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생명의 길을 내어주기

김민회SJ 121.♡.116.95
2021.10.14 16:02 2,785 0

본문

 

사본 -제목을 입력하세요.png

 

자연의 아름다운 회복

어렸을 때 44번 국도를 이용해서 한계령을 넘어가거나 혹은 50번 옛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대관령을 넘어갈 때,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동해안쪽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과 가파른 경사는 놀라운 풍경을 자아내면서도 다소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태백산맥을 힘겹게 넘어야 아름다운 동해안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양양에서 서울로 오는데, 지난 2017년에 전구간이 개통된 60번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아닌 44번 국도를 이용해 한계령을 넘어왔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할 때에는 터널을 지나가기에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을 아주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5월 초였는데 아직도 한계령 휴게소 근처에는 눈이 쌓여 있어서 더더욱 이색적인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길을 운전하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예전에는 보지 못 했던 생경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야생동물이 많이 출현해서 이 국도를 가로지르는 경우가 많으니 운전할 때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예전에는 많은 차들이 한계령을 넘기 위해 이 44번 국도를 사용해야만 했으므로 야생동물들은 이동하고 싶어도 차들 때문에 이 길을 가로 질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60번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선호해서 예전보다는 한계령을 넘어가는 차들 숫자가 많이 줄었고, 그래서 야생동물들이 44번 국도를 많이 가로질러 지나다니는 모양이다. 게다가 이 국도에 설치된 생태통로를 이용하는 야생동물들, 즉 반달가슴곰, 산양, 수달, , 담비 등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하니, 자연이 그나마 복원되려는 몸짓에 감동과 무한한 경외심이 올라올 뿐이다.

 

곰배령 풍뎅이의 눈물

 

photo_2021-10-14_15-50-18.jpg

동물들은 서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짝짓기를 해야 우생학적으로 종()의 열성이 몰리지 않고 멸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차도는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막아서 일부 종들의 고립을 야기하므로, “생태통로는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근친상간을 통해 열성 유전병이 생긴다는 설이 있는 것을 보면, 동물들도 다양한 지역에 살고 있는 동물들과 교배를 해야 생존 확률을 올릴 수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종의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작은 한국 땅에서 동물이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비단 땅뿐만이 아니다. 새로 생기는 전용차로가 인간의 주거지 근처를 많이 지나기에 투명한 방음벽을 설치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방음벽 주변이 새들의 무덤으로 변해 버렸다. 새들이 날아다니다가 방음벽을 보지 못 하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생태적인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져서, 방음벽에 새의 모양 혹은 점 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 넣어서 새들의 충돌을 막아 주려고 시도한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 주변에도 참으로 많은 새들의 시체가 쌓여 있다. 이 날개 끝부분의 속도는 시속 250km에서 300km에 다다르는데, 풍력 발전기의 날개에 의해 희생되는 새들이 많다고 한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길에 장애물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냥 좋은 조건을 갖고 있지는 않는 셈이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점봉산 자락에 곰배령이 위치하고 있다. 해발고도가 1164m인 곰배령은 예약제로 제한된 인원들에게 탐방로를 개방하고 있어 인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비가 온 다음 날 곰배령을 갔었는데, 이 등산로에 너무나 많은 풍뎅이가 평화롭게 자신의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햇빛에 반사되는 초록 빛깔의 풍뎅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고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모습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하게 된다. 많은 수의 풍뎅이들이 등산로에 나와 날개를 말리고 있는데 등산객들에 의하여 밟히고 으깨져서 이곳저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곰배령에 이르는 등산로는 그나마 생태탐방로로 지정되어서 자연이 잘 보호되는 편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막아버린 동물의 길은 의도하지 않은 폭력에 신음하며 아파하고 있다. 아무리 등산객 수를 조절을 해도 등산객들이 다니는 이상 이 등산로를 자연에 돌려주기는 매우 어려운 듯하다.

 

photo_2021-10-08_17-41-25.jpg

    

생명의 길을 내어 주기

구약 성경의 탈출기에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시나이 반도의 광야를 지나 홍해 바다의 길을 가로질러 가는 내용이 나온다. 이 길은 사실 바닷속에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홍해 바다의 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의 길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베푸신 기적에 의해 바닷물과 바닷속에 사는 여러 생명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이 바닷길을 통해 홍해를 가로 질러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길은 많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어 길을 내니 못 가는 곳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다녀온 44번 국도에서 약간의 희망을 보았다. 여러 야생동물들이 이 길을 가로질러 다닌다니 생태적 위로가 선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곰배령의 등산로가 생태탐방로라 할지라도 인간이 사용하는 길이어서, 이것을 잘 모르고 자신의 날개를 말리는 풍뎅이들은 봉변을 당하고 있으니 이들에게는 아직 희망이 요원하다. 홍해 바닷속에 있던 생명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을 내어 주듯이, 우리도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동물들에게 길을 내어 주어야 한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함께 공유할 것이며 어떻게 생명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김민회 신부 (서강대학교 교목교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