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의 야심찬 제안, 코로나19 시대 평화를 꿈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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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는 ‘통합적 인간계발 부서’ (혹은 ‘온전한 인류발전 촉진부’)라는 곳이 있습니다. 바티칸의 부서는 다른 국가의 정부부처와 마찬가지로 그 명칭을 보면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파악이 됩니다. 예컨대 신앙교리성이나 동방교회성, 시성성, 주교성과 같은 이름을 봐도 대충 무슨 일을 할지 파악이 됩니다. 그런데 ‘통합적 인간계발 부서’는 그 이름에서 도통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이 안됩니다. 양성이나 교육을 담당하는 것 같은 느낌은 좀 받게 됩니다만, 그곳에서 하는 일은 좀 다릅니다.
2016년에 신설된 이 부서(실제 활동은 2017년 1월에 하게 됩니다)는 기존의 네개 평의회를 한데 묶어놓은 곳입니다. 정의평화, 이주민에 대한 사목적 돌봄, 보건 종사자들에 대한 사목,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르 우눔, 즉 하나의 마음이라는 평의회가 이 부서로 통합된 것입니다. 비록 2016년에 설립되었지만 ‘통합적 인간계발 부서’의 정신은 1967년 발표된 바오로 6세 교황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통합적 인간계발 부서’의 설립취지를 짐작할 수 있는 항목을 요약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각자는 인격적인 성장의 씨앗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계획하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이 발전이다. ... 한 개인을 가르치는 이웃, 한 개인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들이 그를 방해할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다...” (민족들의 발전, 15항)
“모든 사람은 함께 성숙하라고[편집자: 계발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음.] 부르심을 받았다. ... 우리 자신은 모든 사람,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봉사해야할 의무로 서로 묶여져 있다. 이것이 연대감이다.” (민족들의 발전, 17항)
위에 소개한 ‘민족들의 발전’에서 발췌한 두 개의 인용문은 각각 계발의 의미와 연대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발전이라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성취, 한 인격으로서의 성장, 그리고 창조주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성숙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2. 발전은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 전체의 성장과 인류공동체의 성장을 의미한다. 한 사회 내에서 빈부의 격차, 교육의 차이로 인하여 발전의 차이가 존재하며,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사이에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 차이를 좁혀야 한다.
3. 바로 그렇기에 연대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사회 내에서, 국제 질서 내에서 우리는 서로가 성장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통합적 인간계발 부서’의 정신이 좀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통합적 인간계발부서에서 특히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그토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말입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통합적 인간계발부에 소속한 섹션 중에서 ‘이주 난민 섹션’을 ‘잠정적으로’ 직접 지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섹션의 공동 책임자 중의 한 명인 마이클 처니 신부를 추기경으로 서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주교가 아닌 평신부가 추기경으로 서임된 드문 예입니다.
그런데 통합적 인간계발부서에 새로운 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 중에 있습니다. 바로 바티칸 COVID-19 위원회(여기에서는 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라고 부르겠습니다)가 그것입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인 턱슨 추기경(현 통합적 인간계발부 책임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원회에 두 가지 사명을 주셨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두 가지 사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현재를 바라보기. 교회가 어떻게 하면 생명을 구하고 가장 가난한 일을 돕는다는 사명에 기여할 것인가를 확인하고 행동하기.
둘째, 미래를 준비하기. 코로나로 인해 야기되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 어떤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를 예견하고 장차의 우리 행동의 지침을 마련하기.
(턱슨 추기경의 관련된 언급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 참조.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4/turkson-think-covid19-aftermath-to-not-be-unprepared.html)
지난 7월 7일 바티칸에서 언론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정확히는 프레스 컨퍼런스)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를 준비하기, COVID-19 시대 평화를 건설하기” 이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 위원장인 턱슨 추기경, 위원회의 경제 담당인 알레산드라 스메릴리 수녀, 마지막으로 위원회 안보 담당인 알레시오 페코라리오 박사입니다. 이들의 발표전문은 나중에 링크를 통해 번역본과 영어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관해 많은 논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들은 코로나19와 군축을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짐작이 가시는지요? 사실 이 특이점이 제가 이들의 글을 번역하고 이 자리에서 설명하는 까닭입니다. 제가 글을 길게 쓰지 못하는 특징이 있으니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 코로나19의 성격상 우리는 전면적으로 이 바이러스에 대응해야 하고 특히 바이러스로 인한 극심한 피해에 응답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자체가 국경을 뛰어넘는 성격을 갖기에 우리는 전지구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실업자들과 이주/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2.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국제분쟁이 지속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마무시한 자원이 군비의 증강에 할당되고 있고 이는 결국 코로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응답을 약화시키게 된다.
3. 그렇기에 우리는 다자주의를 통해 군축을 도모해야 한다. 군축은 결과적으로 평화를 앞당길 것이기에 그렇다.
어떤 관점에서는 나이브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에서 군축을 위한 방법으로 다자주의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은 다자주의를 통해서 쏠쏠한 재미를 봤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주 글로벌 콤팩트와 난민 글로벌 콤팩트가 그 예입니다. 비록 바티칸이 주도한 것은 아니었지만(멕시코와 스위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두개의 글로벌 콤팩트가 발표되는 전후의 시점에서 바티칸은 이를 지지하는 꽤 적극적인 캠페인을 주도하였습니다.
물론 이주와 난민 글로벌 콤팩트가 이주와 난민을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이 문헌들이 다자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법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그래도 이 문서에 서명을 한 국가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국제적인 약속이니 말입니다. 바티칸이 군축과 관련해서 다자주의 방법을 선호하는데에는 이러한 선례에서 얻은 확신 때문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사실 바티칸의 외교력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강력한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힘의 논리가 매우 중요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다자주의의 경우 다수의 힘으로 그래도 힘의 균형을 잡고 외교적인 압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티칸에서는 군축과 관련해서 이전 이주/난민 분야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콤팩트 형태의 다자주의에 입각한 합의문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세 명의 발표문을 번역하면서 우리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꽤 성공적으로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연대의 정신에 따라서 그 노하우와 기술, 물품들을 다른 나라들에 전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K-방역이라는 희한한 언어처럼 상업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우리의 노하우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한다’라는 정신보다는 마치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수출을 위한 획기적인 재화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군비와 관련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경우 안보 환경이 매우 특수합니다. 그런 점에서 군비의 감축을 일방적으로 진행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의 무기수출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에서 군축을 주문하는 언론 인터뷰는 우리에게 어떤 회심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판매하는 무기들이 누군가의 피와 그들 가족의 눈물로 적셔지게 된다는 생각을 우리는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코로나와 군축을 연결 짓는 지난 인터뷰를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 프레스 컨퍼런스 입장문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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