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모든 형제들’ TMI] 서론

김민SJ 121.♡.116.95
2021.02.25 17:30 5,576 0

본문

 

사본 -웹진 사진규격.png

    

왜 말리크 알 카밀이 등장할까?

 

2019년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술탄, 1219-2019”라는 제목으로 800년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집트의 술탄 말리크 알 카밀을 만났던 사건을 기념하는 논문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논문집을 읽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drive.google.com/file/d/1d71eQukCQ_HJq_kuodJO4KYbNxsRiPMf/view)

 

중학생 때부터 성 프란치스코를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이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 사건은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제 기대와는 달리 이 사건 이후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술탄이 갑자기 회심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일도 없었고 이슬람권이 갑자기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변화는 일도 없었습니다. 새들에게도 설교하고 늑대를 회심시킬 정도로 수많은 기적들을 행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좋아하던 저에게는 이 사건은 시시한 사건으로 보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회칙 모든 형제들은 이 시시한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에 따르면 보편적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 출신, 국적, 인종, 종교에 따른 격차를 뛰어넘는 무한한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적의 임팩트 차원에서 시시할 뿐만 아니라 사료적으로 좀 시시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원사료는 대략 세가지로 압축됩니다. 첼리노의 전기(한국어판으로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와 보나벤투라의 전기(한국어판 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대전기’), 자크 드 비트리의 전기가 그것입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이 전기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는 술탄 말리크 알 카밀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이에 대해서 술탄은 거부하고 프란치스코와 동료를 십자군 진영에 되돌려 보냅니다.

  

이렇게 시시해 보이는 사건을 왜 모든 형제들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선교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원사료를 직접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상남자의 선교의 길

 

아우구스티누스(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에게 전하십시오. [이교도] 신들의 신전들을 파괴하지 말고 신전 안의 우상들만 파괴하라고 말입니다. 그로 하여금 성수로 이 신전들을 정화하고 그곳에 제대와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신전들을 적절히 조치하고 나서 이교들이 악신의 숭배에서 참된 하느님을 섬기는 것으로 개종시키십시오. 그들이 숭배해마지 않은 장소들이 파괴되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면 이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오류를 물리치고 그들에게 친숙하고 소중한 곳으로 오게 되어 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경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멜리투스 수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601년 추정)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의 조언과 자문에 따라 성인(성 보니파시오)께서는 게스메레 Gaesmere라 불리는 곳으로 가시어 그 분 곁에 하느님의 종들을 거느리며 엄청난 크기의 떡갈나무로 가셨다. 이 떡갈나무는 쥬피터[사실은 게르만 신화의 토르]의 나무라는 오래된 이교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단호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힘으로 밑둥에 [도끼로] 흠을 냈을 때 그곳에 있던 수많은 이교도들이 그들 신들의 원수를 맹렬히 저주하였다. 하지만 나무에 작은 흠만 났을 뿐이었으나 별안간 거대한 나무의 몸체가 하늘로부터의 번쩍임과 함께 땅으로 산산이 부서지면서 왕관과도 같은 가지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 이 광경에 이전에 저주를 퍼부었던 이교도들이 이제는 오히려 주님을 믿고 칭송하게 되었다. 지극히 거룩하신 주교는 형제들의 조언을 듣고 나무의 목재로 목조 경당을 짓고는 이를 사도 베드로에게 봉헌하였다.”

-빌리발두스의 성 보니파시오의 생애 (8세기)

 

첫번째 인용문은 대 그레고리우스 성인이 당신이 파견한 멜리투스와 아우구스티누스-널리 알려진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아니라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보내는 권고의 편지입니다. 사실 이 편지는 굉장히 온건하면서도 현명한 선교전략을 보여주는 예시로 아주 유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교도 성지들을 때려부수지 말고 적당히 잘 타이르고 정화해서 사용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가 영리한데 사람들은 모름지기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에 애착을 갖기 마련이기에 관성 때문이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정화되어 이제는 성당이 된 이전 명당자리에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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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온건하다고 해도 조각이나 그림의 경우 얄짤 없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경우 우상숭배에 대한 혐오가 워낙 뿌리 깊은 것이기에 아무리 아름다운 조각과 그림이라도 그리스도적이지 않은 경우 파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조각으로 한 익명의 그리스도교인은 이교도의 신상을 파괴하는 것이

 오후를 보내는데 더할나위없이 즐거운 방식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나중에 비잔티움 제국의 성상논쟁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두번째로 소개한 사례는 매우 거칩니다. 이 사례는 독일의 사도로 유명한 보니파시우스 성인의 일화입니다. 이 사례에서 보니파시우스 성인은 과격하게도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인기있었던 떡갈나무-토르의 나무라고 이름까지 붙어있는-를 베어내고 그 목재로 성당을 만들어버립니다. 723년 혹은 724년에 있었던 토르의 나무 벌목사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니파시우스 성인 자신이 바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온건하게 선교를 했던 잉글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조상들이 참으로 세심하고 온건하게 세례받았다는 사실은 일찌감치 잊어버렸는지 보니파시우스 성인은 꽤 과격한 방식으로 개종을 시켰고 나중에 독일의 프리지아라는 곳에서 살해당합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세심한 선교전략과 보니파시우스 성인의 과격한 선교전략은 뜻밖에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소와 물건을 빼앗는 방식으로 개종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서구판 땅밟기인 셈입니다. 즉 이교도들의 정체성의 근원들을 문화적으로 빼앗고 나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덧입히는 것입니다. 종교적 전유 religious appropriation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남자의 새로운 길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말리크 알 카밀 사건에서 모든 형제들은 성 프란치스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공격이나 분쟁을 피하고, 같은 신앙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하고 형제적 순종을 실천하는새로운 길을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보았던 것입니다. 아마 이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구절을 앞서도 잠깐 소개했던 논문집 성 프란치스코와 술탄, 1219-2019”에 실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축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은 형제회의 활동이 여러분의 거룩하신 창립자(프란치스코 성인)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며 저는 여러분에게 이 상호존중의 길을 계속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 알지 못하는 배제해버리는 그 어떤 개종과도 거리가 먼 길입니다.”

 

실제로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술탄을 개종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성인과 술탄 사이의 대화는 꽤 우호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십자군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을 부를 때 이라는 뜻인 immicus라고 불렀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들을 이라는 뜻의 amicus로 불렀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모든 형제들의 서론에서 언급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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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망루와 방벽은 비어있는 공항과 항만으로 상징됩니다.

 

모든 형제들은 말리크 알 카밀 방문 사건을 언급하면서 곧바로 망루와 방벽이 가득한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이상적인 상태와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상태를 대조하는 이러한 수사법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모든 형제들의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망루와 방벽이 가득한 세상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던 십자군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특징이 되기도 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모든 형제들서론의 7번에서 언급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온 세상이 통신망과 교통망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이러한 초연결성 hyper-connectivity는 마치 사상누각처럼 사라지고 각국의 망루와 방벽이 서로를 격리하고 막아서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술탄 말리크 알 카밀의 만남은 망루와 방벽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 망루와 방벽을 뛰어넘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이해하고자 하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라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이러한 길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민 사도요한 신부 (예수회)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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