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모자이크는 철거되어야 할까?
- - 짧은주소 : http://advocacy.jesuit.kr/bbs/?t=fP
본문
슬로베니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이자 모자이크 예술가인 마르코 루프닉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성미술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바티칸을 비롯한 세계 여러 주요 성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의 이름을 과거형으로 언급하는 것은 2022년 12월을 기점으로 지난 2년간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들 때문이다. 루프닉 신부는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여성 수도자들을 포함한 여성과 남성을 상대로 영적, 심리적,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진 것이다. 피해자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가 영성을 어떻게 악용해 성적 착취를 일삼았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016-17년에 발생한 성사법 위반이다. 루프닉은 자신과 성적 관계를 맺은 여성을 대상으로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사죄를 선언했는데, 이는 교회법상 중대한 범죄로, 자동 파문에 해당하는 행위다. 이 사실은 2019년 예수회에 보고되어 조사가 시작되었고, 2020년 그는 자동 파문되었다가 회개 후 해제되는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2021년 추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총 15명(여성 14명, 남성 1명)이 그의 학대를 증언했다. 예수회는 루프닉에게 여러 제한 조치를 했지만, 그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공개 활동을 이어갔다. 결국 2023년 6월, 예수회는 그의 불복종을 이유로 루프닉을 예수회에서 쫓아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교황청의 소극적 대응이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2022년 성인 대상 학대 사건이라는 이유로 20년 공소시효를 적용해 기소를 거부했다. 이에 교회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한 교황청이 조직적으로 루프닉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교황청은 2023년 10월 루프닉에 대한 교회법적 조사를 새롭게 시작했다. 20명 이상의 여성이 수십 년간 이어진 심리적, 영적, 성적 학대를 증언하면서, 세계적인 모자이크 작가로서 그의 명성 역시 크게 손상되었다.
곧바로 이어진 논쟁은 루프닉의 모자이크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즉각 철거해야 한다고 믿었다. 루프닉의 모자이크는 성화로서 성전에 자리한 본래의 목적을 더 이상 충족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학대에 연루된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 어떻게 치유와 은총의 매개가 될 수 있겠냐는 타당한 지적이 이어졌다. 루프닉의 모자이크는 루르드, 파티마, 바티칸을 포함해 전 세계 200여 개의 성당과 성지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학대 혐의가 드러난 이후 모든 성전에서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다.
교황청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위원장 숀 패트릭 오말리 추기경은 바티칸의 모든 부서에 루프닉의 예술 작품 사용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가해 혐의자를 옹호하거나, 많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루르드 성지의 경우, 루프닉의 모자이크를 즉시 철거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야간 조명을 끄는 것으로 결정했다. 성지 측은 언젠가는 철거해야 할 것을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감정적 갈등과 논란을 고려해 즉각적인 철거는 보류한다고 밝혔다.
반면, 교황청 홍보부의 파올로 루피니 장관은 루프닉의 작품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학대 행위에 대한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므로,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작품을 철거하는 것은 이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성직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은 존중하지만, 성직자의 성적 학대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을 향한 사목적 신중함과 민감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루프닉의 모자이크를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은 예술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오랜 예술철학적 질문이다. 루피니 장관은 예술을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루프닉의 과오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논리라면 살인을 저질렀던 카라바조의 작품도 철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예술가 개인의 과오가 그가 남긴 작품 자체를 부정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어떤 맥락에서는 예술가의 결함과 굴곡이 예술과 윤리의 관계,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지식인의 윤리적 의무에 대해 논의하고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친일 행위를 한 일제 강점기 시인들의 작품을 비판적 맥락에서 읽고 배우는 것은, 그들의 과오를 성찰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남길 것인가 제거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나, 예술가의 과오를 통해 더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관점을 긍정하더라도, 이를 루프닉의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학대 행위가 모자이크 제작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루프닉은 단순한 모자이크 작가가 아니라 사제이자 영성가였으며, 그의 작품은 단순한 예술이 아닌 성화였다는 점에서 영성을 악용해 폭력과 착취를 저지른 그의 범죄는 그 자체로 말할 수 없이 악랄하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으며 루프닉의 작품은 피해자들의 현재적 고통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모자이크가 예술적 가치나 역사적 의미를 논의하는 대상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몇 년 전 로마를 방문했을 때, 나는 루프닉의 모자이크 공방인 알레티 센터에서 한 점의 그림을 선물 받았다. 당시 우리 일행은 교황청 홍보국의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고, 각자 프로젝트 기간 동안 수호성인을 배정받았다. 내게 주어진 성인은 사회 정의와 커뮤니케이션의 수호성인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였다. 그림 속 로메로 대주교는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손에는 빵 접시를 들고 있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커뮤니케이터로서 나는 이 그림을 내 활동의 나침반처럼 여겼고, 수년간 사무실 책상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루프닉의 모자이크 문제는 그래서 내게 남 일이 아니었다.
점차 그의 학대 행위가 밝혀지고, 누구도 그의 범죄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그림을 치웠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서도, 피해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도 아니었다. 그 그림은 내게 전 세계에서 모인 동료들과 나눈 우정의 증표였고, 내가 아무도 듣지 않는 것만 같은 말과 글을 계속해서 써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망설였던 바로 그런 이유로 루프닉의 모자이크는 철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의 작품은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의 신앙 공동체에도 단순한 예술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사랑한 것은 그것이 '마르코 루프닉의 모자이크'여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작품이 담은 주제와 메시지,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체험한 하느님과의 대화를 사랑했기에 그의 작품은 그토록 소중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는 없다. 모자이크는 철거되어야 한다.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