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아리셀 참사 유가족의 희망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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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시청 건물 위에는 화성시를 홍보하는 ‘내 삶을 바꾸는 희망 화성’이란 문구가 걸려 있었다. 이 말이 얼마나 허망한 문구였는지 우리는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로 인한 중대재해로 알게 되었다.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 참사 희생자들은 자신의 삶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바뀌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부귀영화를 누릴 희망으로 아리셀 공장에서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로 그저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그곳에서 일했다. 그러나 아리셀은 그들의 평범한 소망과 일상을 지켜주지 않았다.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할 경우 화재 진압이 아니라 바로 대피해야 한다는 안전교육만 있었더라도 그들의 평범한 소망과 일상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안녕(安寧)’을 6월 23일 자로 빼앗겼다.
이 참사가 발생한지 벌써 90일이 넘었다. 참사 희생자 유족들의 바람은 참사 책임자의 진정한 사과와 피해 보상이다. 이런 단순한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우리 사회와 시민들은 유족들과 함께 참사의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후로부터 아직까지 이 폭발 참사의 만족스러운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니 참사 책임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래서 유가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차디찬 냉동고에 모셔둔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운 감정과 수사기관을 비롯한 행정기관의 관련자들에 대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공감해야 하고 그들을 그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지난 9월 3일 아리셀 폭발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서 그들이 느끼는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분노를 통해서 그들이 겪는 좌절과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았다. 나는 이런 부정적 감정이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그동안 많은 활동을 했다. 그 활동을 통해서 나름 의미 있는 성과도 이루었다. 먼저, 희생자들 중 많은 사람이 중국 교포로 한국 문화는 그들에게 매우 낯설다.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의 정도도 한국인과 중국교포가 매우 다를 것이다. 이런 문화 차이로 인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둘째로, 50대 이상의 희망버스를 타고 찾아와준 많은 시민들의 연대도 큰 힘이다. 셋째로, 아리셀과 모회사 에스코넥의 박순관 대표와 아리셀의 박중언 총괄본부장을 구속 수사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이다. 박순관 대표의 구속 수사는 중대재해법이 실행되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대표가 구속되는 첫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에스코넥과 아리셀은 노동자 불법파견과 군납품 비리와 관련하여 수사를 받고 있다.
나는 이 성과들이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성과란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일의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억이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킨다. 이런 차원에서 과거를 성찰할 수 없는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면 현재의 연대도 투신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강화된 믿음이 우리를 이 참사를 올바로 대면하게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연대하게 하고 투신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연대와 투신은 사랑의 행위이다. 그 사랑의 행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 표현되기에 이는 다름 아닌 ‘성사적[secramental]’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서로에게 그리고 주변 환경의 변화와 반응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 희망이라는 감정으로 우리가 미래를 함께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서 8,24-25)라고 말하며 희망과 인내를 연결시킨다. 매우 중요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 희망 때문에 우리는 인내하며 미래를 기다릴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희망이 없는 사람은 인내할 수 없으며 그들에게는 미래란 있을 수 없다.
다들 즐거워하는 추석 연휴이었겠지만 어쩌면 유가족들에게 큰 고독의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유가족들에게 나는 고인들과 생전에 같이 지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감사함과 사랑, 그리고 미안함의 감정을 서로 나누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참사 발생 이후 이루었던 의미 있는 성과에 대해서도 다시 곱씹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에 있었던 의미 있는 경험과 긍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서로를 연결시킨다. 이 믿음이 우리를 서로 연대하고 참사를 똑바로 대면하게 하며, 참사로 인한 고통을 끓어 안고 문제가 해결되도록 투신하게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도달하지 못할 길도 아닐 것이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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