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선언 말고 계획

조현철SJ 121.♡.116.95
2020.12.02 16:30 4,2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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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28,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지난 6월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의 기후위기비상선언발표와 지난 9월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통과에 이어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분명히 중요한 진척이다. 하지만 선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대통령의 선언을 듣고 바로 들었던 생각은 선언 말고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 120여 나라가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영국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유엔에 구체적인 계획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에게 연설 말고 계획을 가져오라 했다.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2050년 탄소중립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전략을 요구한 것이다. 그때 문 대통령은 감축 계획 대신 세계 푸른 하늘의 날제안을 가져갔다.

 

선언 말고 계획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은 탈핵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보여온 이해할 수 없이 수상한 행보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탈핵과 관련해서 이 정부가 한 것이라고는 수명이 다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영구정지라는 당연한일이 전부다. 난데없이 들고나온 공론화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재개되었고 탈핵은 60여 년 후로 미루어졌다. 탈핵을 선언한 이 정부는 핵발전을 추진했던 지난 정권에 이어 원전 수출에 공을 들였다. 국정과제라던 사용후핵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한 공론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행이었다. 공론화는 포화상태에 이른 월성 원전의 임시저장소를 늘리려는 꼼수였다. 핵폐기물이야 어떻게 되든 원전은 계속 가동해야 한다는 탈핵 선언에는 진정성도 의지도 없다.

 

정부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GDP로 측정되는 성장을 하려면 생산을 늘려야 한다. 생산한 것을 시장에서 팔아야 하니 소비를 늘려야 한다. 사람의 욕구를 창출하고 확대하는 광고 산업이 번창하고, 사실은 빚인 신용 구매를 좋은 것으로 장려한다. 생산과 소비 진작을 위해 제품의 수명은 일부러 길지 않게 한다. 무엇이든 많이 만들되 빨리 쓰고 버려야 한다. 온실가스를 비롯한 폐기물은 날로 증가한다. 성장 사회는 필요가 아닌 이윤을 위해 상품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닌 것은 가치가 없어지는 사회다. 한마디로, ‘비정상 사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윤만 보장되면 다른 것은 사실 기업에 부차적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반대와 정부와 정치권의 미적거림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확보보다는 이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후위기 대응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탄소배출을 줄이려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한다지만 발전 규모가 훨씬 큰 삼척을 비롯한 7기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은 요지부동이다. ‘한국전력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이윤이 난다며 투자를 강행한다. 자본에 중요한 건 탄소배출 감축이 아니라 성장하는 탄소 감축 시장에서 예상되는 이윤이다. 자본의 속성이 그렇다.

 

기존의 성장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은 탈핵 선언처럼 또다시 선언에 그칠 것이다. 이제라도 성장과 탄소중립이라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목표는 포기하고 제대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그린 딜이다. 지난 10, KBS와 그린피스가 함께 실시한 기후위기 관련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전염병(51.7%)에 이어 기후위기(19.2%)를 꼽아서 기후위기를 경제위기(17.7%)보다 심각하게 보았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인식(86.9%)에 비해 시급하다는 인식은 적었다(8.6%). 하지만 응답자의 79.1%‘2050년 탄소중립에 동의했으며 다수가 탄소배출 감축에 적극적이었으며 우리 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만하면 탄소중립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할 사회적 상황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진정성과 의지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한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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