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문화 읽기-화 (3편)] 분노 표현의 배타성

김병직 121.♡.116.95
2020.08.06 15:10 5,3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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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해서 본능적인 거부감, 혐오감이 있다고 합니다. 인종 차별에 대한 fMRI 실험 연구가 이를 잘 보여주기에,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공명영상)는 뇌 안의 혈류와 관련된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이 기법은 뇌 혈류 변화와 신경 세포의 활성화 정도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즉 특정 부위의 뇌 영역이 사용되면 그 영역으로 가는 혈류의 양도 증가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둡니다. 이 기술을 통해, 우리가 특정한 자극에 반응할 때 우리의 어떤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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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화를 내면 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됩니다.

 화는 인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뇌의 작용이기도 하다는 의미이지요.

 이 사실이 화를 내는 우리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기법을 사용해서 인간이 다른 집단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을 조사한 실험 연구는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fMRI 기계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이 다른 인종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인종에 속한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사전 설문 조사 혹은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타 인종과 함께 일하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종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여겨지는 사회 문화 속에서 교육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그 다음부터 나타납니다. 이들이 fMRI 기계에 들어가서, 타 인종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형태의 사진들을 통해 접했을 때, 이들의 뇌는 당초의 주장과는 다르게 반응하였습니다. 말로는 인종 차별은 나쁜 것이며,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이들의 뇌 안에서는 혐오감을 느낄 때 반응하는 부위가 강력하게 활성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실험에 참가한 이들은 자신이 정말로 타 인종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 혹은 차별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혹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이 실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이렇게 해 보고 싶습니다. 이 결과는, 우리 인간이 고등 교육 혹은 고급 문화의 세례를 받아 의식적으로는차별에 반대할 수 있어도, 본성적으로는 외 집단(out-group)을 차별하도록 프로그램화된 존재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분노를 일으킨 대상에 대해 직접적인 보복 혹은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자신이 속하지 않은 타 집단, 심지어 정치/경제/사회적 힘이 약해 만만하기까지 한 외집단에 화풀이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꽤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물론 우리 인간이 그 본성을 거슬러 옳음/선함을 찾아갈 때 그 가치와 존엄성이 유지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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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로 나라가 무너진 경우가 있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지만,

 저분의 주장이 맞다면 한국은 역사상 최초로 동성애로 무너진 나라가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은 한국인들이, 우한 지역 사람들이나 신천지 교인들이라는 외집단들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은 현상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게이 클럽 이용자들에 대한 광분에 가까운 분노 역시 이런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외집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수자이기 때문입니다. 외집단에 속한 약자들을 희생양 삼아 (scapegoating) 분노를 표출하고 행동화함으로써, 분노를 배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집단(in-group)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기에, 이들의 행위는 상당한 편익을 가져다줍니다.

 

 

분노를 건전하게 다루기 위한 제언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그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승화시키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첫째, 우선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분노에 대처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쉽게 사용하는 분노 표현 양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분노가 형성되었을 때 이를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다루고 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타 집단에 대해 쉽게 혐오감을 느끼며 그 혐오감을 약한 대상 혹은 집단에 표출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타인에 대한 혐오감에 취약한지 의식하고 있다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본능이 아닌 이성을 사용하여 대처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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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셋째, 분노는 표현되었을 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감정이 증폭되어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그 원인을 파악, 이해한 후에 말로 표현하는 언어화 (verbalization) 과정을 거칠 때 그 수위가 낮아지고 정화되는 반면에, 그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낼 때 증폭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특성을 이해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분노를 해소할 연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넷째, 타 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쉽게 느끼는 경향성도 있지만, 인간은 동조 (conformity) 압력에 상당히 약한 존재임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의 도덕 혹은 규칙에 순응하고자 하는 동조성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타 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표현하거나 분노를 나타내지 못하게 하는 여러 사회 문화적 장치들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 제도, 시스템 등을 통해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 진정한 승화 및 용서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노를 일으킨 대상에 대해 정당한 방식으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실체적 정의 혹은 균형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촛불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부적절한 의사결정들에 대항하여 시작된 촛불 시위는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평화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으로 실질적 정의가 회복된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촛불 시위에 참여한 제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위 안에 평화뿐만 아니라 재미와 웃음이 가득했다는 점입니다. 시위대가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할 때, 그들에게 힘을 더해 준 것은 무거운 혁명가요들이 아니라, 재치와 기지가 가득한 개사 가요들이었습니다. '펠리스나비다'를 개사한 '근혜는 아니다'가 흘러나오자 비장하고 무거웠던 행진의 분위기가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했습니다(물론 근본적으로 시위 및 행진이 지닌 중차대한 의미와 그로 인한 진지한 분위기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또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삽입곡이 들리자 행진 일행은 또 한 번의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장함 속에서 웃음을 공유하게 되니,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연대감이 더 커진 듯합니다.

 

아마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집단 무의식 안에, ‘의 정서를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냈던 민족의 고유한 정서가 녹아들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분노를 초래한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풍자와 조롱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저항하여 심리적 균형을 맞추는 셈입니다. 이를 통해 분노는 정화되고 그 파괴적 속성은 약화될 뿐만 아니라, 결국 대상을 용서할 수 있는 심리적 자원 및 에너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3주에 걸쳐서 분노의 원인과 분노에 대한 다양한 반응 방식들, 그리고 그 반응이 세대 별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며, 분노를 건강하게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저도 분노를 느낄 때마다 참 다루기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에, 이 주제에 대해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분노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그런 제 모습에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면 건강하게 분노를 다룬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져 다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는 이들이 있어서 다시금 일어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너진 나를 감싸 안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는 것이지요. 물론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 주어야 하겠고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용기와 연민, 사랑을 청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김병직 사도요한 교수

울산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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