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난민] 이유 있는 편견과 만남, 그리고 승화

김우선SJ 163.♡.183.94
2020.03.31 16:48 6,1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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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일본사람에 대해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도쿄와 이번 서울에서의 주말 만남을 통해서 일본사람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그리고 이 기억을 이제 집으로 가지고 가렵니다. 그래서 이것을 형상화해서 욱일기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욱일기의 빛살 대신에 꽃이 피는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이야기하며 백지 뒷면 그림을 보여주는 서강대 학생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정이 있었고, 듣는 내 눈가는 약간 촉촉해졌다. 욱일기에 대한 어떤 느낌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말하는 그의 진심이 감동적이었다. 문득 앞을 보니 일본 학생 한 명이 이미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이 일화는 201811월 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 이웃살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당시 나는 서강대학교와 도쿄에 있는 예수회학교인 소피아대학교에서 각각 20명의 학생을 두고 동아시아와 예수회교육이라는 과목을 소피아대학의 동료 예수회원과 공동 진행했다. 이 과목은 서강대와 소피아대에서 학생들에게 예수회 교육의 정신과 방법으로 동아시아의 공동 관심사를 대면하도록 돕기 위해 설계한 교양과목이다. 우리는 공동주제로 동아시아에서의 이주민과 난민을 선택했고, 수업방법으로는 각자의 강의실 수업 외에 화상 공동강의와 공동 현장 방문을 기획했다. 그래서 한 주말은 도쿄를, 다른 한 주말은 서울을 방문해서 40명의 학생이 함께 도쿄의 이주민센터를 방문했고, 이웃살이도 방문했다.

 

서울 방문을 마무리하며 소피아대학 학생들이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김포공항을 향하기 직전이었다. 23일의 방문을 마무리하는 성찰을 돕기 위해 나는 학생들에게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간 강의와 만남, 현장 방문을 통해 한 가지만 가져간다면 무엇을 가져가고 싶냐?”는 질문을 주었다. 그리고 그 한 가지를 이미지화해서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백지를 한 장씩 주었다. 학생들은 각자 그린 그림을 가지고 한·일 학생 2명씩 4명이 한 조가 되어 소감을 나누었고 그중 몇 그룹은 발표까지 시켰다. 이제 마치려는 순간, 한 서강대 학생이 손을 들고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서두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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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희생자들을 위로하기위해 세워진 원폭희생 위령비

 

 

우리 서강 학생들과 내게 그의 이야기는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가 이전 수업시간에 자신이 일본에 대해서 지녔던 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년 전 가족과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 자신을 원폭의 피해자로서 전시하며 가해의 측면은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불쾌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부분에서 학생의 나눔에 내가 크게 공감한 것은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 그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아름다운 공원과 우아한 기념관 건물 안에 원폭의 비참함을 보면서 더 이상 원폭은 안 된다!(Never again)’는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희생자의 1/10이 조선인이었음에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찾기 힘든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잊힌 한인 희생자에 대한 나의 무지가 황당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소피아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밥을 먹으면서 그들과 인격적 만남이 생기며 일본인을 동료 인간으로 대면하게 되고, 자신 안에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되어 자진해서 서두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에 대한 편견과 화는 대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만나지 않고 개념으로 가지고 있는 남에 대한 편견과 화는, 심하면 혐오와 분노로 치달으며 남을 악마화하기 십상이다. 실제 그 과목 중 한 번은 그 해 여름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학생들의 찬반은 얼핏 반반으로 나뉘었던 것 같다. 개념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을 만나야 이해가 생기고 수용하는 마음자리가 자란다. 나 역시 일본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무너지게 된 것은 오래전 처음 일본인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인도네시아에서 히잡을 쓰고 여성의 지위와 성평등을 말하는 무슬림 여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은 엄격히 남녀 구별을 하는 전통적인 무슬림이라는 선입견을 나도 모르게 갖고 지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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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수회원들은 그 과목을 설계하면서 지적인 측면 외에도 남을 위한 사람의 양성이라는 예수회 교육의 비전 속에 두 가지 목적을 담았다. 하나는 이주민을 통해 에 대한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을 자각할 수 있게 돕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일 학생의 실제 만남을 통해 상호 이해를 깊이하며, 우정을 쌓아 동아시아의 미래 봉사자가 되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학기 수업이 그런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나는 내심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학생의 소감은 어떤 싸인sign 같았다. ‘하느님이 우리 기도와 노력을 축복해주셨구나하는 감사의 정이 올라왔고, ‘교육이 값진 것이구나. 그간 수고와 고심은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강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몇 순간 중의 하나였다.

 

당시 학생들은 책이나 미디어에서 보고 들었던 이주노동자, 난민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그 자체를 신기(?)해했다. 개념으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만나 대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주민’ ‘다문화가정하면 가지고 있던 느낌,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 안에 존재한 어떤 선입견, 편견을 조금 더 넓히고 승화시켜 지평융합을 이루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은, 예수회원으로서 교육자로서 내게는 특권이었다. 욱일기를 꽃이 피는 모양으로 이미지화하여 일본에 대해 지녔던 자기 태도의 변화를 그린 그 친구와 상상력이나 깊이는 각자 다르겠지만, 그 과목이 함께한 서강과 소피아의 학생들 모두에게 우리 모든 인간이 지닌 이유 있는편견과 화를 넘어 지평을 넓히고 승화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지금도 기도한다.

  


 김우선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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