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지켜주세요!

김정대SJ 121.♡.235.108
2021.11.29 16:18 3,17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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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24일 영등포구청 앞에서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꿀잠을 지키기 위해서 피케팅을 하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꿀잠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영등포 지역은 내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놀며 돌아다녔던 곳이다. 그러나 높은 빌딩 사이로 난 넓고 번듯한 길을 지나가는 차 안에서 어릴 때 놀았던 장소를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영등포 청과물 시장과 김안과를 지나가면서 비로소 어릴 때 놀았던 장소의 위치를 그려볼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지금의 청과물 시장은 일반시장이었다. 사람들은 이 시장을 작은 시장으로 그리고 현 영등포 전통시장을 큰 시장이라고 불렀다. 발전이라는 명목의 개발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 기억까지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꿀잠설립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와 꿀잠과의 인연은 묘하다. 나는 200074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주로 신자들의 요구에 우선적으로 응답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우연히 2003년 초에 노동문제를 주로 다루는 시민활동가들, 소위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서울 남부 노동 상담센터설립에 결합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노동 상담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 활동을 해 왔던 문재훈 씨가 센터 소장을 맡았다. 나는 이곳에서 노동조합 조직 활동가인 기륭전자의 김소연 씨와 시를 쓰는 것을 노동으로 하는 송경동 시인을 만났다.

 

기륭전자 투쟁을 좀 더 설명하겠지만 문재훈, 송경동은 기륭 싸움의 숨은 조력자들이다. 물론 김소연을 비롯한 기륭 조합원이 이 투쟁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흥희와 윤종희같은 조합원은 지금도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조직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문재훈 소장은 이 남부 노동 상담센터의 특징을 법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노동문제를 주로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즉 노무사들이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동문제는 이 상담센터의 몫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투쟁 사업장을 지원하는 활동을 주로 하게 된 것이다.

 

김소연은 특유의 친화력과 지도력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는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송경동은 이성보다 감성에 이끌려 사는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다. 나는 기도를 하며 하느님과 세상 그리고 나를 관상(觀想)한다. 나는 그의 시 사소한 물음에 답함을 읽고 그가 세상을 관상하는 상상력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보는 세상은 하나도 사소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깊이 보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짊어지고 자본에 대항해서 대리전을 벌이는 기륭 노동자들이 어떻게 눈에 밟히지 않았겠는가? 남부 노동 상담센터는 나를 이렇게 기륭과 엮었다. 그리고 이들과의 소중한 만남은 천주교회의 사제인 나에게 사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했고 시민 활동가들과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새로운 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57월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불법파견을 시정하여 현장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법에 의해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들은 정규직화하도록 회사에 요구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회사로부터 문자 메시지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해고되었다. 이 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은 1900여일이라는 장기투쟁을 전개하였고, 마지막까지 함께 복직투쟁을 해 온 10명은 마침내 6년간의 투쟁 끝에 201011월에 경영진과 극적으로 정규직 복직에 합의했다.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복직을 바랐지만 회사는 그들에게 26개월의 유예를 요구하였다. 노동자들이 이를 받아들여 그들은 2013510일에 회사에 복귀했다. 기륭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 긴 시간 싸움을 이어왔던 힘은 그들의 유쾌한 상상력이었다. 이 상상력 때문에 이들은 죽는 것만 빼고 다른 다양한 투쟁 방식을 고안했다. 마침내 거의 8년 만에 복직을 하는 날 회사는 복직한 노동자들을 맞이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알짜배기 고정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껍데기만 남겨놓았다. 휴지조각이 된 사회적 합의 앞에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륭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부당함을 시정하기 위한 싸움을 넘어 우리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에 드러내는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58월부터 이들과 시민사회는 비정규직 제도의 모순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 이 부당한 제도의 철폐를 위한 거점이 될 새로운 집을 짓는 상상을 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꿀잠2년 가까이 약 2000여명으로부터 76천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리고 100여 일 의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봉사로 내부 수리를 하고 2017819일에 꿀잠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매해 4000명 이상의 노동자와 활동가가 이 집을 이용하고 있다. 2018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혼자 근무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회사를 상대로 긴 싸움을 할 때 이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201912월부터는 경마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다단계 갑질 구조를 알리며 자살한 경마 기수 문중원의 아내 오은주 씨와 그 가족들도 이 집에 긴 시간 머물며 부산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서를 만들어 냈다.

 

이 집은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을 따듯하게 맞이하고, 억울함을 강요하는 구조에 맞서 싸우도록 힘을 주는 사람을 살리는 집이다. 이 집은 숙박시설과 교육 공간 그리고 치과 및 한방 치료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 비정규직 제도 철폐를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꿀잠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꿀잠이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 2구역의 재개발조합이 20203월에 설립 인가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재개발을 진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꿀잠과 시민단체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구청과 조합 측에 꿀잠이 공공재임을 강조하며 존치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구청의 중재 노력은 너무 무성의하고, 조합 측은 꿀잠과 대화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꿀잠은 몇 사람의 상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는 나의 상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들의 이타적인 모습에서 하느님을 보았다. 왜냐하면 함께 산다는 것은 하느님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이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는,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게 해 주는 하느님의 성사이다. 나는 사제로서 이들의 하느님다움을 사는 활동에 당연히 연대했고 앞으로도 연대할 것이다. 그 연대 활동의 하나로 우리 사회의 양심에 꿀잠을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비록 재개발의 이득에 눈멀어 양심과 인간성을 파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선의를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 믿으며 호소해 본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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