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평화의 복음이 자라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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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아이와 38선을 넘는다. 나는 강원도 춘천 북쪽에 살고 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는 시내 학교가 아닌 면 지역의 중학교를 선택했다. 전교생이 15명인 이 ‘공립’ 중학교는 춘천에서 화천 가는 길옆에 있다. 매일 아침 춘천댐을 건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시내에 있는 사무실로 향하면서 어머님께 전화를 드린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어머니와 통화가 시작될 때쯤이면 군부대와 터널을 빠져나와 1차선 지방도 옆에 세워진 38선 표지석을 지나친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반복되는 이 38선 통과의 경험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북위 38도선’은 화천과 춘천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위 38도선은 한반도를 지나 중국과 터키를 가로지르고 그리스와 스페인을 거쳐 미국 전역을 통과한다. 지도와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이 선은 인류가 살아가는 둥근 지구별에 대한 지리적(geographical) 발견과 이해와 과정에서 확립되었다.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선은 수 천 년 흘러온 강줄기와 산등성이가 만들어 온 구불구불한 경계와 달리 반듯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냉정한 선으로 표현된다. <사회과부도>에서 세계 지도를 보다가 아프리카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나라들의 국경선과 주 경계가 ‘자로 잰 듯 반듯해서’ 놀라워했던 때가 있었다. 맞다. 그 경계선들은 위도를 따라, 경도를 따라 자로 재어서 반듯하게 그어진 선들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직선으로 그어진 그 선들은 산과 들과 강을 가로지를 뿐 아니라 그곳을 오가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마을도 삶도 가로질렀다.
어느 날 문득, 38선 통과의 일상이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내가 실향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안북도 용천사람이(었)다. 어머니는 평안북도 철산이 고향이다. 두 분은 해방 직후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월남한 서북 출신 개신교인들이 세운 서울 남대문 근처의 한 교회에서 만났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고향이 북쪽에 있으니 그 자식인 내게도 고향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추석과 설날 같은 명절에 몇 시간씩 걸려서 ‘민족의 대이동’을 하는 사람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돌아가야 할 곳이 내게 없다. 지금 생각하면 짠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가끔 망원경을 구입하셨다. 명절이 되면 가야 할 고향이 없는 우리 가족은 고향을 가는 대신, 텅 비어버린 자유로를 달려서 북한 땅이 보이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철책선 너머로 북한 지역을 보다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두 발로 그 선을 넘어왔지만, 다시 그 선을 넘어갈 수 없었다.
<사회과부도>에 담긴 알록달록한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읽게 된 것은 ‘시간’을 다루는 역사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우리 가족의 역사가 식민지, 해방, 분단, 전쟁으로 이어지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부모님만이 아니라 나도 뿌리가 없는 사람이었고, 38선 저쪽에서 건너와 이쪽에 갇혀 버린 사람이었다.
휴전선을 버릇처럼 38선이라고 부르는 어른들이 이상했다. 그 둘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 어느 곳 보다 많은 무기와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155마일(사실 이것도 궁금하다. 지구상에서 mile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 곳 뿐이다!) 휴전선의 기원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땅 위에 그려진 38선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나마 선이 갑자기 그어지고도 몇 년 동안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이고, 다행히 내 부모는 물리적으로 통과가 불가능한 장벽이 세워지기 전에 그 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뿐이다. 이 넘을 수 없는 선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2020년 9월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사망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구조와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이 사살 당했다는 이 비참한 사건이 더욱 비참한 것은 70년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는 전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눈에 보이는 이중 삼중의 장벽으로 바꾸고, 사람들이 넘나들던 길목을 군대로 가로막는 동안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도 분단의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견고해졌다.
매일 38선을 오가며 생각한다. 정녕, 이 선은 넘을 수 없는 선인가? 이 38선을 따라 뿌려진 분단과 폭력의 씨앗이 지난 70년 동안 거대한 괴물로,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자라났다. 우리는 이 선에 계속 갇혀서 서로를 적대하며 살아갈 것인가? 가톨릭 신학자 윌리엄 캐버너는 “정치는 상상의 실천”이라고 단언한다. 문제는 “군대, 관청과 같은, 정치가 빚어낸 고체들은 종종 우리를 기만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견고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저 고체들이 상상의 행위로 결집된 산물임을 망각한 결과다.”1) 너무나 견고하게 보이는 155마일의 장벽은 강대국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사실은 진지한 상상의 과정도 없이 그어진 38선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던가?
매일 38선을 오가며 묻는다. 분단의 체제보다, 근대 국민국가의 출현보다 더 오래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불의하고 폭력적인 경계를 넘어설 어떤 상상을 제공하는가? 왜, 교회는 너무 자주 다른 차원의 상상의 실천이 아닌, 현실에 기만당하는가? 2018년 4월 27일 남과 북의 두 정상의 만남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것은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결코 넘을 수 없다는 그 선을 훌쩍 넘나드는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정치는 상상의 실천”이다. 그러나 29년 전 그 선을 통과했던 문익환 목사가 있었다. 문규현 신부가 있었다. 1989년 8월 15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 신부는 임수경 수산나와 함께 남과 북의 경계선인 판문점에 있었다. 문규현 신부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우리의 평화는 분단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통감하고, 이 역사 앞에서 우리의 죄를 깊이 사죄하고, 우리 모두 역사 앞에 지은 죄악을 물리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2)
매일 열다섯 살 아이와 38선을 넘으며 기도한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이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과 실천을 가능케 하시도록. 어떤 씨앗에 물을 주고 잘 자라게 할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2,14)
1) 윌리엄 T. 캐버너/손민석 옮김,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서울: 비아, 2019), 11.
2) 문규현, 『세상을 통해 본 한국 천주교회사』 (서울: 성바오로, 2015), 11.
https://www.youtube.com/watch?v=NN656XOdkyQ&feature=youtu.be
김성한 (평화교육가)
교회사, 평화학, 선교학을 공부했다. 한국기독학생회(IVF) 간사로 일했다.
지금은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평화교육가로 일하고 있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코드셋이란 밴드에서 기타와 노래를 담당한다.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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