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불안정 노동자의 성탄

김정대SJ 121.♡.116.95
2020.12.23 14:58 34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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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 우리는 올해도 성탄을 맞이한다. 성탄을 기다리며 오래전에 보았던 <아빠의 화장실(El baño del Papa)>이라는 남미 영화가 다시 생각났다. 이 영화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제작한 세자르 샬론과 엔리케 페르난데스가 2007년에 제작한 영화다. 1988년 브라질과 국경을 마주한 우루과이의 작은 마을 멜로에서 생긴 실화를 비토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우루과이의 작고 가난한 마을 멜로의 주민들은 어느 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방송 매체를 비롯한 언론은 교황이 방문하면 이 작은 마을에 이웃 브라질 방문객을 비롯하여 수만 명이 모일 것이라고 섣부른 예측을 한다. 이에 주민들은 흥분하여 돈을 빌리거나 전 재산을 털어 방문객들에게 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준비한다. 비토도 이 기회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유료화장실을 짓는다. 그러나 교황이 방문한 당일 수만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브라질 방문객은 400, 그것도 대부분 언론인이고, 모두 8천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이 멜로 주민이었다. 게다가 교황의 연설은 매우 짧았다. 행사가 끝난 후, 사람들에게 음식을 권해 보지만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은 뿔뿔이 사라지고 멜로 주민들의 꿈도 사라져 갔다. 교황의 축복 메시지는 언론과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욕심으로 가득 찬 멜로 주민들의 마음에 울림을 남기지 못했다.

 

영화 속, 유료화장실을 지어 돈을 벌려는 비토의 욕심은 그래도 소박하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자신과 타인의 영혼까지 팔 정도로 욕심이 많은 사회다. 욕심 많은 사회구조와 문화적 분위기를 만든 책임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자들에게 있다. 특히 재벌 기업은 우리 사회의 최대 수혜자로서 큰 책임이 있다. 사회 전체의 역량으로 성장한 재벌 기업이지만 그들의 사회적 기여는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벌 기업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 경제 성장이 온전한 인간 개발(integral human development)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최근 자신의 회칙 모든 형제들에게(Fratelli Tutti)’ 1(9-54)을 통해서 닫힌 세상을 뒤덮은 어두운 구름”(A DARK CLOUDS OVER A CLOSED WORLD)이란 주제로 현대 사회의 잘못된 현실을 지적한다. 교황은 인건비 절감과 실업이 빈곤의 확대로 이어지고(모든 형제들에게, 20), 경제 성장을 통한 부가 증가했지만, 여전히 불평등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발생함으로써 온전한 인간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한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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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과거 전통적인 산업사회와 달리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고, 최근 디지털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전통적인 노동의 가치는 무시되며 질 낮은 일자리가 늘고, 저숙련 비정규 노동자가 그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또 최근 팬데믹 상황에서 노동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배달 업종의 노동자들은 자영업자 신분으로 일감을 구하기 위해서 플랫폼에 매달려 경쟁해야 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더 많은 일감을 구하기 위해 노동에 따르는 위험을 개인이 감수하는 위험의 개인화를 받아들인다.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에게 가짜 자영업자의 신분을 주어 노동자의 탈 노동자화를 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분명 노동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전통적인 산업사회에서의 노동 개념과는 다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노동하지 않는다. 이른바 노동의 탈 공간화.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간 관계는 권력 불균형 관계이며, 노동자는 아무런 보호 없이 자기 착취 노동을 강요당한다. 노동자들은 원자화된 미세업무로 인해서 집단행동이 불가능하며 노동주권을 확보하지 못해 협상력이 없다. 노동자가 노동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들의 노동인권은 보장받기 힘들어지고, 심하게는 노예노동을 강요받게 된다. 주당 평균 71.3시간의 노동을 강요받으며 과로사로 생을 마감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이 오늘날 노예노동으로 노동인권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인권에 대한 존중이 한 사회의 사회 및 경제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22)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질 낮은 일자리를 갖고 있거나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고 현실의 부당함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교황은 2013년 자신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이런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경쟁 논리와 적자생존의 법칙 아래에 있습니다. 여기서 힘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일자리도, 가능성도, 탈출 수단도 없이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53) 또한 이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자존감을 파괴한다.”(모든 형제들에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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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구름이 짙게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지만, 여전히 그 어둠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의 빛 또한 우리와 함께 있다. 지금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2년 전 태안의 한국서부발전소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죽음을 당한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님과 20161026tvN의 부조리한 구조에 저항하는 의미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님이다. 이들의 자녀들은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구조의 피해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정치 이슈화하지만, 이들은 노동자들의 안전한 일터를 보장하기 위해서 단식을 하며 시위하고 있다. 이들이 단식으로 법 제정을 요구해도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부모로서 자식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며 갖게 된 간절한 갈망이다.

 

안전한 일터가 보장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질적, 제도적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또 안전한 일터는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교황은 부서진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희망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정신을 진리,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 정의, 사랑과 같은 고상한 현실로 들어 높이도록 우리에게 말합니다. 희망은 우리의 삶의 지평을 제한하는 사소한 안전과 보상, 그리고 개인적인 편의를 넘어 우리의 삶을 더욱더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거대한 이상을 우리에게 열어줄 수 있습니다.”(55) 이들도 그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성탄 소식을 전해준다. 그분은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기에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초라한 모습의 하느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목자들이었다. 목자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밤새 수고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현실의 가난하고 수고하는 사람이다. 멜로 주민들에게 교황의 축복 메시지가 위로가 되지 않은 것처럼, 부자들에게 성탄은 어떠한 위로도 되질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자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탄은 큰 위로와 희망이 된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카 6,20)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쫓아가면 하느님을 만난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의 기쁜 소식은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쫓아가는 두 부모로부터 시작되어 노동자들에게 전해진다.

 

 

김정대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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