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어떤 경마기수의 죽음

김정대SJ 163.♡.183.94
2020.03.09 18:21 6,8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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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29, 부산 경남 경마공원의 경마기수인 문중원 기수가 3쪽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조교사와 기수 사이의 부당한 갑을 관계, 마사회의 불공정한 마방(마구간) 임대, 그리고 부당한 선진 경마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 적혀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경마는 건강한 스포츠가 아닌 비인간적인 사행산업임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마사회라는 집단이 경마장 운영과 관련하여 얼마나 경직된 조직인지도 보여주고 있다.

 

마사회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면서 화상 도박 경마장을 증설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마사회의 총매출액 중 70%가 넘는 매출이 화상 경마장을 통한 매출액이기 때문이다. 마사회는 화상 경마장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서 악천후와 같은 경주가 불가능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마를 강행하고 있다. 이렇게 무리하게 경마를 강행하면서 기수와 말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는다. 사실 경마기수들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인하여 골절과 살이 찢기는 부상, 디스크와 같은 산업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경마기수가 무리하게 경마에 참여하는 다른 이유는 선진 경마 시스템때문이다. 이는 1위를 한 기수가 상금의 57%를 가져가고 5위 안에 들지 못한 기수들은 상금을 받지 못하는 승자독식 무한경쟁 구조다. 기수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승자독식', '무한경쟁체제'에서 살아남고자 무리한 경주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안전도 확보하지 못한 채 무리한 경주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마사회의 막대한 권한 독점과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 및 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 때문이다. 마사회는 1993년 기수와 조교사, 그리고 마필관리사의 직접고용을 해지하고 외주화했다. 조교사는 마주로부터 경주마를 위탁받고, 말을 훈련하고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고, 경주마를 타는 기수와 기승 계약을 맺는다. 조교사와 기수는 모두 개인 사업자로서 그 둘 사이의 관계는 동등한 계약처럼 보이지만 실상 조교사는 기수의 출전 선택권과 작전권을 가지고 있기에 기수는 조교사에게 철저히 종속된 관계를 맺게 된다. 조교사는 마사회로부터 마방을 임대받아야 하는데, 마사회-조교사 관계 역시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다.

 

이런 경직된 관계에서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의를 억압하고 권력관계의 상부구조에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살아야 한다. 이런 모습이 삶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사회가 그들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이는 사회적 타살이다. 2005년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개장한 이후 문중원 기수를 포함하여 일곱 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목숨을 끊었다. 문제는 지난 15년 동안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일곱 명의 기수와 미필 관리사에 대한 사회적 타살이 이어졌지만 아무도 이런 죽음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런 죽음의 사슬을 끊는 것은 제도 개선을 통해서 이루어지겠지만 왜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에 관한 질문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이 질문에 인간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좀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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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을 불혹이라고 한다. 인생의 중년기인 나이 40줄에 들어서면 세상을 보는 식견과 지혜가 생겨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가 정립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경직된 문화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위에 순응해야 하는 사회적 규범에 자신들을 지나치게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한 자기를 찾기보다는 자기 정체성을 그들의 개인적인 환경의 기대와 정의에 동일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중요한 지도자들의 의견과 생각으로 제한하고, 그 지도자들의 기대와 믿음과 가치를 따른다. 발달 심리학자 로버트 케건은 이런 의식 상태를 사회화된 마음’(The socialized mind) 상태라고 분류한다. 이들이 좀 더 성숙한 의식 상태로 발달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를 그는 자기 권위가 있는 마음상태(Self-authoring mind)라고 분류한다. 이 상태는 다름 아닌 진정한 자기를 찾는 단계다.

 

세월이 숙제를 주듯, 문중원 기수는 나이 40(불혹)줄에 들어서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며 적응했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 세상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바로 자기였던 것이다. 아마도 가장 자기다움을 갖는 순간이 바로 난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아!”라는 의식 혹은 분노가 생길 때이다. 이는 다름 아닌 나다움을 살겠다는 결의이기 때문이다. 문중원 기수는 난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아!”라고 의식하며 자신다움을 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닐까?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는 유서에 나와 있듯 저항하는 의미를 자기 죽음에 담았다. 이런 저항은 과거의 거짓 자기가 아닌 진정한 자기가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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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중원 기사는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에게 남은 몫은 그가 죽음으로 저항하며 살고자 했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마사회를 비롯한 여러 조직의 폭력적이고 경직된 구조를 청산해 나가야 한다. 우리 역시 이런 폭압적인 구조에 난 더는 이렇게는 못 살아!”라는 분노를 느껴야 한다. 아마도 이는 거룩한 분노일 것이다. 이 거룩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문중원 기수의 부인과 그의 부모, 장인 장모는 그의 죽음의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서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시민사회와 함께 광화문에 분향소를 마련하여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과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마사회와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왔다. 이들은 설 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간절히 바라며 45일 오체투지를 했다. 지난 34일에는 목숨을 끊은 지 100일이 지나기 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인 오은주 님과 몇몇 활동가가 단식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난 36일 만족스럽지 않지만, 마사회와 대책위 사이에 부경경마 기수 죽음의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유족과 시민사회는 문중원 기수의 장례식을 39노동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김정대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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