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일우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며

남궁영미RSCJ 163.♡.183.94
2019.11.28 12:42 8,145 0

본문

 

제목을 입력하세요 (25).jpg

   정일우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며

 

정일우 신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언제부터인가 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자신의 장례를 잔치처럼 지내달라고 하신 신부님 생전의 바람처럼 신부님의 장례는 잔치 같았습니다. 빈소에는 예수회 식구들뿐 아니라 신부님에게 영적 배움을 받은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함께 둘러앉아 추억을 나눴고, 천도빈(천주교도시빈민회) 식구들과 괴산 솔뫼농장 농부들도 빈소를 지키며 예수회 회원들과 함께 상주가 되었습니다. 장례 내내 우리는 울고 웃으며 또 따뜻한 마음과 위로, 감사를 나누며 신부님을 배웅해 드렸습니다. 참 따스한 시간이었습니다. 입관예절 땐 평소에 좋아하신 검정고무신을 신겨드렸습니다. 그리고 묘지 앞에서 복음자리 출신 꼭두쇠의 공연이 있었고, 신부님과의 오래된 비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도빈 회원 한 분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민중가요를 불러드렸습니다.

 

신부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를 드리러 온 많은 가난한 사람들, 스스럼없이 스스로 상주가 되어 문상을 받던 천도빈 식구들과 괴산 식구들, 신부님께 영적 도움을 받은 많은 분들의 현존이 신부님이 삶을 통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신부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IYvtur_hNofM_0SVUCYAVtO5GlTo.jpg

 

복음을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싶어 한 정 신부님은 1973년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가셨고 20여년 동안 빈민운동에 투신하셨습니다. 청계천,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철거민 집단 이주 마을로 복음자리, 한독주택, 목화마을을 건립하고, 목동과 상계동 등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운동을 함께 하셨습니다. 정 신부님은 천주교도시빈민회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를 서울대교구 교구장 자문기구로 설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민중주거쟁취 아시아연합 설립에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일우 신부님은 419혁명, 516군사정변, 610민주항쟁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 현대사를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서 바라보며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셨는데, 그분은 가난한 철거민들과 함께 복음자리 마을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찍었고, 어둡던 80년대 늦은 밤, 충혈된 눈으로 목동 철거지역에서 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셨습니다. 상계동 철거민의 아침 밥상을 지키기 위해 블록담장을 내리치던 포크레인 삽날에 매달려 몸부림치셨던 신부님은 1994년 오랜 도시빈민운동과 예수회 부지구장 소임을 내려놓고 솔뫼농장(유기농 영농협동조합)이 있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 내려가 10년 가까운 세월을 농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와 우정을 나누셨습니다. 그분은 예수회 후배들과 빈민들,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 농민들의 친구요, 아버지요, 스승이셨습니다.

 

정일우 신부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졌는가?

 

먼저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신부님이 교회와 사회에서 던진 화두라는 생각을 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화와 성화 봉송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달동네를 강제철거하기 시작했는데, 올림픽을 취재하러 온 외신 카메라에 행여 빈민가의 남루한 모습이 포착될까, 전두환 정권이 서울시내 빈민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철거작업을 서두른 결과였습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은 전국이 세계인의 축제로 들썩일 때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을 청하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삶의 공간에서 내쫓고 '군더더기 인생'이나 '기생 인생' 따위로 배제시킨 참담한 현실이 상계동 173번지 판자촌을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습니다.

 

88올림픽을 '민족의 영광' '인류의 축제'라 부르며 올림픽의 환희와 열광에 들떠 있었을 때 배제되고 잊혀진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그들의 존엄함을 일깨우며 그들의 인권과 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을 하고, 교회와 세상에 알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활동을 이끄신 분이 정일우 신부님이셨습니다. 모두 다 성공과 화려함, 보여지는 것과 포장 되어진 것, 화사한 빛과 요란한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 신부님은 어둡고, 초라하고, 냄새 나는 낮은 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함 속에 희망이 있음을 힘있게 선포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를 더 앞서 사시며 중요한 가치, 우리의 인간됨과 그 어떤 상황 안에서 훼손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함을 지켜내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정 신부님의 삶 자체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교회와 사회에 던진 화두였습니다.

 

정 신부님은 종종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가난하지 않으면, 교회는 이 세상의 부정, 부패, 불의에 참여하여 공범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가난하지 않으면, 교회는 이 세상의 힘을 빌어서 이 세상의 이치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교회가 가난하지 않을 때 괴회가 됩니다. 아주 이상한 모임이고,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모임이 됩니다. 우리 대장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을 모시고 모인 모임인데, 예수님이 핵심으로 가르친 가난을 무시해 버리고서는 괴회가 되고 맙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구할 것"이라며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라 말씀하신 신부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하셨습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전도, 포교 목적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국 가톨릭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정일우 신부님은 자신의 신념대로 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셨고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스스로 가난한 교회가 되셨습니다. 엘살바도로의 민중의 대변자 로메로 주교님의 여러분이 교회라는 말씀처럼요. 소수자의 편이 아닌 자본의 편에 서 있는 현대 교회에 신부님이 건넨 화두였습니다.

