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후쿠시마 10년,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해야 하나

조현철SJ 121.♡.116.95
2021.03.31 14:45 3,6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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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후쿠시마 10은 중대 핵사고는 기다리는 것밖에 대책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피해가 커도 재난 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진행하면 대개는 더딜지라도 차츰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한다. ‘후쿠시마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강력한 방사성 물질로 현장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원격조종 등 극히 제한된 수준의 조치밖에 할 수 없으니 사고 수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당시에 녹아내린 핵연료 덩어리(debris)’들은 아직도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역 주민들도 많다. 10년이 지났어도 사고 현장에 갈 수도, 볼 수도 없는 핵사고는 통상적인 재해와 전혀 다른 기괴한 사고다. 게다가 핵사고는 지역적 문제만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지금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는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염수 방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없다.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후쿠시마 10에서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변했을까? 2017년 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탈핵 행보는 처음부터 모호하고 수상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었다는 이유로 공론화를 거쳐 건설을 재개했다. 얼마 전에는 신한울 3·4호기의 공사계획 인가기간을 2023년까지 3년 연장하여 사업이 무산되지 않도록 했다. 정부의 신규 핵발전소 백지화 원칙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정이다. 탈핵 정부는 해외 핵발전소 건설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탈탄소를 선언하고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투자하는 것과 닮은꼴이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을 제대로 수립한다며 재검토위원회를 만들어 공론화를 했지만, 공론화는 위원장이 중도 사퇴를 하는 파행으로 일관했다. 공론화는 결국 월성 핵발전소의 임시저장소(맥스터) 증설을 위한 절차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소형 원자로 연구개발, 핵융합 연구 등 핵 관련 연구 사업 지원도 계속해왔다. 그래도 탈핵 정부랍시고 핵산업계의 집요한 공격은 계속된다. 내주면서 얻어맞는 기묘한 형세다.

 

안타깝게도 후쿠시마를 겪고도 우리가 배운 것은 거의 없다. ‘후쿠시마 10은 기억과 변화보다 망각과 적응의 시간이었다. 기후위기가 화두로 떠오르자 핵산업계는 핵발전에 탄소배출이 없다는 논리로 탈 탈핵을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재난 자본주의행보를 보인다. 핵발전도 우라늄 채굴부터 폐로까지 발전 주기 전체를 놓고 보면 탄소가 배출된다. 물론 석탄발전보다 탄소배출이 적지만, 그것만으로 핵발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핵사고나 핵폐기물로 보나,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해수 온도 상승을 돕는 온배수 배출로 보나, 핵발전은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에너지가 될 수 없다.

 

안전과 위험 문제가 나오면 핵발전 찬성론자들은 한국의 핵발전소에서는 후쿠시마급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안전을 볼모로 한 강변일 뿐이다. 안전한 핵발전은 말 자체가 모순 어법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만드는 모든 기계와 설비에는 사고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설계, 시공, 가동 등 모든 단계에서 고장과 실수로 사고가 날 수 있는 의미에서 사고는 정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와 설비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 힘으로 수습할 수 있어야 한다. ‘후쿠시마는 핵발전소가 이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설비임을 입증했다. 지난 213일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10년 전의 쓰나미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핵발전소와 같이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된 대규모 설비는 고도의 복잡성과 연계성 자체에 사고의 씨앗이 있다. 이런 이유로 대형 설비의 사고 발생은 더욱정상이다. 특히 고도의 복잡성과 연계성은 스리마일 섬체르노빌핵발전소 사고에서 보듯이 사소한 고장과 실수가 엄청난 재난을 일으키는 나비효과의 통로가 된다. 사고 방지를 위해 부가한 안전장치는 설비 전체의 복잡성과 연계성을 증가시켜 오히려 사고의 가능성을 높인다. 제대로 된 사고 방지책은 설비의 가동 중단뿐이다. 핵발전소도 여기에 해당한다.

 

사고 없이 정상 가동한다고 해도, 고준위핵폐기물을 배출한다는 의미에서 핵발전소는 절대 안전하지 않다. 핵폐기물은 최소 10만 년을 완벽하게 보관해야 하는 고도로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다. ‘10만 년은 인간이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이고, ‘완벽은 불완전한 인간 실존을 초월하는 범주다. 한마디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요구다. 안전한 핵발전소는 없다.

 

위기를 겪고 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기 마련이며 결코 똑같을 수없다(프란치스코,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17). 코로나19 재난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이 재앙을 불러들였던 이전의 길을 계속 고집할 것인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야생동물 서식처 파괴를 비롯한 생태계 훼손의 주범으로 꼽히는 성장지상주의 경제가 바이러스 감염병 창궐의 근원으로 지목되지만,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택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지만, 우리는 핵발전의 길을 고집했다. 핵발전 찬성론자들은 겸손이 아니라 기술로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결과는 25년 뒤의 후쿠시마 핵사고였다. 상황은 나빠졌다. ‘후쿠시마 10’, 우리는 어떻게 해왔고 어디에 있나? 적어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핵발전과 결별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변하지 못하게 붙드는가? 우리는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외길을 걸어왔다. 이 길의 유일한 법칙은 자본의 논리이고, 자본은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 외에는 맹목적이다. 눈앞에 이익이 있는 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 핵발전 문제를 맡기면 탈핵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적절하게 보호하거나 증진시킬 수 없는 재화이며, “이윤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틀 안에는미래 세대를 포함한 우리의 온전한 삶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들어설 틈이 없다(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190) 생명과 안전은 시장 경제가 아니라 공동선 증진을 사명으로 하는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거나, 경제가 효율 중심의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에 종속되지말아야 하는 까닭이다(189).

 

후쿠시마 10은 핵발전소 사고 앞에서 정부가 얼마나 무력하고 무책임한지 잘 보여주었다. 정치 권력인 정부와 경제 권력인 기업 자본이 스스로 돈이 되는 핵발전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시민이 요구해야 한다. 재난의 때, 우리가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이었나? 돈과 성장과 풍요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과 평화를 원했다. 바로 그것을 지금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기억이 중요하다. ‘그때를 기억해야만 지금우리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후쿠시마 10의 기억은 생명과 평화의 세상으로 나가는 탈핵의 발걸음을 격려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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