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세월호와 성스러움

박상훈SJ 121.♡.116.95
2021.04.20 18:24 3,08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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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후 찾아간 진도 앞바다 푸른빛은 시리고 아팠다. 어둠이 빛을 몰아 낸 바다는 괴로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곧 끝날 줄 알았다. 무고한 죽음은 위로와 슬픔 속에서 충분히 기억되고, 살아있는 자들의 활로가 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7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세월호와 함께 여전히 바다를 떠다니고 있다. 2014416일 오전 850분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전복되기 시작해 이틀 뒤 완전히 침몰했다. 시신을 찾지 못한 5명을 포함해 304명이 사망했다. 선체가 인양되기 전 3년 동안 유가족들과 생존자들, 시민들은 눈물 속에서 이 참사의 전모를 알아내는 것이 진짜 추모이며 생명의 기억이라는 것을 알고, 뛰어다니며 싸우고 울부짖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권력의 체면치레로 맞바꾸려 기를 썼고, 조롱과 냉소로 사람의 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듯 한 행세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저질렀다. 박근혜가 파면되자마자, 3일 뒤인 2017325일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지금은 촛불정부라고 말하는 게 아무런 뜻도 지니지 못하는, 허망한 지경이 되었지만, 어떻든 시민이 세운 정부에서도 세월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다만 참사의 비극을 거쳐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경험한 유가족들, 또 유족들과 함께 한 시민들은 연대와 각오로 매일매일 새로운 싸움을 준비할 뿐이었다. 불의와 권력은 실재를 응시하기를 두려워한다. 적어도 원하지 않는다.

 

세월호는 무엇보다 세상의 죄악을 드러냈다. 이 나라에는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죄악이 아니라, 거의 영속적인 성격의 죄악이 스며들어 있다. 이 비극의 깊이와 넓이 때문에, 악행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죄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는 무엇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하느님을 살해하고,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죽이는 것이다. 희생자들은 하느님의 몸이 찢겨 갈라진 것이고, 유가족은 그 폭력과 고통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우는 이들이다. 십자가에 달린 백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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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백성들은 역사 안에서 세상의 죄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야훼의 종들의 계승자들이다. 십자가는 적어도 세 가지를 뜻한다: 단지 상처만 받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 것이다. 둘째,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살해된 것이다. 셋째, 그 죽음이 가치 있는지 증명하라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받는 죽음이다. 이것이 예수의 죽음은 물론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김용균,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야비한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과 같은 희생자들의 죽음에서 보는 명백한 현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월호는 모든 것을 바꾸는 은총의 사건이기도 하다. 세월호는 우리의 모든 타락, 위선, 나태함, 독선, 부정의를 끌어내 하늘 아래 펼쳐 보였다. 고통과 희생은 언제나 있었지만, 자신을 세계의 표준으로 여기는 권력과 물신의 도착증은 언제나 그것을 숨기려 한다. 세월호 참사만큼, 이 은폐와 드러남(계시)이 극적으로 나타난 사건도 없다. 은폐하려는 이들은 사실은 하느님과 충돌한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현실에 다가선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다르게 본다. 삶과 생명은 성스러운 것이며 이를 옹호하고 지키는 것 또한 성스러움이다.

 

요한복음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충만한 삶의 조건으로 생명의 존속을 들었다(6.1-15). 삶을 생명의 존속과 지속의 투쟁으로 보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아 있도록 먹이시며 충만한 삶을 준비하게 하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생명정치를 위한 참여와 헌신으로 경험한다면,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이 그랬듯이 세월호가 바로 성스러움을 찾는 장소가 된다. 성스러움은 사적이고 내밀한 신심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정치가 움직이는 곳이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하느님의 통치가 그런 것이다.

 

이산하 시인의 시 <유언>에 기대어, 침묵을 깨부순 증인들의 마지막 말을 들어본다. 하느님의 의지에 부응하기 전까지 우리는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전까지 우리는 침묵 속에 있어야 한다. 일 년 후에는 다만, 우리 스스로 증인이 되어 있기를 희망한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우리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박지영 승무원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

--남윤철 단원고 교사

 

내 구명조끼 니가 입어.”

--정차웅 단원고 학생

 

지금 빨리 아이들 구하러 가야 되니

길게 통화 못해. 끊어.”

--양대홍 사무장

 

걱정하지 마.

너네들 먼저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최혜정 단원고 교사

 

세월호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시 청탁을 받았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이 이상의 시를 어떻게 쓰겠는가.

 

 

 

 

박상훈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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