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난민] 코로나 바이러스

이근상SJ 163.♡.183.94
2020.02.25 20:39 185,29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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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잊은 미국드라마의 한 대목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 적이 있다. 학부모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한 엄마가 여름 캠프에서 돌아온 자기 아이의 머리에서 서캐를 발견하고 경악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한 아이가 평소 지저분하였다는 비난이 돌았고, 당사자는 반발하는 상황. 그러다가 서캐는 뒷전이고 싸움 자체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는 난장판이 되어가는데 그 와중에 귀엽게 생긴 한 꼬맹이가 주근깨가 있는 다른 꼬맹이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보냈다.

 

수신자는 여럿에게 서캐를 옮긴 것으로 의심받는 녀석이었다. 엄마들의 싸움과는 무관하게 아이들은 서로에게 여전한 친구. 내용은 소박했다.

 

생일 축하해! 나는 네가 좋다. 그리고 네 서캐를 나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애들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 애들이니까 무책임하게 서캐 따위를 나누고도 좋다고 한다며 혀를 찰 수도 있다.

 

특별히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뒤덮은 이 비상한 시국(2020 02 24)에 애들 하는 짓이 철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애들이니까 친구를 서캐나 바이러스 보균자가 아니라 귀여운 내 친구로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카드를 본 엄마들이 서로 카드를 돌려보며 키득거리기 시작하였고, 서로 못 잡아먹어 부르르 떨던 이들은 가벼운 침묵으로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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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사목의 이상은 어쩌면 이 꼬맹이의 생일 카드에 다 담겨있다. 일 자체로만 보면 이주노동자 사목이란 이주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을 받아주고, 아픈 이의 치료를 돕고, 공장을 옮기고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일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의 싸움으로 수렴한다.

 

 '순종'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에, 그것도 못사는 나라에서 온 까무잡잡한 이들이기에 덜 받아도 되고, 구석에 처박혀도 어쩔 수 없다는, 지가 좋아서 온 것이라는 냉소, 더군다나 이들은 그냥 싫다는 목소리와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우린 단 하나의 무기를 든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선언. 복음적으로 말하자면 여기 친구가 있다는 기쁜 소식. 네가 가진 것, 좋고 싫은 모든 것을 나도 가지게 되어서 기쁘다는 아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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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내 일터인 김포 이웃살이, 이주민 노동자 지원센터는 적막하다. 120여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10개 반을 열어 매주 한국어를 가르치던 한국어 교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면서 거진 한 달 째 문을 닫았고, 마침 방학 중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토요일 꿈터는 언제 다시 열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보다 더 큰 적막은 두려움이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224일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며 일해 온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 단 한명의 바이러스 확진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디를 가든 마치 바이러스에 이미 오염된 이들처럼 불편하게 여겨진다. 월화수목금토, 때론 주일까지 공장에서 12시간 넘게 일하고, 결국 퇴근도 공장 내 기숙사로 하는 이들은 한국에 온 바로 그날부터 거의 자발적 격리 상태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바이러스로부터 가장 깨끗한 집단이다.

 

수백만 명의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과 해외를 다닐 때, 이들은 한국에 온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간 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위험한 집단이 되었다. 그리하여 요즘 이들은 쉬는 날도 움직이지 않는다. 공장에 꽁꽁 매여있다. 더군다나 불법체류자인 경우, 불법이란 용어 대신 우린 이를 미등록체류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더더군다나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 자신과 고국에 있는 가족의 삶 전체가 자신의 노동과 임금에 매달려 있어 조심스럽기 때문. 지역의 누구라도 한 명 바이러스에 걸리면 온 지역에서 불법에 대한 색출과 추방이 이어질 것이기에 이들은 두렵다. 이들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힘겨운 일을, 가장 기피하는 일을, 가장 적은 보상으로 일하고 있으나,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혀 우리 안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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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왕관이란 뜻이다. 바이러스에 왜 이런 산뜻한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서로 탐하여 움켜쥐려 하니 왕관 바이러스는 그토록 쉬이 옮겨가나 보다. 중국 우한이란 도시에서 왔으니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대구에서 많이 전파되었으니 대구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우한이나 대구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다. 바이러스 역시 다행히 듣는 귀가 없을 터이니 그를 뭐라 부르던 바이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갈 터.

 

어쩌다 보면 이주 노동자도 이 왕관 바이러스에 걸리지 말란 법이 없을 텐데, 나는 최근 몇 주 동안 이주 노동자 중에 단 한 명도-과정이 아니라 단 한 명도 한국 사람들에게서 병을 옮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어가 없는 채, 그저 바이러스에 옮게 될까 걱정할 뿐. 그게 누구이건 말이다.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태국인이든, 미얀마든병이 문제지 곁에 있는 그의 국적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친구들에게서는 종종 이런 안부의 인사를 들어야 했다. 괜찮으냐고, (밑도 끝도 없이) 조심하라는 말씀들. 가장 깨끗한 집단(격리수용상태가 그들의 한국에서의 삶이다!)을 위험한 집단(굳이 분류하자면)이 조심하자며 수군거리는 셈인데뭐 결과적으로야 이주노동자들에게야 나쁠 건 없지만, 웃기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사태다.

 

바이러스까지 굳이 서로 나눠가며 살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좋은 것과 싫은 것, 위험한 것과 익숙지 않은 것들을 피차 나눌 수밖에 없다. 그게 열린 사회의 운명이며 낯선 길, 순례의 길을 떠났던 예수님의 운명이었다. 우리가 병에 걸렸다면, 우린 어떤 친구를 곁에 두고 싶은가? 위험하니까 한국을 떠나겠다는 이주노동자가 전국에서 단 한 명도 없으리란 건 확실하다. 그들은 가난하고 그들에게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서 가난은 사람을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을 조금 더 사람 곁에 머물게 한다. 우리도 충분히 가난하여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그의 곁에 있기를. 있을 수밖에 없기를 기도한다. 친구가 되기를.

     

 

   이근상 신부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이웃살이 센터장

댓글목록 3

Claire님의 댓글

Claire 131.♡.105.107 2020.02.26 20:42

예수회인권연대님의 댓글

예수회인권연대 163.♡.183.94 2020.03.02 10:43

안녕하세요. 예수회 인권연대 김민 신부라고 합니다.
클레어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클레어님의 지지의 글을 이근상 신부님께 전달했습니다.
혹시 이근상 신부님과 소통을 원하시면 다음 이메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simonyi0731@gmail.com

심명희님의 댓글

심명희 59.♡.241.248 2020.11.16 20:35

맞는 말씀입니다.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 그분들에게 상처를 줍니다.인종차별 입니다.코로나 시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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