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시모노세키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

황규태 163.♡.183.94
2019.11.05 10:14 2,4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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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

-예수회 청년 아시아 평화 탐험 참가 나눔-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를 만나는 것은 하나의 더 큰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미디어나 텍스트로만 접하는 내용에 대해 그것을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당사자들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글과 영상으로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만나 느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교내 교양수업에서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텍스트와 영상으로 접했습니다. 그리고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회 청년 아시아 평화 탐험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재일조선인 동포들과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운동을 하며 하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경험한 것들은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개념, 관점들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들 중 가장 인상 깊은 두 가지 주제를 나눠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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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민족의 의미입니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그 동안 제게 너무나도 익숙했지만 그 의미가 크게 와 닿거나 각별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 땅의 사람들과 내가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민족은 민족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자칫 다양성과 다문화를 거부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을 배제시켜 버리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배웠기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저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선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 의미가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접한 민족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사뭇 달랐습니다. 동포들이 민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는 항상 그 앞에 빼앗긴이라는 단어가 함께 자리합니다.

 

재일조선인 1세 분들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강제 징용으로 인해 일본으로 끌려오며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 또한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일본 땅에서 나고 자란 2, 3, 그리고 지금의 4,5세 동포들은 일본 사회 가운데에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당연히 누려야 할 민족과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우리 민족이나 우리나라를 가져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정당하게 누려야 할 민족을 가져 보지 못하고 빼앗겨 온 이들에게는, 그것을 회복시켜주어야 한다고 동포 분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매일 누리는 것이기에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민족이라는 개념이, 재일조선인들에게는 단 한번이라도 가져보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조선학교의 한 교원 분께서 제게 말씀해주신 내용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께 우리나라는 단순히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둘로 갈라지기 이전의 하나였던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시모노세키의 재일조선인 동포 사회는 저희를 대한민국 국가에서 온 청년들 이전에, 그들과 같은 말을 쓰고 비슷한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같은 민족으로 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그 공동체에서 가지는 각별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고, 제가 재일조선인 동포들과 한 공동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민족이라는 단어는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빼앗겼고 지금도 간절히 원하는 민족을 회복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저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다짐하는 단어로 새롭게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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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통일입니다. 통일 역시 저의 매일의 삶과는 멀리 떨어져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단어였습니다. 일제의 침략과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하였고, 지금도 전쟁의 위협 속에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을 하면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통일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통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할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장 제 자신의 삶 하나를 꾸려나가는 것이 가장 시급하게 느껴져 통일에 대한 고민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두고 살았던 순간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모노세키의 재일조선인 동포들에게 통일이란 그들 삶의 가장 최우선에 놓인 소망이자 과제였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두 번째 날, 저희는 현지 조선학교의 학예회에 함께 하여 아이들의 무대를 보았습니다. 학예회의 주제는 이어가자 민족의 넋! 우리는 통일시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남북한의 분위기가 좋은 시기였기에 그것이 반영된 주제라고 단순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무대를 보는 순간 통일을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부터 선생님, 학부모님들까지 모두가 한 마음으로 통일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재일조선인 동포들이 왜 통일을 바라고 이야기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통일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이 처한 현실을 회복하고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이들은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은 많은 차별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일본의 모든 고등학교가 혜택을 받는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만이 배제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상황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조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일본 사회 내에서 취업 시에 상당히 불리했습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을 이루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재일조선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통일을 해야 한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재일조선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통일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의 문제는 여러 방면에서 접근해야 하고, 또 그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장 몇 년 안에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이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통해 작은 통일을 이룰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 이념과 사상, 모든 이해 관계를 떠나서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한 재일조선인에게 힘을 실어주고 함께 나아가기 위해 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는 단순히 남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재일조선인 1세 분들은 한반도 땅에서 평화롭게 지내다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신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그 분들의 삶이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재일조선인들이 나 대신에 그 모진 억압과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을 위해 최소한의 공감과 연대를 이루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재일조선인과의 작은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 전체의 상황도 서서히 바뀌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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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시모노세키에서의 경험은 저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가 모르고 있던 하나의 세계를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만남으로써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히 그들의 세계가 아니고 저와 한국 사회가 같이 만들어가고 연합을 이루어야 하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동포들이 단순히 우리의 도움이 일방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일본 사회 가운데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분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과 행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과 손을 함께 잡고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다른 많은 이들과도 연대해야 합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 저희 프로젝트의 지도 선생님이자 재일조선인 동포인 최태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재일조선인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기억하고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한국 사회 속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 등과 같이 함께함이 필요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제 마음 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미래에는 한국 사회가 많은 이들의 집이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고 소망합니다.

 

 

 

 

황규태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2학년

예수회 청년 아시아 평화 탐험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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