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남자들도 요리를 하면 좋을 몇 가지 이유

김정대SJ 118.♡.14.56
2023.08.18 12:20 7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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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남성들을 위한 요리교실인 남자들의 부엌을 진행했다. 그러나 나는 음식을 어떻게 맛있게 만드는지를 알려주려고 요리교실을 운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리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알고 이를 이용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이 요리교실에는 구조가 있다. ‘요리를 배우고-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습을 하고-느낌을 성찰하고-경험들을 함께 나누고-새로운 요리 배우기라는 구조이다. 꿀잠에서 21조 세 팀을 모집해서 격주간 4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요리를 배우고 실습을 하고 느낌까지 잘 정리하여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이들 중 혼자 사는 70대 초반 참가자의 이야기는 너무 인상적이다. 그는 허리 통증으로 인하여 거동이 불편했다. 설상가상으로 한동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람들과 만남도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요리교실에 나오기 전 일 년 정도를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고 약을 복용하며,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혼자 지냈다. 이런 그에게 남자들의 부엌프로그램은 참가자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제공했다. 또 그는 숙제로 주변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그들로부터 지지받는 경험을 했다. 그는 배운 요리를 자신이 나가는 사무실의 좁은 주방에서 만들어 사무실 동료들과 아래층 지인을 초대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맛있다며 환하게 웃으며 그를 칭찬해주었다. 그들의 고마워하는 모습에 그는 모처럼 사회적 자존감도 사는 듯해서 참 좋았다고 한다. 그가 나눠준 자신의 내면에 관한 나눔은 있는 그대로 참가자들에게도 가닿아 감동을 주었다.

 

그런 그가 최근 자기 손녀의 생일상을 직접 차렸던 경험을 단톡방에 올렸다. 그는 중학교에 다니는 손녀의 생일상을 직접 차리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큰딸과 작은딸 내외와 손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좁은 공간이지만 작은딸이 접이식 간이식탁과 팔걸이 플라스틱 의자를 주문해 식탁을 꾸며주었다. 그리고 그는 남자들의 부엌에서 배운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샐러드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대접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음식이 가족들을 기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특히 손녀의 평가가 궁금했다. 손녀는 자신의 그릇에 담긴 파스타를 싹 비웠고 매우 맛있다고 평해주었다. 다른 가족들도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칭찬해주었다.

 

그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이 고마움의 감정은 매우 영적인 감정이다. 이런 고마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서로의 관계는 가까워진다. 그래서 오랜만에 손녀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사는 얘기와 서로의 건강을 위하는 얘기를 나누며 점심 식사 자리가 거의 저녁 무렵에 끝이 났다고 한다. 그날 작고 좁은 그의 공간은 이렇게 행복한 나눔과 웃음꽃이 피어나는 공간이 되었다. 그 나눔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가족들은 다음 가족 모임도 서로 음식을 조금씩 준비해서 아빠의 집에서 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의 성찰은 더 이어졌다. 그가 아이들을 키우던 때가 직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회사를 상대로 싸우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정 생계나 자녀 보육을 등한시했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날 때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던 아빠였고, 경찰들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 그가 마치 흉악한 범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부산을 떨었다. 아이들은 아빠로서 그의 존재감을 거부하고 싶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녀지간은 거리감이 생겼다. 그는 항상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다행히 가족관계는 시간이 지나며 차츰 응어리가 풀리긴 했다. 그런데 이번 손녀 생일상을 계기로 그는 부녀 사이의 마음의 응어리가 상당 부분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성찰을 나누면서 그들의 삶의 깊이를 전해 주었다. 그들은 남자들의 부엌'에서 배운 요리 실력으로 가족들과 나눔의 기회를 만들고, 친밀함을 더 깊게 했다. 관계는 정서인 교류, 즉 감정의 교류를 통해서 더 깊어진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강함과 같은 능력 때문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밀함은 자신의 취약함을 나눌 때 비로소 형성되고 깊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면, 또 사랑을 받고 싶다면 충분히 약해져야 한다. 이 역시 정서의 교류이다. 그래서 나는 남성들이 관계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예민하게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요리교실을 진행했다.

 

가족이라는 가치의 재발견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노동조합 활동', '사회정의', 또 그 정의를 위한 투신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족'이라는 가치와 관계성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가족이라는 가치와 관계성을 잊는 건 아닌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사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노동조합, 사회정의라는 가치는 가족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중요하고, 또 반대로 이런 가치가 올바로 존재해야 가족의 가치도 올바로 유지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아마도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가치와 노동조합사회정의라는 가치는 인간 존재의 조건에 관한 문제이기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적 긴장속에서 함께 유지해야 할 가치이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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