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사회사도직회의] 국가주의 넘어 평화의 연대로
- - 짧은주소 : http://advocacy.jesuit.kr/bbs/?t=ew
본문
제5회 한일사회사도직회의 레포트
정의와 화해를 위해 연대하는 한국과 일본 예수회원과 협력자 15명은 지난 11월 1~3일 예수회센터에서 제5회 한일 사회사도직회의를 가졌습니다.
2015년 제주에서 시작된 한일 사회사도직회의는 그동안 시모노세키, 서울, 오키나와에서 열리며 탈핵, 이주, 노동, 평화 등 한국과 일본 두 사회가 공동으로 가진 사회적 현안들을 살펴보고 이 문제들에 응답하는 한일 양 관구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진행돼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동아시아 각국이 전쟁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국가주의를 강화해 온 전쟁 기념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1월 1일, 회의를 여는 첫 순서는 용산 전쟁기념관 방문이었습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박석진 활동가가 길잡이로 함께 해 전쟁기념관이 말하고자 하는 전쟁의 기억과 말하지 않는 기억을 짚어주었습니다.
박석진 활동가는 특히 전쟁기념관이 ‘명예로운 휴전’이라고 명명한 군사분계선 협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과 군인들이 죽거나 다쳐야했는지 짚으며 피해와 피해의 원인을 말하지 않고 ‘명예롭다’는 수식어만 붙인다고 하여 피해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전쟁기념관의 전투 중심의 전쟁 서술이 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아동과 여성, 민간인의 이야기를 한국전쟁을 기록하는 공적 기억에서 배제하고 있음을 다양한 전시 사례들을 통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산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서사는 ‘평화는 힘에서 나온다’는 통념을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기념의 윤리는 한국군이 보유한 수많은 무기들을 살펴보며 끝나는 전시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뒤이은 시간들도 전쟁을 둘러싼 기억과 기념의 문제를 주제로 강의와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의 김민환 교수님은 ‘전쟁의 낭만화와 평화의 낭만화 사이에서: 일본, 오키나와의 전쟁기념시설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김민환 교수님은 ‘전쟁의 낭만화’에 대해서는 전쟁을 긍정하고 미화하는 동시에 전사자들을 국가를 위해 생명을 바친 고귀한 존재로 신격화하는 ‘야스쿠니적 방식’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더불어 ‘평화의 낭만화’에 대해서는 군대 및 군인의 존재를 배제하고 오직 원폭에 의한 민간인 피해만을 강조하며 평화의 중요성을 말하는 ‘히로시마적 방식’을 꼽았습니다.
히로시마 전쟁기념관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원폭 희생자들을 전쟁의 원인과 책임에서 완전히 분리한 채 오직 ‘피해자’로서만 스스로를 위치한다는 점에서 왜곡된 방식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더불어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아시아 전역의 피해자들, 일본 본토에서 희생된 외국인 피해자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오키나와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전후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국과 일본 각국의 정의하는 오키나와 전쟁 기억을 선택적으로 오가지만 1970년대 이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전쟁이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정의롭거나, 일본이 말하는 것처럼 숭고한 전쟁이 아니었음을 자각합니다.
이후 1975년부터 1977년 사이 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은 군인과 전사 중심의 전쟁 기록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의 체험, 증언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전시내용을 개편합니다. 더불어 오키나와 종전 50주년 기념으로 1995년 마부니 언덕 위에 세워진 위령조형물 ‘평화의초’는 국적과 군적에 상관없이 ‘죽음 앞의 평등성’을 특징으로 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군인과 민간인 모두를 전쟁의 피해자로 함께 기립니다.
