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전염되는 외로움

박상훈SJ 118.♡.21.101
2024.02.29 15:09 98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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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진화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종의 기원>과 더불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란 책도 썼다. 침팬지는 사람과 거의 같은 수준의 사회적 애착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슬픔과 기쁨을 사람과 비슷하게 표현한다고 한다. 깊은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은 때로 격렬한 몸의 제스처를 통해 상실과 애통함을 완화하는 위안을 얻는데, 사별한 침팬지도 그렇다. 전에 들어 본적도 없는 소리로 울부짖으며 철창에 몸을 부딪치거나 바닥 구석 짚더미 밑으로 머리를 찔러 넣고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신음하기도 한다.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이 자신은 알 수 없는 어떤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고조시키는데 따른 반응일 것이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다. 우리는 친밀감을 갈망하며,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다. 20세기 이전에는 전 세계 인구의 1%만이 혼자 살았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역사적으로 경쟁, 양극화, 개인주의가 심화될수록 사생활의 요구가 커졌고, 그 대가는 외로움이다. 지금 한국은 10명 가운데 3명이 일인 가구이다. 10명 중 6명이 고립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가족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도 혼자 살 수 있고, 혼자 살지 않아도 외로울 수 있지만, 외로움과 혼자 사는 것은 서로 묶여 있다. 이때 외로움은 말 그대로 집 없는상태가 된다.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은 집에 있는 것 같은 안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디나 집이 될 수 있지만, 살아가는 활력을 잃어버려 외로움을 겪는 이들이나 실제 집 없는 이들에게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외로움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다. 혼자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가차없는 힘 때문이다.

    

외로움은 공허한 감상이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깊은 불안과 근심의 상태이다. 그것은 확장되고 팽창한 슬픔이다. 외로움은 불안, 폭력, 트라우마, 범죄, 자살, 우울증, 정치적 무관심, 심지어 정치적 양극화 같은 수많은 문제의 배후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 일 모두가 외로움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새로운 사회 문제이다. 2018년 미국 보건당국은 외로움이 전염병이라는 선언을 했고, 영국은 외로움 담당장관을 임명했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역시 연관이 있다. 이 둘은 공통의 징후와 결과를 나누고 있다. 모두 사별, 노년기, 독거생활, 낮은 교육 수준, 저소득, 자녀 부재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취약하고 아픈 이들에게 두드러진다. 외로움이 이어져 만성적인 상태가 되면, 돈이 없어 비참한 생활이 악순환 되는 빈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외로움은 빈곤이기도 하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빈곤은 배제이다. 경제적인 궁핍일 뿐 아니라 사회, 정치, 심리, 영적인 결핍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가 부정된다는 지속적인 느낌이나 자신이 타인의 삶에서 소중함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의심이야말로 관계의 빈곤, 존재의 빈곤이다. 존재와 관계는 인간에게 모든 것이다. 외로움의 원인도 무척 복잡하고 다면적이어서, 이제 사회정책의 의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갈증에 관한 보편적 문제여서, 우리 누구라도 결부되어 있는 문제이다. 외로움은 우리가 증언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고통이자 극심한 가난이다. 그 아픔을 겪는 곳에 함께 하는 일이야말로 나를 변화시키는 관계의 시작이다. 귀를 열고 조심스럽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훨씬 넓어지고 유연하며 관대해질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의 말이다. “누군가 우리의 말을 신실하게 듣고,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일 때, 우리 안에 매우 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서서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긴장이 풀리며, 불안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우리도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경험이야말로 엄청난 창조의 힘입니다.”

 

 

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이번 칼럼은 가톨릭평화신문 '시사진단' 코너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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