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얀마 청년들에게 듣는 미얀마 상황과 시민들의 희망

정다빈 121.♡.116.95
2021.03.04 22:46 1,1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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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미얀마청년연대 헤이 만 흐닌’(왼쪽), ‘웨 노에 흐닌 쏘’(오른쪽) 인터뷰-

 

202121,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시민들은 즉각 저항에 나섰다. 군부는 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고, 34일 현재 쿠데타에 맞서는 시위에서 사망한 이는 50명을 넘어섰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청년 헤이 만 흐닌(Hay Man Hnin)씨와 웨 노에 흐닌 쏘(Wai Nwe Hnin Soe, 한국이름 강선우’)씨는 지난 22일 모여 재한 미얀마 청년연대를 결성했다. 고국을 떠나 유학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224일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사무실에서 한국 시민들의 연대를 청해온 두 청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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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에서 아동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헤이 만 흐닌(이하 헤이 만)’씨는 2018년 하반기에 한국에 왔다. 군부 쿠데타 소식을 들은 헤이 만씨의 마음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미얀마의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없었고, 인터넷이 차단되어버린 미얀마에서 오는 소식을 기다리느라 항상 핸드폰을 확인했다. 헤이 만씨 세대에게 군부의 폭거는 어른들에게 말로만 듣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미디어를 통해 보는 일이 되었다.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미얀마에서 다수에 해당하는 버마족 출신인 헤이 만씨는 자신을 얼마 전까지도 인권이라는 것을 이해 못했고, 눈도 귀도 막힌 그런 사람이었다고 소개한다. 한국에 오고 한국 친구가 로힝야족의 인권 이야기를 할 때 이해할 수 없었다. “로힝야는 미얀마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 미얀마에 와서 자기 땅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말한 자신이 부끄럽다. 이번 쿠데타를 보며 군부의 탄압이 얼마나 가혹한지,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부의 잔인함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국에서 보고 듣는 쿠데타는 군부독재는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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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웨 노에 흐닌 쏘(이하 웨 노에)씨는 미얀마 청년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동안 탄압해온 소수민족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은 고통 속에 타인을 향한 이해를 넓히고, 인권의 소중함과 연대의 의미를 배우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지만, 다수인 버마족 중심으로 많은 일이 이루어지는 미얀마에서 민족 갈등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군부 독재 앞에서는 버마족도 샨족도 카렌족도 로힝야족도 모두 같은 의견이다. 쿠데타를 반대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에는 모든 민족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군부 독재의 역사는 1962년으로 거슬러 간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내 모든 권한을 장악해 왔다. 198888일 일어난 '8888 항쟁' 등 군부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군부는 매번 무자비하게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탄압했다. 2010년 군부는 문민정부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실상은 그저 군부가 옷을 바꿔 입은 것뿐이었다. 물론 그 전에 비하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유가 주어졌다. 2015년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찌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NLD)이 승리하고, 수 찌 여사가 국가 고문이 되었다. 민족민주연맹 또한 여러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개헌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군부에 실망한 미얀마 시민들은 202011월 열린 총선에서도 민족민주연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웨 노에씨는 이번 쿠데타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한다. 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10년 간 약간의 자유를 맛보았지만 그 자유는 군부가 만들고 조정하는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웨 노에씨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과 총리에게 군부에 명령할 권한이 없으며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 의석 25%를 군부가 임명하도록 하는 미얀마의 헌법이다. 미얀마 군부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도전 받을 때마다 쿠데타로 정치권을 위협하며 사실상 군부독재 체제를 끊임없이 유지해왔다. 웨 노에씨는 그래서 민족민주연맹 또한 군부의 체스판에 놓인 체스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미얀마 내에서는 시위를 하면서 여러 요구가 있어요. 첫 번째가 지도자를 석방하라 그런 것이죠. 그런데 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 현행 헌법 폐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헌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쿠데타는 반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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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자유와 함께 쿠데타의 조짐은 있었다. 20171월 민족민주연맹의 법률고문 코 니 변호사가 양곤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했다. 사람들이 공항을 이용하는 백주대낮에 벌어진 일이었다. 8888 혁명의 주역이었던 지금의 4,50대에게 이런 일은 깊은 트라우마를 상기한다. 1988, 군부 독재에 대항한 시위를 군부는 무차별 총격으로 진압했고 미얀마 시민 3,000여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1만여 명이 실종됐다. 이른바 ‘88세대가 이번 민주화 시위의 초기에 적극적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미얀마 군부가 시민들에게 어떤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았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는 다르다. 제한적이지만 이전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자유 속에 자란 이들은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Z세대는 가장 먼저 거리에 나섰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비롯한 미얀마 사회의 모든 것을 장악한 군부에 비해 이들이 가진 것은 오직 분노한 시민들의 힘과 목소리뿐이다. 그러나 1988년과는 달리 2021년의 청년들은 소셜 미디어라는 채널을 가지고 있다. 청년들은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상황을 알리고, 특히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앞장서자 88세대를 비롯한 어른들도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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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는 거리의 연대를 넘어 미얀마 군재벌이 운영하는 회사와 제품을 정리해 보이콧 리스트를 만들고, 전파한다. 국가의 배신자인 군부가 관여된 기업의 제품은 이용하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헤이 만씨는 “88년 당시에도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Movement) 운동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일주일도 지속되지 못했으나 지금은 한달째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웨 노에씨 역시 이번 시민불복종 운동에는 공무원, 의사, 교사, 엔지니어 등 국가 운영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양한 계층이 참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미얀마청년연대를 조직하고 한국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하는 두 사람 역시 청년이다. 두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27일에는 서울 시내 주요 거점에서 동시 다발 기자회견을 열었고, 21일에는 아시아 8개 나라에서 온 청년들과 연대해 쿠데타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도록 각 나라 정부를 압박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25일에는 조계종 스님들과 함께 미얀마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했다. 웨이 난 씨는 미얀마에도 가톨릭 신자들이 있고, 가톨릭 지도자들이 저항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도 성명서 발표나 기도회 개최 등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함께해줄 것을 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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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이번 사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번 투쟁은 다를 것이라고 희망을 말한다. 예전과는 달리 젊은이들이 다양한 수단으로 저항에 앞장서고 있으며, 민주화를 지지하는 국제 사회의 연대가 있고, 소수민족, 공무원, 국가 지도층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 노에씨는 미얀마 청년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희망으로 싸우고,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피의 일요일, 피의 수요일... 목숨을 건 저항이 이어지고 시민들의 피가 희생되고 있다. “군부에 대항하는 시민의 힘은 오직 연대 뿐이라는 미얀마의 청년들은 앞으로도 미얀마 현지 상황을 알리고, 모금을 통해 저항하는 미얀마의 시민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두 청년은 군부 쿠데타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그리고 미얀마의 시민들이 더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로 설 수 있는 날까지 계속 배우고 행동하겠다고 한다.

 

 

다음 주부터 미얀마의 어제, 오늘, 미래를 주제로 웨 노에 흐닌 쏘 (강선우) 님의 연재가 이어집니다.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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