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구원은 어떻게 오는가

조현철SJ 121.♡.116.95
2021.03.03 15:25 3,97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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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잠잠해서 피해가 크지 않은 줄 알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올겨울도 조류 인플루엔자로 가금류 2,540만 마리가 예방적 살처분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도 잠잠한 게 코로나 탓만일까? 아니면 이미 일상이 되어서일까? 그렇다면 이 끔찍한 일상을 무심히 여기는 우리는 과연 멀쩡할까? 이제 우리는 가축을 고기로 접하지 동물로 만나지 않는다. 가축을 고기로 만드는 과정을 종종 보던 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터가 상품으로 진열된 고기만 보게 되었다. 고기는 가축을 키워 얻는 게 아니라 돈으로 사는 제품이 되었다. 편리해졌지만, 그 고기가 한때는 우리 같은 생명이었음을 알기 어려워졌다. 나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이 구매의 행위, 돈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생명의 가치도 암묵적으로 돈으로 계산된다. 가치는 화폐 가치를 뜻하게 되었다. ‘예방적살처분은 대부분 생매장이고, 생매장은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품의 재료에 생긴 문제의 확산을 원천 봉쇄하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처방으로 묵인된다.

 

어릴 때, 길에서 파는 병아리가 너무 예뻐서 집에 사 온 적이 있다. 식구들 먹이려고 닭을 쳐본 적이 있던 엄마는 그런 병아리는 얼마 못 산다고 하시면서도 그 병아리를 정성껏 키우셨다. 엄마의 정성으로 병아리는 무럭무럭 자라 중닭이 되어 좁은 시멘트 마당을 푸드덕거리며 날 듯이 뛰어다녔다. 병아리가 하루가 다르게 닭으로 변하는 건 신비로운 일이었다. 닭이 좁은 집에서 키우기 힘들 정도로 커졌을 즈음,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닭백숙이 상에 놓여있었다. 처음엔 울었고 다음엔 먹었고 나중엔 맛있었다. 닭은 아버지가 집에서 잡으셨다. 가축을 정성으로 키우고, 그렇게 키운 가축을 직접 잡아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마련하면 생명이 그렇게 쉽게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명이 무엇인지 몸으로안다. 당시에 도둑고양이라며 구박받던 길고양이가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는 언제나 무언가를 먹여서 보내셨다. 갓 태어나 우리 집에 온 강아지 쮸리14년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다 죽어서 뒷동산에 묻혔다.

 

먹으려고 기르는 가축이지만 살아 있을 때는 동물의 본성에 따라 충분히 움직이며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에서는 태어나자마자 고기 생산에 최적화된 공정에 투입되어 상품이 된다. 생명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육류 소비를 감당하려면 대안이 없다며 공장식 축산은 요지부동이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인과관계가 뒤바뀌었다. 육류 소비가 너무 많아 공장식 축산이 생긴 게 아니라 공장식 축산으로 육류 소비가 폭증한 것이다. 공장식 축산의 목표는 수요의 충족이 아닌 확대이며 수익의 최대화다. 이런 세상에서도 사람만은 존중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하거나 위선이다. 빈발하는 아동과 노인 학대,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일하러 나갔다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과 살처분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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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너도나도 에너지전환을 말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기초지자체, 국회, 정부 모두 기후위기를 선언했지만, 위기에 걸맞은 비상행동의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문제가 우리의 삶 자체에서 생겼는데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고 원인인 은 그대로 두려고 한다. 정부가 내놓은 그린 뉴딜도 다르지 않다. 현란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생명까지 갉아먹는 공멸의 삶을 다른 생명도 존중하는 공존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술은 이 전환을 현실화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공장식 축산은 삶의 전환 없이는 문제 해결도 없다고 경고한다. 설사 공장식 축산 시설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전부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 해도, 육류 소비를 대폭 줄이는 삶의 전환이 없으면 메탄가스 배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공장식 축산이 설 자리는 없다. 2018년 기준, 가축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15% 정도를 차지한다. 메탄가스의 지구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8배 정도로 강력하다. 유전자 변형 곡물 재배와 함께 공장식 축산은 대규모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는 아마존 같은 열대 우림 파괴의 주범이다. 기후위기는 대규모 탄소배출에 의존하는 삶과 결별할 것을 요구한다. 기술은 이 결별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삶의 전환 없이는 구원도 없다. 성경은 삶의 전환을 메타노이아(회개)’라 부른다. 회개는 옛 삶에서 시대의 징표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으로 돌아섬이다. 매년 봄 교회는 신자의 머리에 를 얹으며 회개의 때, ‘사순 시기를 지낸다. 살처분이 일상화되고 기후가 재난인 시대, 어떤 삶으로 돌아서야 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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