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일조선인 김숙자(안나) 선생님 인터뷰 (2)

정다빈 163.♡.183.94
2020.03.12 15:06 6,068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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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재일조선인은 일본 사회의 소수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드문 일본에서 천주교 신자도 소수자입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천주교인이라는 것은 소수자 가운데서도 소수자였던 것입니다. 소수자면서 다시 소수자인 삶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A. 남편이 병을 얻은 후에 신부가 된 삼촌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삼촌에게 제 인생에서 정말 다행이었던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신앙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것, 다른 하나는 조선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돌아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신앙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기에 사랑이나 인생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고, 조선학교를 다녔기에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며 인생의 기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선학교나 조총련 사회에 신자들이 없기에 제가 소수였던 것은 맞지만 저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인이라서 차별당하거나 배제당하는 일은 있어도 동포들 안에서 제가 천주교 신자여서 배제당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난해 예수회가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천지개벽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시민단체 몽당연필에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회원으로 계시고, 신자 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에 감동했습니다. 그러다 예수회가 이렇게 직접 움직인다는 것에 무척 놀랐습니다.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공간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배웁니다. 이것은 표현은 달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일과 조선학교를 위하는 일이 제 삶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소수자로서의 삶은 제게는 사랑이었습니다. 조선학교와 가톨릭 신앙은 모두 제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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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7일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현판 앞에서 한국 청년과 함께 한 김숙자 선생님 

 

Q. 지난 몇 년 사이 그동안 재일동포들을 외면해온 한국에서도 동포들과의 교류와 연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재일조선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A. 조선학교는 북한의 지원 덕분에 이제까지 버텨온 학교입니다. 해방 직후에 국어 강습소로 시작한 조선학교를 일본 정부는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항상 탄압해왔습니다. 1948년에는 실제로 학교 폐쇄령을 내고 경찰력을 동원해 학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각지에서 동포들의 항의 투쟁이 벌어졌고 오사카에서는 14살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격렬한 투쟁을 통해서 겨우 몇 개의 조선학교가 일본학교의 분교 형식으로 민족교육의 등불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자주 학교로 재정비하고 전국적인 민족교육체계를 구축한 것이 1955년 창립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였고, 이를 지원한 것이 북한이었습니다. 북한은 1957년부터 작년 4(21880만 엔)까지 165번에 걸쳐 총 4844373만 엔에 이르는 교육원조비를 보내왔습니다. 북한은 일본 각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해마다 수학여행으로 받아주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 세우는 등 다방면으로 재일조선인들을 배려하고 내세워줬습니다. 우리 재일조선인들이 의지하는 곳은 언제나 북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학교에서는 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가르치며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는 항상 차별과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등굣길에서 조선학교 학생이라고 폭언을 퍼붓거나 여학생들이 교복으로 입는 치마저고리를 칼로 찢어버리는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일본 당국은 유치원이나 고등학교의 무상화 제도에 다른 외국인학교는 다 포함하면서도 오직 조선학교만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권까지는 한국 정부도 한국 국적 학생이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 하도록 공지문을 내는 등 노골적으로 조선학교를 탄압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와 학생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긴장을 풀 수 없고 민감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몽당연필스태프들은 그런 민감하고 경각성이 높은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노력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단체를 통해서 조선학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통일에 대박이 없듯이 한국 분들과 재일조선인도 만났다고 바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데서 시작해서 서로가 참을성을 갖고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은 그렇게 마음으로 다가와 주시고 조선학교를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우리를 지원해주시는 분들은 조선학교를 알면서 행복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들을 접하면서 여러모로 감동해 왜 이렇게 선한 분들이 많으세요?”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조선학교를 알게 되면 선하게 되어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그것뿐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서로 만나고 이해하려 하면서 사람은 시야가 넓어지고 기쁘고 행복해진다고 믿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분단 상황입니다. 한순간에 하나 되기는 어렵습니다. 분단을 경험하는 우리가 조선학교를 이해하는 과정은 곧 분단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분단의 역사가 들씌운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치유해간다면 우리는 그 따뜻함으로 아이들을 위해 더 밝은 내일을 열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오시도록 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리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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