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청년 아시아 평화 탐험]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잇는 연대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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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잇는 연대의 띠
-예수회 청년 아시아 평화 탐험 '우리학교 프로젝트 2020'-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는 2월 14~21일 7박 8일간 서강대학교 재학생을 비롯한 청년 8명과 함께 일본 시모노세키를 방문해 식민주의와 전쟁, 분단 앞에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아픔과 연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회 청년 아시아 평화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특히 한국 청년들과 조선학교 아이들의 교류를 위한 것입니다. 청년들은 일주일간 예수회 일본관구가 운영하는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에 머물며 이 지역 강제징용의 역사를 돌아보고, 야마구찌 조선학교를 방문해 오랜 세월의 흐름으로 낡은 교사를 페인트칠하는 봉사활동을 진행합니다.
청년들은 지난 11월 5일 첫 사전모임을 가진 데 이어 2월 14일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총 다섯 번의 만남을 통해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의 역사를 배우며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서울에 유학 중인 재일동포 학생들을 비롯해 지난해 진행된 1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청년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해 온 일본 예수회 나카이 준 신부님도 사전 모임에 함께해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우리의 마음과 지식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세 달여간의 준비 끝에 시작된 프로젝트는 시모노세키 지역사회에서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들을 돕고, 일본과 한국 사이의 화해와 연대를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 ‘니코리회’의 쿠아노 선생님의 나눔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쿠아노 선생님은 지난해 프로젝트부터 서울에서 온 학생들을 반기며 물심양면 지원해준 고마운 분입니다. 재일동포들과 교류하며 연대하는 일본 사람으로서 처음 재일조선인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은퇴 후 재일동포들과 함께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이유에 대해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정성 있는 우리말로 자신의 얘기를 나눠주셨습니다.
2월 15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평화 탐험은 시모노세키 인근 우베 장생 탄광 수몰지를 돌아보며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어로는 ‘쵸세이(長生)탄광’이라고 부르는 이 탄광은 1942년 탄광 노동자 183명이 수몰된 사고가 일어난 곳입니다. 이 가운데 130여 명이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온 노동자들입니다.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귀한 시간 내어준 우치오카 선생님의 설명 끝에 청년들은 80여 년 전 탄광 수몰로 바닷속에 영원히 잠든 영혼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에는 시모노세키 지역 식민주의와 강제징용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모노세키는 과거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관부 연락선으로 강제징용된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닿았던 땅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착한 조선인들은 시모노세키에서 일본 전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시모노세키에는 처음 일본에 도착한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항구였던 시모노세키는 1895년 청일 전쟁 후 청의 강화 전권 대사 이홍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청이 조선의 독립을 확인하고 군비 배상 및 영토 할양을 일본에 약속하는 시모노세키 조약의 배경이 되었던 곳입니다. 이 근방에는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도 있어 여러모로 역사의 증인이 되었던 시모노세키의 바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우리말 안내 표지판은 이날 여정 내내 청년들을 안내한 쿠아노 선생님과 우치오카 선생님이 활동하시는 시민단체 ‘니코리회’의 지속된 활동으로 설치된 것이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역사 탐방에 이어 2월 16일 일요일에는 조선학교 아이들과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조선학교 문예발표회 관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긍지를 보이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일치의 순간을 그리며 공연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청년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 시간이었습니다.
이날부터는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일본 청년들도 함께해 민족 화해 너머 한일화해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까지 더 넓은 꿈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별히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해준 재일조선인 3세 김숙자 선생님께서 조선학교와 신앙이라는 두 갈래 길 가운데 더 큰 사랑을 키워올 수 있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청년들과 나눠주시기도 했습니다.
2월 18일 화요일부터 20일 목요일까지는 본격적인 페인트칠 봉사활동과 조선학교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교사 건축 후 오랜 시간 보수하지 못해 낡은 취주악부실을 깨끗하게 단장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였습니다. 취주악부실의 악기와 보면대를 모두 꺼낸 후 오래된 페인트를 벗겨내고, 프라이머를 바르고 미색 페인트칠을 여러 번 반복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깨끗한 새 공간을 선물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열정으로 페인트칠 작업은 주어진 3일의 시간 안에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과 아이들은 틈틈이 주어지는 시간을 이용해 자기소개 빙고 게임, 한국에 대한 소개 시간, 축구 함께하기 등으로 조금은 어색하지만, 천천히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가졌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일본 현지에서 유행 중이었던 독감 등으로 예년보다는 직접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쉬움도 그만큼 진했습니다. 청년들은 다시 시모노세키에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 청년은 “재일조선인, 재일동포들을 글자나 개념, 어떤 타자로서가 아니라 함께 만나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개인으로서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프로젝트에서 얻었던 가장 값진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감상을 전해주었습니다.
고작 며칠의 짧은 만남이 청년들에게 그리고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또 동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잇는 연대의 띠가 분단 너머 평화와 화해로 가닿는 시작이 될 것이라 믿으며 우리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이 여정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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