여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아니라, 먼저 내가 쥐고 있던 칼과 방패를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말,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태도,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유지해 온 침묵과 특권을 내려놓을 때, 평화는 비로소 관계 안에서 숨 쉬기 시작합니다.
평화는 느리고 취약해 보이며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담론은 혁명적이며 진정으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화를 말하고 성찰하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을 건드릴 때, 그리고 그 성찰을 서로가 나눌 때, 평화는 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평화는 쉽게 분열을 낳기도 하고, 자주 유토피아를 꿈꾸는 순진한 이상처럼 오도되지만, 사람들이 함께 선택하고 나눌 때 평화는 세상을 변화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 됩니다.
여러 전쟁의 가운데 맞이하는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은 우리를 바로 이 길로 초대합니다. 무기를 내려놓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다른 이들 또한 무장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삶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서 두려움 때문에 나 자신을 방어하거나 공격하고 있습니까? 그때 내가 붙잡고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요?
2. 평화를 말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졌던 경험은 언제였습니까? 그 불편함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나요?
3. 우리 사회에서 평화가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 인식에 어떻게 동의하거나 저항하고 있나요?
4.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살기 위해,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선택은 무엇일까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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