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빗방울달, 타오름달이 가고 거둠달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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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7월은 ‘빗방울 달’, 8월은 ‘타오름 달’로 되어 있다. 이번 여름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폭우와 폭염의 여름이 지나간다. 서울과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불타는 밤으로 사람들은 잠을 설쳤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전국 평균 열대야 발생 일수는 20.2일로 열대야 최장 기록이다. 1994년이 16.8일, 2018년이 16.7일이었다. 가축은 100만 마리 이상, 어류도 대량으로 폐사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인도와 파키스탄 등 세계 곳곳이 여름을 앓았다. 문제는 올해보다 이듬해가 더 더울 확률이 점점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폭염의 일상화로 여름이 재난의 때로 변하고 있다.
기후 재난으로 세상이 요동치는데 지금 정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서 한다. 지난 7월 30일 환경부는 기후 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 등에 대비해 댐 14개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위기 대응 댐’이라는데 실제로는 ‘기후위기 역행 댐’이다. 댐 건설 과정에서 배출될 온실가스와 파괴될 자연 생태계만 생각해도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댐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철거한다. 극한 호우 시대에 댐은 홍수를 막는 게 아니라 물 폭탄이 될 수 있다. ‘송곳 폭우’니 ‘띠 장마’니 하며 국소적으로 퍼붓는 비에 댐 같은 경직된 인공물은 갈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4대강이 그렇듯, 댐이 물의 흐름을 막으면 녹조가 창궐한다.
무엇보다 지역민의 삶을 ‘수몰’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발상이 놀랍고 끔찍하다. 난데없이 삶의 뿌리를 뽑으려는 행정 폭력에 지역 주민은 진저리치며 분노한다. “우리가 정하고 너희는 따른다.” 주민 수용성은 안중에도 없는 일방통행식 관료주의 행정, 국가 폭력을 등에 업은 개발 독재의 귀환을 본다. 주민 설명회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뭐라고 설명해도 이번 댐 소동은 기후를 빙자한 토건주의, ‘기후위기 대응 핵발전’의 후속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달 8일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그린벨트 해제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지, 실효성 있는 주택 공급이 될지 매우 불확실하다. 녹지가 더위를 누그러뜨린다는 건 확실하다. 숲은 삶의 질을 높인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시대에 녹지를 곶감 빼 먹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개발주의가 건재한다는 게 서글프고 부끄럽다. 그린벨트를 개발하면 그곳에 사는 생명체는 파괴된다. 사람처럼 동식물도 집이 있어야 산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려는가?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린벨트를 지켜야 한다. 직접 체감하긴 힘들어도 생물 다양성은 인간의 삶에 중요하고 숲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2022년 제15차 생물 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 바다와 육지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합의한 것도 결국 인간을 위해서다. 현재는 육지의 17%, 바다의 10%가 보호구역이니 계속 늘려야 한다. 그린벨트 해제는 이 목표에 역행한다.
자본주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지구를 달구는 주범이다.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를 늘려 이윤을 얻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는 더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엇을 ‘더’하는 것보다 ‘덜’하는 것이 우선이다. 무언가를 하면 온실가스도 따라 나온다. 무엇을 하기 이전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부터 살펴야 한다. 정부는 댐과 공항같이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토건사업, 온실가스 흡수원을 없애는 그린벨트 해제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 자연은 최대한 그대로, 인간 행동은 최소화해야 한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극한 폭우와 폭염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지금도 별로 없다. 그런데 높은 나무 꼭대기의 허술해 보이는 까치집은 어떻게 폭우와 폭풍에도 무사할까? “새들의 둥지는 헐겁고 가벼워서 비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나무와 함께 흔들리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다.”(김훈) 견고한 인공물에는 허약함이 들어있지만, 허술한 자연물에는 강력함이 깃들어 있다. ‘자연 순응’이 까치집 안전의 비결이다. 기후위기 시대, 자연과 관계할 때 인간이 엄중히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지난 7월, 비가 이틀간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고 난 후, 집 근처의 정릉천에 나가봤다. 물이 크게 불어나 천변 산책로가 통제되었다. 인적이 끊긴 적막한 길을 독차지한 청둥오리만 유유자적 거닐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인간이 사라진다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다. 코로나19 초기, 사람이 다니지 않는 텅 빈 도심에 곰, 늑대, 여우 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 활보했다. 파국을 피하려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겸손하게 분별해야 한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이 판결을 계기로 기후위기에 진정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 9월 7일 서울 강남에서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기후정의행진이 있었다. 지금 세상 탓에 기후위기가 닥쳤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꾸냐며 체념할 게 아니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9월은 한 해의 결실을 수확하는 가을로 접어드는 달, ‘거둠달’이다. 지나가는 여름이 주는 가르침을 잊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거두는 때이길 바란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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