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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문] 모든 형제들: 같은 태(胎)에서 나온 형제 자매 (피터 턱슨 추기경)

인권연대연구센터 121.♡.116.95
2021.10.15 16:39 7,901 0

본문

모든 형제들: 같은 태()에서 나온 형제 자매

-‘모든 형제들에 관한 피터 턱슨 추기경의 성찰-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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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and Sisters: From the Same Womb"
The reflections of the Card. Peter K. A. Turkson, Superiors of the Dicastery for Promot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

 

   https://www.humandevelopment.va/en/fratelli-tutti/riflessioni.html

내가 어려서 고전어를 공부할 때 나는 그리스어로 형제와 자매가 어원적으로 같은 태()에서 (a-delphos/a-dephe)’라는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삶 속에서 마주하는 몇몇 헷갈리는 상황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형제 자매가 그들 모두의 근원이 같은 태()에서 나온 것이며 이러한 사실로 서로 연결된 것이라면, 형제 자매는 존엄에 있어서, 명예와 권리에 있어서 서로 하나로 연결된 것이며 다만 태도와 습속에서 다를 뿐일 것입니다. 모든 인류, 우리 모두는 한 태()에서 나온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첫머리의 메시지입니다. (창세기 1-4)

 

형제 자매 사이의 존재론적 통교를 묘사하는 성경의 첫부분은 이 관계를 돌봄 혹은 서로의 안전과 양질의 삶(웰빙)을 위하여 관리하는 형제적 행위와 기능, 활동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다음의 질문으로 카인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형제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카인은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거부했던 형제적 행위이자 역할입니다: 모릅니다. 제가 형제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기 4:9)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형제적 행위와 인간에 대한 책임을 세상 전체(창조질서)로 확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동산으로 초대하여 동산을 가꾸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또한 동산을 돌보게 하셨습니다.(창세기 2:15) 아담이 동산에 대해서 취한 태도는 형제/자매가 다른 형제/자매에게 취한 태도와 같습니다.

 

이 창조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대략 2000년전 쓰여진 것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시대에 한참 앞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창조질서 사이의 형제적 유대에 대한 이야기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창조질서의 요소들이 마치 성인의 친족인양 노래하는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특히 창조질서에 대한 찬가인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형제애돌봄의 유대와 돌봄의 문화 속에서 창조된 모든 것을 붙들어 매는 존재론적 접착제와도 같습니다.

 

이들 성서 이야기와 다른 문화의 수많은 매우 유사한 이야기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다음 사실을 읽게 되었습니다. 상징으로 가득 찬 이러한 오래된 이야기들은 이미 오늘날 우리가 공유하는 확신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의 삶과 자연과 맺은 관계를 올바로 돌보는 것은 형제애, 정의, 다른 이에 대한 충실함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찬미받으로서, 70) 사실 찬미받으소서 서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찬미받으소서, 16)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은 창세기의 바로 첫번째 장에서 발견되는 계시된 진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이 서로 의존하기를 바라신다. 해와 달, 전나무와 작은 꽃 한 송이, 독수리와 참새, 이들의 무수한 다양성과 차별성의 장관은 어떠한 피조물도 스스로는 불충분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여 서로 보완하며, 서로에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40)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가족과 창조질서가 같은 태()에서 나왔다는 생물학적이고 존재적인 특성에 대해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형제적 유대를 위한 영적인 토대를 덧붙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세상에 대해서 아니오. 그냥 잘 가세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분은 자유로운 분으로, 자유로이 가고 자유로이 행하고 자유로이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주인도 모시지 않았고 자신의 영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유로운 분이셨던 것입니다. 가난 속에서 그분은 모두와 맺는 관계성을 추구하였고 이를 살아낼 수 있는 수단을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이 가치를 자신의 수도가족을 필두로 이슬람의 술탄들에게도 퍼뜨렸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속했던 수도가족에서 프란치스코는 리더가 아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분은 형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은 형제들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형제애만이 유일하게 사람들이 살아갈 관계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모든 삼라만상과의 관계가 되면서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창조질서와의 보편적 형제애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찬송하는 모든 피조물의 보편적 능력과 의무를 굳게 믿으며 프란치스코 성인은 창조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송하라는 같은 부르심으로 인도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향한 보편적 찬송(Robert F. Kennedy, Jr. and Dennis Nolan, Saint Francis: A Life of Joy (NY, Hyperion, 2005), 2)으로의 부르심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보편적 형제애로의 부르심으로 나아갑니다.

 

인류가족 구성원의 보편적 형제 자매애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차이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프리카 출신이며 많은 이들이 유럽과 중동과 극동아시아 출신입니다. 우리들 사이의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이처럼 다양한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근원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태()는 우리 선조들이 태()이기도 합니다.(창세기 4) 그리고 이 태()는 어머니 대지, 우리 몸뚱이를 낳았고 우리를 먹여 살렸던(창세기 2-3) 이 행성의 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공부하는 것, 우리의 관심들, 우리의 삶을 이끄는 것들을 결정하는 세계 문화라는 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전쟁을 포함한 모든 것이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를 이끌어왔던 역사라는 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는 기후위기, 보건코로나 대유행이라는 보건위기라는 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태()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이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그 어떤 인간도 방치되어서는 안된다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동의 감각을 갖게 됩니다.(20159월 유엔총회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발표 참조)

 

하지만 삶이라는 현실 속에서 어떤 이들은 길가에 방치되곤 합니다. 문화적으로 방치되고 개발에서 방치되며 수입에서 방치되고 교육에서 방치됩니다. 이런 모든 경험은 우리를 갈라지게 만들고 불평등하게 만들며 다양한 종류의 인간 존엄의 결핍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긴급한 기후위기와 이번 전염병 대유행을 불평등, 태만, 무관심과 쓰고 버리는 문화-이 모든 것은 역사 속에서 문명사회가 맞이하는 도전이 인류가족에게 만들어낸 것들일 것입니다.-가 가져온 균열을 치유하라는 초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균열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지혜를 우리는 구약의 희년 전통에서 배우게 됩니다. 50년마다 희년의 뿔나팔 소리가 울리면 빚을 진 이들, 노예가 된 이들, 파산한 이들은 자유롭게 되며 새로운 삶의 연장을 얻게 되어 너희 가운데에는 가난한 이가 없을 것(신명기 15, 4)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노예제와 인신매매에 의해서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고 없어지다시피 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매매업소와 가사노예라는 길가에 버려지고 방치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빈자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별 손실이 없다고 여겨지는 형제 자매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그들의 자리로 데리고 와서 하느님의 창조질서 속의 인류가족의 참된 하나됨과 유익을 실현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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