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난민]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

김민SJ 121.♡.116.95
2020.12.01 18:01 4,56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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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나누겠습니다.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이주 담당(Jesuit Asia Pacific Conference Migration Network Coordinator)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때문에 불가피하게 온라인 회의를 많이 갖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올봄 무렵에는 모든 국제회의가 멈추게 되면서 국제회의의 중압감에 해방되었지만, 인간이 참으로 적응의 동물인 까닭에 온라인 회의의 형태로 하나씩 회의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이전보다 더 회의가 잦아졌습니다. 항공권이나 숙박비가 들지 않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속한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에서도 온라인 회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지난 9월 여느 때처럼 온라인 회의에 참석하던 중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최근 소식을 나누던 중 말레이시아 예수회원 알빈 신부가 자신이 요즘 음식 꾸러미를 준비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며 이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사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말레이시아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가장 먼저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있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이주민들이 해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일찍이 국경폐쇄를 단행한 상태라서 이들은 문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해서 일자리를 잃었으니 당장 문자 그대로 굶주리게 되는 상황인 된 셈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이중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먼저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이의 파급은 취약국가들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외환의 상당수를 이주민들의 송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침체로 인하여 해당 국가 출신 이주민들의 경제력이 아울러 하락하면서 본국으로의 송금(귀하디귀한 외환)이 급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침체국면인 해당 국가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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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음식과 생필품 꾸러미  

 

두 번째로 코로나19로 인하여 어느 사회나 가장 취약한 이들이 가장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 상징적인 예가 필리핀의 도시봉쇄 사태입니다. 필리핀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마닐라의 도시 봉쇄를 선언하고 봉쇄령을 위반하는 이들을 쏴 죽이겠다고 했을 때, 이에 대해 프랭클린 필라리오 신부는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 고난의 시기 시민들은 바이러스로 죽든가, 굶어 죽든가, 총 맞아 죽든가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필리핀의 도시 빈민들의 생계는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거나 트라이시클이나 지프니를 운전하거나 경비를 서는 등의 일에 달려 있는데, 이런 이들에게 도시 봉쇄와 이동금지령은 생계를 포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 신부의 입으로 표현되니 그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 또한 이 경제난으로 인해 이주민들이 우선적으로 해고되는 상황,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기아의 문제. 고통 받는 이주민들을 돌보기 위해 말레이시아 예수회원은 이리저리 돈을 구해 음식 보따리를 싸서는 이 동네 저 동네 보따리를 나누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보따리를 준비하는데는 말레이시아 화폐로는 100링깃, 한화로는 28,000원 정도가 들며, 5kg의 쌀과 10개의 라면, 4개의 통조림, 식용유, 설탕과 소금, 달걀 12, 마늘과 양파가 포함된 야채, 치약, 두 조각의 비누가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의 어깨 위에는 굶주리고 있는 이주민들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인 이주 아동에 대한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가 사목하는 말레이시아 쿠칭에는 상당수의 인도네시아 이주 아동이 있는데 이 아이들은 국경을 넘어온 인도네시아 이주민의 아이들입니다. 문제는 한국과는 좀 다르게 말레이시아의 공교육은 이주 아동에 대한 배려가 충분치 않아 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사립학교(외국인학교)로 진학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 부모의 사정을 짐작하면 사실 이주 아동은 교육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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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빈 신부가 운영하는 센터의 아이들 

 

알빈 신부는 이런 이주 아동을 위한 교육센터를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센터는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자원봉사자들, 센터의 교사들과 더불어 아이들이 나중에 인도네시아로 귀국할 때 적응할 수 있도록 적합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해서 꿈을 꾸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다른 하나는 이주 아동의 영양결핍을 예방하기 위해서 간식과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밀려오면서 이 교육센터 역시 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안타깝게도 교육센터가 약탈을 당해 모든 기자재와 설비 등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말레이시아의 알빈 신부의 이야기는 코로나19가 어떤 이들에게는 더더욱 버거운 고통과 짐을 안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주민의 존재는 한국이든 말레이시아이든 더부살이 존재라는 씁쓸한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다음과 같은 말은 비통하고 잔인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공공연하게 이주민들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과 결정,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그들을 덜 가치 있고 덜 중요하고 덜된 인간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모든 형제들에게, 39항)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해고하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든 무심하며 심지어 그들의 아이들이 더는 꿈을 꾸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조차도 무관심할 수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묻고 계실 것입니다. 네 형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는 예수회 후원회와 더불어 알빈 신부가 운영하는 말레이시아 쿠칭 이주 아동 교육센터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 지역 이주민 가정이 한 달을 지낼 수 있는 음식과 생필품 꾸러미를 후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예수회 후원회에 문의 바랍니다.

 예수회 후원회 연락처: 02-3276-7777

 

 

예수회 김민 사도요한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부소장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이주난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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