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노년의 삶과 노동

김정대SJ 121.♡.116.95
2020.07.08 12:17 364,4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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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1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 노동자 최희석씨가 자신의 집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자신이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파트의 한 입주민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모욕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모욕적인 폭언과 폭력과 갑질로 경비 노동자에게 수치를 안겨주었던 사건은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가 있었다. 20101010일 창원의 한 아파트 경비 노동자는 입주민으로부터 모욕적인 폭언과 폭행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010. 10. 26, 경남도민일보) 2014107일에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모욕적인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해 분신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 비정규노동센터의 2019년 아파트 경비 노동자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 중 24.4%가 입주민들에 의해서 괴롭힘과 갑질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또 같은 기관의 2020년 실태조사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공간이 갖는 공공적 성격에 비춰봤을 때도 역시나 노동인권 개념이 어느 사업장보다도 필요하다.”(손정순, <비정규노동>, ‘아파트 경비 노동자 실태와 제도 개선’, 2020. 4. 29.)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이 칼럼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노년의 노동과 그들의 노동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우리 문화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생계를 위한 노년 노동

아파트 경비원은 오래전부터 현역에서 은퇴한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50대 후반의 은퇴한 장년층과 노년층이 생계를 위해서 아파트 혹은 빌딩 경비원으로 재취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혹여 해고될까, 또는 재계약이 안 될까 걱정하여 모욕과 불합리를 감내한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책 임계장 이야기가 모욕과 불합리를 감내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다. 그리고 임계장은 ··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 말은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의미이다.(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후마니타스, 2020)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2017년 기준으로 이미 14%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파트 경비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원하는 노동자들을 고르기 쉽다. 임계장같은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간접고용 되어있고 정기적으로 재계약을 통해서 고용을 유지하기 때문에 다루기 쉽고, 또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와는 재계약을 안 하면 되기에 자르기도 쉽다. ··라는 의미 안에 장년기 이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겪는 수치스러움과 고통, 그리고 불합리를 감내해야 하는 삶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임계장의 삶은 고달프고 치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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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사회

인생은 젊어서 죽거나 나이가 드는 것 두 가지 가능성만 제공한다.” 최근 출판된 나이 듦에 관하여의 저자 루이즈 애런슨의 주장이다. 즉 죽지 않는 한 나이가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인간을 생산력으로 평가하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에서 사람들은 젊음의 생산력을 선호하고 나이 듦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부족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임계장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 사회는 과제 해결을 잘하는 기능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시험을 보고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에 익숙하다. 당연히 성적이 뛰어난 사람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성적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은 주변부를 맴돌거나 도태된다. 그러나 개인들 사이의 관계성은 깊지 못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는 나의 성공을 위해서 나의 앞만을 보도록 가르쳤지 타인을 보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니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기능적 사회에서 관계적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데 관계적 삶이란 과제 해결을 잘하는 삶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며 사는 그런 삶이다. 나는 내가 완벽할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타인에게 나누고 그들이 나에게 공감해 줄 때 행복하다.

 

수치스러웠던 체험 나누기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기능적으로 부족한 인간으로 간주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을 지배하려고 모욕적인 폭언과 폭행으로 수치심을 안기기도 한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수치스러웠던 경험을 드러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자들은 이런 부정적인 경험을 혼자 해결하거나 조용히 가슴속에 묻어둔다. 혼자 해결한다는 것은 자신이 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욕망 자체가 현실적으로 성취 불가능할 수도 있다. 또 조용히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도 건강하지 못하다. 수치를 당하여 아픈 마음을 잘 만져주지 않고 방치한다면 스스로가 우울함을 느낄 수 있다. 심한 경우 최희석 경비 노동자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건강한 방법은 그 수치스러웠던 체험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나 동료들과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수치스러웠던 체험을 나눔으로써 그들은 수치를 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즉 내적 갈망을 신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로써 그들은 자기를 존중하며 자율성 안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임계장도 계속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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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상호성

입주민과 경비 노동자들의 관계는 위계적이고 일방적으로 경비 노동자를 머슴 취급하는 상하관계로 규정된다. 그러나 인간관계란 한 측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규정되거나 만들어지지 않고, 쌍방이 함께 규정하며 상호성에 의해서 발전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The New Shorter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의하면 상호성혹은 상호 관계(Mutuality)’의 어원은 라틴어 Mutare’인데 이는 변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어원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상호성은 선의의 교환, 친밀함을 의미한다. 친밀감, 공감, 연민과 같은 감정들은 인간관계에서 상호관계를 위한 중요한 요소이며, 사람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위계적 문화에서, 두 당사자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 “위계적인 문화와 위계적 관계는 한 개인에 대한 타인의 선함을 자유로이 선호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종속시킨다.” (Schneiders, S.,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New York, NY: A Herder &Herder Book, 2003, 192) 따라서, 위계적 문화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관계에서 상호성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문화의 한계성을 의식할 때 더 올바른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댓글목록 3

김윤아님의 댓글

김윤아 223.♡.216.54 2020.07.08 13:26

감사합니다, 신부님

가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변화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긴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사회의 부정적인 현상들로 인해 인간의 선한 활동이 지속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활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현존과 위로를 느끼게 되겠지요

이러나저러나
모든 것을 합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 계시니...

계지현님의 댓글

계지현 58.♡.38.136 2020.07.08 16:39

감사합니다.  신부님. 
서로 존중하며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 주춧돌이 되어,
평등하고 나뉨없는 사회로 숨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성미님의 댓글

김성미 183.♡.136.147 2020.07.08 19:00

좋은글과 좋은생각의 나눔. 감사드립니다

우리사회의 아픈 모습들 서로 치유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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