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속도(速度) 아닌 “만도(慢度)”

김민회SJ 121.♡.235.108
2021.12.20 15:59 2,5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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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in non-eXpress?

2004년 4월 1일 KTX(Korea Train eXpress, 한국고속철도)가 개통한 이후 얼마 안 지나서 안정성 자체가 크게 문제로 부각되던 시점이 있었다. 오죽하면 KTX가 달리기 위한 모든 제반 공사는 단군 이후 최대의 부실 공사가 될 수 있다면서 수많은 터널들이 과연 안전한 것인지 여러 의견들이 설왕설래했다. 완공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얼마나 공사기간을 단축시켰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실제로 이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KTX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보통 열차보다 훨씬 빠른 KTX가 터널을 통과할때, 터널의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이런저런 불안한 요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KTX의 빠른 속도 덕에 우리는 더 많은 곳을 편하게 다녀올 수 있고, 분명히 그 혜택을 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KTX의 안정성을 탓하기보다는, 속도에 대하여, 즉, 적당한 속도를 지킨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KTX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느림의 아름다움

하루 중 햇빛이 가장 강렬한 때는 12시 정오이다. 그러나 그때가 가장 덥지는 않다. 오히려 오후 2-3시 때가 제일 덥다. 해가 가장 오래 떠 있고 낮이 제일 길 때는 6월 22일 하지이다. 그러나 가장 더울 때는 6월 말이 아니라 7월 말 혹은 8월 초 중순이다. 강렬한 햇빛에도 불구하고 온도가 올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것을 지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요즘에는 빠른 속도가 매우 중요하니, 지체의 미학, 혹은 느림의 미학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 버렸다.

90년대 중반 호출기, 일명 삐삐가 세상에 나왔다. 삐삐라는 족쇄를 자랑스럽게 지니고 다니던 모든 사람들은 삐삐에 찍힌 번호를 보고, 공중전화기 박스로 달려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기 위해 긴 줄을 서고 기다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은 이것도 삐삐가 아예 없던 시절보다는 세상이 더 편해지고 더 빨라지려는 하나의 징조였다. 전화기를 이용한 모뎀을 통해 인터넷을 하는 것도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는 또 다른 징조였다. 지금은 5G 초고속 인터넷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른 속도의 인터넷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우리는 새마을호 혹은 무궁화호를 타고 좀 더 여유 있고 느긋하게 부산과 서울을 오고 가기는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요즘 우리는 속도를 즐기는 것에 꽤 익숙하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배달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배달의민족 앱(App)이 등장하는가 하면,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배달(倍達)이 배송의 의미를 지닌 배달(配達)로 사용이 되어서 사실 좀 씁쓸하다. 배달원들끼리는 속도의 전쟁을 펼치고 있고, 고객들 역시 편하게 그리고 빨리 서비스를 받기 위해 배달 시스템 앱을 이용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편리함과 신속함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배달 플랫폼을 운영하는 주체는 이익을 극대화하고, 음식을 팔기 위한 식당 주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이 플랫폼을 이용해야 하고, 배달을 하려는 배달원들은 오토바이 등을 타고 길거리를 누비며 매연을 뿜어대고, 고객인 우리들은 편리함과 신속함을 포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맞바꾸고 있다.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만 느림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원하는 물건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과 정성 그리고 시간을 들여서 애써 그곳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오토바이 매연 혹은 소음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배달을 통해 생성되는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며, 결국은 생태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어지러운 지구를 만도(慢度)로 위로하기

사실 우리는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고 있는 지구 위에서 살고 있다. 지구가 하루에 자전하는 속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1,670km/h로 엄청난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아다니는 속도는 더욱 놀라운데, 공전하는 거리는 9억 4천만 km/h이고 지구가 공전하는 속도는 107,000km/h로 계산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태양 자체도 우리 은하 중심을 250km/s 돌고 있으니  사실 지구의 크기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작은 존재이기에 자전과 공전 속도를 못 느낄 뿐이다  우리 지구는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우주 안에서 속도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 부산과 서울 사이를 11분 만에 주파하는 지구의 자전 속도를 보건대, 새마을호와 KTX의 차이는 그렇게 대단한 차이는 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천천히 이동을 할 때 우리 주변도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적당한 속도를 지니고자 하면 가끔은 브레이크도 사용하면서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빠르게 앞으로 내달리기만 할 것이다. 앞도 보고 뒤로 옆도 보려면 적당한 속도와 지체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빨리 팽창하고 있는 우주와 그 우주 안에서 꽤나 정신없이 움직이며 허덕이는 지구를 위해서, 우리는 빠름과 느림의 공존, 서두름과 여유를 함께 수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김민회 신부 (서강대학교 교목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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