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운터스>로 보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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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아이시네마테크] 영화 <카운터스>로 보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2019년 하반기 ‘아이 시네마테크’는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의 반정부 블로거에 대한 탄압과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해 다룬 영화 ‘어머니가 떠난 후’에 이어 10월 아이 시네마테크에서는 혐오표현(헤이트스피치)에 저항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를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대손님으로 ‘카운터스’의 연출 이일하 감독님도 함께해 카운터스 활동과 헤이트스피치 대책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일본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경쾌한 리듬의 영화 <카운터스>는 밝은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상당히 무거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의 보호 대상인가?’,
‘혐오에 맞서는 폭력은 정당한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일하 감독은 영화 속에서도 상영 후 함께한 GV에서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한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다는 초대를 건넸습니다.
영화 ‘카운터스’의 주인공 카운터스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펼치는 재일코리안 혐오시위에 대항하는 단체입니다. 공공연하게 혐오를 드러내는 시위를 여는 재특회에 맞서 카운터스는 ‘혐오를 멈춰라’, ‘친하게 지내요’ 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거리에 나섭니다.
그러나 카운터스는 조직체계를 갖춘 시민단체가 아닙니다. 카운터스의 구성원들은 트위터로 연락하며 서로의 이름도 신분도 모른채 트위터 아이디로 서로를 부릅니다. 대표도, 조직도, 시스템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경화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에 맞춰 거세지는 혐오 시위에 맞서기위해 카운터스의 숫자는 늘어나고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카운터스의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토코쿠미(남자조직)’는 카운터스에 속한 하나의 분과입니다. 전직 야쿠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오토코쿠미의 운동 방식은 독특합니다. 바로 혐오표현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입니다. 혐오 시위에 나선 우익 세력들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제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오토코쿠미의 활동은 카운터스 안에서도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토코쿠미의 대응은 상당한 효과를 거둡니다. 오토코쿠미의 쓴 맛(?)을 경험한 혐오세력들은 겁에 질려 다시는 혐오시위에 나오지 않습니다.
혐오에 반대하는 카운터스의 재기발랄한 활동은 점차 확대되고 힘을 얻어 2016년 일본 최초의 ‘헤이트스피치 대책법(일본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 제정에 이릅니다. 거리의 야쿠자들이 법 제정을 위해 싸우고, 법 제정을 기념하며 해산하는 모습 또한 역설적입니다.
자신을 우익이라고 말하는 주인공 다카하시는 전직 야쿠자로 오전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오후에는 오토코쿠미 동료들과 어울려 소수자들을 위한 쉼터를 찾아 사서 고생하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속 동료는 “이런 것이 사람들이 모르는 일본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오토코쿠미의 활동은 확실한 효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습니다.
혐오에 대항하는 정당한 방법은 정말 무력인가? 대책법의 제정은 혐오표현에 저항하는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혐오에 대항하는 정당하고도 효과적인 방식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다카하시라는 이 낯선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다양하고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일하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혐오가 비단 일본 내 우익과 재일코리안에 한정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주노동자, 난민, 외국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높아지는 혐오의 목소리를 생각할 때 우리사회 또한 혐오와 혐오에 맞서는 저항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상영회를 마무리하며 박상훈 신부님은 혐오 표현에 맞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법제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핀란드, 호주 등 세계 40여 개의 국가가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특성에 대해 공격하는 명백한 의도를 품고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경우 처벌받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처벌조항이 없어 구속력은 없지만 혐오 표현은 명백히 나쁘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반면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의 경우 증오발언이 범죄로 성립하려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의 예외사항으로 인정돼야하기 때문에 형사법적 규제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법원의 판결 또한 ‘증오한다는 생각’을 표현할 자유도 보호해야한다는 논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미국 내에서도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증오발언을 정부가 개입해 형사처벌 하지 않는 것일 뿐 혐오표현, 성희롱을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하며 실제 차별이 발생한 경우 민사 소송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혐오 표현으로 회사, 학교에서 해고, 퇴학당하는 사례도 상당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이주민과 난민 등 외국인을 향한 혐오표현 뿐 아니라 성적 지향, 성별과 세대를 가르는 폭넓은 혐오 표현이 점차 문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언론중재위원회가 시정권고 심의기준에 ‘차별 금지’ 조항을 신설해 언론의 증오발언 소개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을 제외하면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적 조항은 없는 상황입니다.
성별, 인종, 출신지, 국적, 가족 형태, 성적 지향, 성 정체성, 학력, 장애 여부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는 취지의 차별금지법이 2007년 이후 총 3차례에 걸쳐 입법 시도되었으나 번번이 오해와 반대와 가로막혀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법은 아직 없습니다.
우리사회를 잠식해가는 혐오와 혐오표현의 문제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정당하고 효과적으로 혐오에 대항할 수 있을까요? 영화 ‘카운터스’는 혐오를 혐오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을 물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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