 

20191126202346_0db3aabb49ec5b6c1e2dbf5fb2a3b0bb_30u7.jpg

 

빈민들에게는 주거환경이 중요한데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정 신부님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놀면, 거기에 공동체가 생겨났고, 기존의 공동체는 더 튼실해졌습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던 신부님께서 유일하게 의도한 것은 사람들을 엮어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었고 정 신부님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정 신부님은 복음자리에서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가 함께 하는 공동체에 대한 큰 꿈을 가지셨는데 수도생활에 대한 새로운 양식으로 같이 모여 기도하고, 식별하는 공동체이자 피정하는 공동체 그리고 아무 경계 없이 돈부터 영혼까지 서로 나누는 고추장 비빔밥 같은 공동체가 되길 바라셨습니다. 공동체라는 것이 항상 아름답고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갈등과 싸움도 있고, 서로의 치부도 서로 잘 알고 있지만 서로 보듬고 가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신부님이 계신 곳엔 늘 사람들이 북적였고, 어느 틈엔지 모인 이들이 공동체가 되어갔습니다. “찐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말씀하신 정 신부님 바람처럼 서로 비비고 섞이는 가운데 막 헐뜯기도 하고 서로 칭찬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정 신부님이 그렇게나 좋아하시던 천도빈 공동체도, 솔뫼농장 공동체도 이런 찐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미 철거와 개발 등으로 마을환경과 주거 형태가 변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공동체들의 와해도 더 가속화 되었습니다. 가정 공동체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더 외롭고 고립되어가고 있으며, 개인주의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같이 사는 걸 어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이 꿈꾸셨던 찐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자 모험일 것입니다. 그래도 공동체는 교회와 한국 사회에 정 신부님이 던져 주신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미사가 형식화 되고 참 의미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 상계동 173번지 그 철거의 현장, 폐허의 공간에서 정 신부님이 철거민들과 함께 봉헌한 미사는 참된 미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이 미사는 신자와 비신자가 한데 어우러져 하소연하고, 위로 받는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희망을 발견하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미사에선 종종 성가 대신 개사한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고,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날 일어난 일들이나 체험한 일들에 대해 기도 안에서 하소연도 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고통을 나눴습니다. 정신부님은 자주 이게 참 미사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상계동에서 철거민들과의 미사를 통해 미사의 참 의미를 체험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일우 신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_signification

 

신부님은 먼저 기도하는 수도자였습니다. 신부님은 시대 변화의 한복판에서 아주 민감하게 자리를 지키며 항상 그 흐름을 읽으셨는데 특히 그 시대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그 가난한 사람들과 삶을 같이 하셨습니다. 정신부님은 활동과 현존 사이의 긴장(tension between being and doing)을 매우 긍정적인 긴장으로 살아내셨고, 당신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합해 가시면서 이 긴장이 우리 삶의 질과 수도 정신을 더 잘 살도록 돕는다는 것을 몸소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정 신부님 존재 자체는 우리에게 희망이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셨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유산을 남겨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잘 듣는 분이셨습니다. 나눔을 하고 있는 저 개인의 경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일우 신부님은 사람들의 말마디만 들으신 것이 아니라 말 너머의 그 마음까지도 섬세하게 들으신 분이셨습니다. 발가락으로 들으라는 당신 말씀처럼 온 몸으로 들으신 분이셨습니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 존재 그대로 존중하고 그 사람이 그 사람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었습니다. 이 경청과 존중의 태도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자 감사한 초대로 느껴집니다. 듣기보다 말하기에 더 익숙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존중하기보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가르치기에 더 급급한, 한 인간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수도자로서의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합니다.

 

신부님의 삶 전체를 통해 가난의 의미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오늘 신부님에 대한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향해 신부님은 마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라, 가난한 수도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보셨듯이 오늘날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세워진 수많은 건물들 사이에 냄새로 상징되는 그 낮은 삶의 자리, 척박한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 신부님이 활동 하셨던 그 시대와 같은 산동네, 달동네, 판자촌 등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가난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가난은 더 드러나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어가 쉬 발견되지 않지만 그래서 더 골이 깊어진 양극화로 복합적인 가난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더 섬세한 관심이 필요한 현실입니다.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내 안에 균열이 생기고,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두려움을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가난을 가져온 구조나 제도를 의식하고,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곳,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환경들에 대항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고, 그 질문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도록 추동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도 그들 덕분에 조금 더 가난한 수도자가 되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좋아하셨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던 정일우 신부님과 함께한 우리는 정 신부님의 삶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정 신부님은 빛과 같은 존재로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힘 있게 드러내 보이신 참 자유인이셨습니다.”

 

저는 정일우 신부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삶을 미카서 68절의 말씀으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정의롭게 행하는 것, 따뜻하게 사랑하는 것, 겸손되이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정일우 신부님의 삶이었습니다. 이제 정 신부님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우리는 신부님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과 배움을 우리 삶 안에 실천하며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남궁영미 수녀 (성심수녀회)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