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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탄원서] 대법원은 베트남 하미 학살 진실규명의 문을 열어라

인권연대연구센터 121.♡.226.2
2026.06.11 13:53 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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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베트남 하미 학살 진실규명의 문을 열어라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각하처분 취소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에 부쳐 -

 

1968년 2월 24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하미 마을에서 한국군 해병대에 의해 최소 135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그날 목숨을 잃은 이들의 대부분은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였다. 다음 날에는 불도저가 동원되어 주검마저 훼손되었다. 그로부터 58년이 흘렀다.

 

2022년 4월,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응우옌티탄 등 다섯 명의 피해생존자와 유가족이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가해국이 스스로 세운 국가기구에 진실을 구하는 절박한 호소였다. 그러나 2023년 5월, 진실화해위는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전쟁 시 발생한 사건은 조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했다. 조사조차 시작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피해자들은 법원에 호소했다. 그러나 1심 서울행정법원과 2심 서울고등법원은 모두 진실화해위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하미 사건이 "대한민국 군인들에 의하여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며 "진실규명과 권리 구제를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도 상당한 정도로 소명된다"고 명시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결론에서는 "법률 해석이 아닌 입법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라며 항소를 기각했다. 학살은 인정하고, 조사 필요성도 인정하면서, 정작 책임은 회피한 비겁한 판결이었다.

 

이제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대법원은 2026년 4월 13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배당했고, 같은 달 23일 첫 심리를 진행했다. 우리는 대법원의 이러한 결정을 주목한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 이후 30여 년간 쌓아온 과거사 청산의 성과가 자국민에 한정된 반쪽짜리로 기록될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인권의 지평으로 확장될 것인지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제2조 제1항 제4호는 진실규명 대상을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한다. 이 조항 어디에도 "피해자가 외국인인 경우는 제외한다"는 문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화해위는 1기(2005~2010)와 2기(2020~2025)를 통틀어 10년이 넘는 운영 기간 동안 '외국인 피해자'를 이유로 진실규명 신청을 각하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오히려 일본 국적자였던 '하야청'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2010년), 해외 입양인 사건에 대한 현재 진행 중인 조사 등 외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선례가 분명히 존재한다. 유독 하미 사건에서만 외국인 배제라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한 것은, 법 앞의 평등 원칙에도, 진실화해위 자신의 일관된 운영 원칙에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원심이 외국인 배제의 근거로 든 "민족의 정통성 확립"과 "국민통합"이라는 법 목적은 결코 외국인 피해자를 배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정의와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천명한다. 우리 민족이 타국민에게 저지른 과오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길이며, 인류 보편의 정의에 부합하는 국민통합의 토대이다. 진실을 외면한 통합은 통합이 아니라 기만이다.

 

베트남 정부 역시 이미 여러 차례 공식 입장을 통해 길을 열어 두었다. 2025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퐁니 학살 국가배상사건 항소심에서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리자, 베트남 외교부는 "역사적 진실을 반영했고 '과거는 닫고 미래로 향하자'는 정신의 실현에 기여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진실규명은 외교적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한·베 양국 관계의 진정한 미래를 여는 디딤돌이다. '외교적 마찰'을 이유로 진실을 덮자는 주장은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에 비추어도 근거 없는 가정에 불과하다.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해 온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법원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과거사정리 기본법」제2조 제1항 제4호의 진실규명 대상에 외국에서 외국인에게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이 포함됨을 명확히 선언하라.

 

하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의 과거사 청산이 국적과 국경을 넘어 보편적 인권의 원칙 위에 서 있음을 천명하라.

 

응우옌티탄은 학살 당시 열 살이었다. 방공호에서 어머니가 그녀를 끌어안았고,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이 터졌다. 어머니와 동생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죽었고, 그녀만 살아남았다. 전쟁고아가 된 그녀가 58년이 지난 지금 요구하는 간절한 한마디는 이것이다. "피해자들이 눈을 감기 전에, 진실을 밝혀달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조사는 반드시 시작되어야만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 정의로운 나라이고자 한다면, 자국 공권력이 외국 땅에서 외국인에게 가한 폭력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진실의 문을 열어라. 그것이 비겁의 시대를 마치고 염치의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다.


2026년 6월 10일



총 58개 연명 단체 일동



(가나다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부모임 샛길, 국제민주연대, 국제법X위안부세미나팀, 극단 신세계, 김복동의 희망, 녹색당, 대안문화연대, 더 좋은 세상 뉴질랜드 한인모임, 동학실천모임, 리영희재단, 멈 비엣남(베트남 국제개발활동가들의 모임),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TF,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누리회,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산울산경남5.18민주유공자동지회, 부산을바꾸는시민의힘 민들레, 부산자주연합,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 소박한자유인,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식민지역사박물관, 아시아의 근대를 읽는 시간,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아카이브 평화기억,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이주민과 함께, 이주민센터 친구, 인권교육센터들, 인권교육온다,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 제주작가회의, 제주평화인권센터, 조선학교와함께하는시민모임 봄, 종이로 만든 배, 참여연대,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 청년기후긴급행동, 청년하다, 트랜스보더링랩,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바닥, 하노이-호아빈 한국어 학습자 모임, 한베평화재단, 향린교회, (사)아디, (사)호아빈의리본, (재)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재)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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