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구의 눈물, 팜유

김민회SJ 121.♡.116.95
2021.03.02 14:43 4,4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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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프랑스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알게 되었던 한 선교회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신부님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저는 연어를 먹지 않습니다. 제 주변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동참해요. 유럽인들이 연어를 많이 소비하면, 연어 양식을 하면서 연어에게 많은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이 먹이는 당연히 물고기들이고, 이 물고기는 아프리카 근해에서 잡아야 해요. 결국 유럽인들의 식생활 때문에 아프리카의 어부들이 더욱 힘들어진답니다. 게다가 중국 원양 어선들이 아프리카까지 와서 많은 어종들을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더더욱 그렇지요.”

 

연어 양식이 이루어지는 좁은 공간에서 기생충이 창궐하고 연어들은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니, 연어에 항생제를 엄청나게 뿌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다만 연어와 관련된 인간의 건강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복음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다 넓게 바라보면서 자신의 신념을 나름 실천에 옮기려는 선교회 신부님의 노력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연어의 예를 통해서 보듯이, 내가 무심코 소비하는 작은 것이 누군가에게 커다란 해가 되고, 그 해로움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많은 다수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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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유의 습격 그리고 대안

 

우리는 여기에서 항생제 가득한 연어가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단순한 의학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돈의 논리와 함께 전세계가 촘촘하게 네트워크화 되었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연어 이야기는 이미 사회적인 이슈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견지로 볼 때,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용하는 식물성 야자기름(palm oil, 이하 팜유)도 마찬가지이다.

 

이 팜유의 사용처는 매우 광범위하다. 라면을 비롯한 각종 인스턴트 식품, 대부분의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에는 물론이고 화장품과 비누, 샴푸 등의 세제, 그리고 양초에도 이 팜유가 많이 사용된다. 바이오디젤에도 좋은 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효용성이 매우 우수하며, 게다가 다른 기름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양의 기름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값싸게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저렴한 팜유가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으니, 일상생활에서 이것을 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제품 겉봉에 팜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표기하는 것은 의무이나, 교묘하게 식물성 유지라고 표기된 것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팜유 문제 역시 단순하게 건강의 문제라고 국한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식물성 기름이긴 해도 포화지방의 비율이 거의 50%여서 사실상 동물성 기름의 성격을 지닌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혈중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를 꽤 높이기에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저렴한 팜유는 우리의 건강에 대한 세심한 염려를 사치스러운 걱정이라고 비웃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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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주 우연히 영국 BBC 방송에서 인도네시아 파푸아 열대우림지역의 많은 나무들이 벌목이 되고, 그 나무들은 모두 불에 태워지며 그 자리에 야자나무를 심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 벌목의 주체는 놀랍게도 한국의 모기업이었다. 이 한국 기업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허락을 받아 나름의 합법적인 방식으로 열대우림지역의 나무를 베는데, 매 년 서울의 6~7배 면적의 열대우림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돈을 벌겠다고 그 자리에 야자나무를 새로 심는 것이다. 벌목한 엄청난 양의 나무들을 불에 태우니 온실가스의 배출로 환경 문제를 야기하며, 사회적으로는 이 지역에 대대로 살아온 많은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폭력이 자행되기도 하고, 생태학적으로는 수마트라 호랑이나 오랑우탄 등의 야생 동물들이 이 열대우림지역에서 살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야말로 창조에 역행하는 파괴이며 생명을 거스르는 죽음이다.

 

팜유 플랜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면적의 열대우림지역을 개간하기 위하여 이 한국의 모기업은 이 지역에 살아 왔던 사람들을 돈으로 회유하며 개간의 면적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모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 이 기업을 잘 포장해서 홍보하는 기사가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내용인즉슨 밀림을 개척하면서 인쇄용지를 생산하고, 성장을 거듭하며 나무들을 이 지역에 다시 심는 환경보호의 사도로 이 기업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나름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모델로 보인다. 하지만 밝은 부분만을 강조하고 어두운 부분은 철저하게 가리면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언론은 지구와 환경에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은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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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과자에는 거의 대부분 팜유, 혹은 팜올레인유라고 병기가 되어있는데 반해, 위에 제시한 두 과자에서는 팜유 프리이다. 

 영양과 관련된 정보에서 보듯 트랜스 지방과 포화지방, 콜레스테롤이 모두 0% 라서 안심하고 섭취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과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거나, 팜유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다. 

 

 

팜유를 덜 쓰기 위한 대안이 없지는 않지만, 이에 대한 실천을 위해서는 돈의 논리와 효용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진리를 거스를 수 있는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아무리 돈을 벌고 싶다고는 하지만, 몸에 별로 좋지도 않은 팜유 대신 콩기름이나 옥수수 기름, 해바라기 기름, 그리고 참기름과 들기름 등의 사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팜유 사용에 대한 세금을 지속적으로 부과하고 세율을 인상함으로써 팜유의 사용에 대한 페널티를 더 적극적으로 적용시킬 지의 여부도 고민하여야 한다. 굳이 팜유를 소비하기를 원한다면, 열대우림지역의 많은 나무들을 애써 베어 버리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면서, 다름 아닌 새로운 땅에 야자 나무들을 심을 것을 궁리해야 한다.

 

팜유 수요의 급증은 전세계적인 추세이므로 이것을 당장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야자 나무의 서식 면적을 체계적으로 통제하고 보다 투명한 방법으로 유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에서 RSPO(Roundtable for Sustainable Palm Oil)라 불리는 국제환경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단체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잘 부합하는 기업체들의 윤리적인팜유를 사용하는 운동에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RSPO 인증을 받은 물건인지를 제대로 확인하고 구매를 하거나, 그러한 업체들이 어떠한 업체들인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창조는 정복 아닌 공생과 보존

 

인간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기 1,28)


구약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많은 권한과 특권을 주신다. 그러나 지배하여라”, 혹은 다스려라라는 단어에는 인간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처분하거나 정복하라는 의미 이상으로, 사실은 모두가 함께 사는 것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을 잘 보존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팜유의 생산이 돈이 된다고 해서 열대우림지역에 있는 다른 나무들을 함부로 베고, 이 나무들을 무분별하게 불에 태워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아무런 죄가 없는 이 지역의 원주민들과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정복이며, “공생보존이라는 창조 질서의 원리를 위반하는 명백한 범죄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세기 1,26)


그런데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제안을 엿볼 수 있다. 두 문장 모두 1인칭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창조주이시면서도 창조를 함께 이루도록 인간을 초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주인 하느님도 당신의 창조 사업에 인간의 협력을 구하거늘, 인간이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제 멋대로 처분하고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양식이 이루어지는 연어를 먹을 수도 있고,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팜유를 값싸게 수입할 수 있다. 수많은 정보들과 발달된 유통망 덕에 인간들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피조물들이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할 권리를 부여 받았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소비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커다란 해가 되고, 그 해로움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그 해로움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공생과 보존이라는 창조의 가치는 우리의 생태학적 회심을 안내하고 진작시킬 수 있는 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민회 시몬 신부

서강대학교 교목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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