강의에 이어진 국가별 나눔에서는 지난해 오키나와에서 열린 사회사도직회의를 상기하며 전쟁 뿐 아니라 평화 또한 낭만화하고 있었던 우리 안에 깊게 스며든 국가주의의 영향력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불어 어린 시절 배운 이분법으로 나뉜 적과 우리 사이의 경계가 여전히 큰 힘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며 어린이와 청년들을 위한 평화 교육의 중요성에 다시 한 번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11월 2일 오전에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님께서 ‘전쟁기억과 평화, 어떻게 기억전쟁에서 벗어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정근식 교수님은 한국전쟁의 명명을 둘러싼 동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한 성격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한국전쟁에 대해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특히 기억의 전쟁은 오히려 90년대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전 날 살펴본 전쟁기념관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에 대해서도 함께 보았습니다. 1994년 개관한 용산 전쟁기념관은 개관 당시부터 ‘무엇을 기념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 있었습니다. 승전을 기념하는가, 전쟁을 기념하는가, 평화를 기념하는가, 한국전쟁만을 다루는가 한국사의 모든 전쟁들을 다루는가에 이르기까지.
이 논쟁들의 결론은 전쟁기념관 건립을 주장했던 세력의 의지대로 내려졌습니다. 전쟁을 기념하며, 주로 한국전쟁의 서사를 기록하고,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방식의 기념관이 건립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한국군이 참전한 전쟁을 긍정적으로 기록하며, 전쟁을 기념하는 방식의 기념관이 가진 한계는 분명합니다.
이어진 나눔에서도 국가 중심의 전쟁 서사가 아닌 전쟁 속의 인간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전시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또한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평화가 아닌 전쟁의 서사를 먼저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에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컸습니다.
정근식 교수님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은 조선에서 일어난 조선의 미래를 둘러싼 전쟁이었으며 동아시아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전쟁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억의 전쟁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은 공동의 기억을 구축해나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기억의 전쟁의 악순환으로는 결코 화해를 향한 새 역사를 써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강의는 제주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장 김성환 신부님의 ‘제주 해군기지와 평화’ 강의였습니다. 김성환 신부님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절차의 문제를 짚고 제주해군기지 건설 원인은 결국 미군 해군의 기항지를 만들기 위함임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제주 해군기지를 둘싸고 힘의 균형으로 평화가 수립된다는 ‘힘이 있어야 평화가 있다’는 논리가 반복되지만 끊임없는 군비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뿐임을 명백히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또한 「복음의 기쁨」에서 ‘평화는 단순히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힘이 있어야 평화가 있다는 논리를 거부하셨습니다.
이어 예수회원으로서 이 시대의 평화의 사도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평화관을 살펴보는 것의 의미를 말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영성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교황님은 네 가지의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하느님과의 평화, 둘째는 자기 자신과의 평화, 셋째는 다른 이들과의 평화, 넷째는 피조물과의 평화입니다.
김성환 신부님은 특히 평화활동 현장에서 정의에는 민감하지만 용서와 화해에 대해서는 열려있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하며 하느님의 긴 시간을 보며, 결과에 너무 얽매이기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자고 권했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는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과 인권이 존중되는 인간안보가 중요하며 인간 이외의 피조물도 존중되는 환경안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성덕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성덕의 삶에 참여하도록 모든 참가자를 초대하였습니다.
이어진 나눔에서도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해 활동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성찰 없이는 전진만 있고, 결국 이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정의에 대한 가치는 분명하지만, 용서와 화해의 훈련은 미처 받지 못한 우리 자신과 동반하는 벗들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11월 3일 회의를 마무리하면서는 ‘동북아시아 평화연대를 위한 한일 예수회 구체적 협력방안 모색’을 주제로 전체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지난 5년간 이어진 교류를 돌아보며 한국과 일본 관구 사회사도직 위원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평화와 화해를 향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다음 회의부터는 중국 회원들의 초대, 정의와 화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더 다양한 양국 예수회원들의 초대 등으로 더 많은 은총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논의했습니다.
더불어 만남을 더 의미있게 하기 위해 회의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각자의 삶에서 정의와 화해를 위해 구체적인 실천을 하고, 회의에서는 그 실천을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동북아시아 청년들이 서로 만나고, 함께 역사의 아픔을 성찰하며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공동사도직을 꿈꿔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넘어 예수회원으로서 보편의 평화, 보편의 정의를 찾는 사회사도직회의는 앞으로도 그 외연을 더욱 확장하며 계속될 예정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